기자명 김수현·박수빈·이서현 기자 (webmaster@skkuw.com)

반촌돋보기 - 반촌 주변 이민자의 생활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사회 적응 중
귀화해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도

 

우리 학교 유학생들을 비롯해 학교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민자는 유학생 등 외국인등록자를 뜻하는 ‘외국인’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인 ‘귀화허가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통계청의 2021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상주인구는 133만 2000여 명에 달했다. 우리 학교 주변 이민자 3명을 만나 우리 곁에 가까이 존재하지만 때론 멀게 느껴지는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국적은 달라도 
우리 모두 꿈꾸는 청년입니다

우리 학교 중국인 유학생 이문열(사회 18) 학우는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 반려 고양이 옥수수와 함께 기상한다. 2017년 한국에 온 그는 연세대 어학당을 거쳐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를 자주 시청했어요. 특히 '런닝맨'을 좋아했는데 이광수가 멋지다고 생각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고 하숙집에 로망이 생겨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땐 하숙집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이 학우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중국 앱 ‘펀도우 코리아(icnkr)’를 통해 집과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말에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야간 수당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야간 수당을 챙겨주지 않는 가게가 많아요. 주변에 최저시급조차 못 받는 유학생들도 꽤 있죠. 처음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부당함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최저시급을 받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는데 같이 탔던 남성이 갑자기 우릴 향해 욕을 했어요. 폐쇄된 공간이라 위험하다고 느꼈죠. 그 일 이후로 중국인 친구와 만날 때도 최대한 한국어만 사용하려 해요.”

졸업을 앞둔 이 학우는 “우리 학교에서 들은 수업 중 비교사회학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전체 수강생이 6명뿐인 소규모 수업이라 부담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국인 학생과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좋았다”고 지난 대학 생활을 회상했다. 그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대학 생활 내내 과잠을 사 입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네요. 앞으로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취업까지 하고 싶어요.”
 

고향이 그리울 땐 필리핀 마켓을 찾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혜화동 로터리에선 필리핀 마켓이 열린다. 초록 천막들이 즐비한 이곳은 필리핀 현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리틀 마닐라’라고도 불린다. 지난 13일 오후 방문한 필리핀 마켓은 과일, 채소, 건어물 등의 각종 식재료부터 샴푸, 연고 등의 잡화까지 다양한 상품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 필리핀 마켓이 열리는 이유는 매주 일요일 혜화동성당에서 필리핀 공용어인 타칼로그어로 진행하는 미사가 있기 때문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필리핀 현지에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필리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신도들은 필리핀인 신부를 따라 엄숙한 분위기에서 기도를 드렸다. 일산에 거주하는 본곤(53) 씨도 마켓을 방문하기 전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을 찾아요. 집에서 멀긴 하지만 이곳에 와야 모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으니까요.”

본곤 씨는 미사를 드린 후 꼭 필리핀 마켓을 찾는다. 그의 봉투 안에는 연두색 깔라만시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마켓이 일주일에 한 번 열리니, 일주일 동안 먹을 식재료를 지금 구비해두는 거예요. 오늘은 음식의 소스나 향신료를 만들 때 쓰려고 필리핀에서 온 레몬을 샀어요. 음식에 뿌리면 엄청나게 향긋하거든요.”

2020년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필리핀 인구는 4만 3000여 명에 이른다. 다른 곳에서 동향인을 많이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고향의 분위기를 느낀다. 마켓 앞에서 친구를 마주친 사람들은 크게 소리 지르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평소엔 이곳에서 만나는 친구가 몇 명 있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네요. 그래도 이곳에 오면 고향에 온 느낌이에요.”
 

힘들어도 일하는 이유는 하나, 가족입니다
지난 15일 오전 8시, 비어있던 수원의 어느 시장 거리에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아시아 식자재를 판매하는 상인은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고등어를 다듬는다. 조용히, 그러나 분주하게 하루가 시작되는 이곳은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매산시장이다. 매산시장은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로 구성돼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중국식 꽈배기 가게를 운영하는 이군도(49) 씨도 가게에 도착했다. 그는 한국계 중국인 출신의 귀화허가자다. 가게에 들어선 그는 커피를 끓이며 잠시 숨을 돌리고 곧이어 일을 시작했다. 먼저 밤새 숙성된 반죽을 확인하고 꽈배기를 튀겼다. “중국식 꽈배기는 좀 낯설죠? 한국 꽈배기가 말랑말랑하다면, 중국식 꽈배기는 바삭바삭해요. 크기는 더 크고 겉면에 설탕을 뿌리지 않아 덜 달죠.”  

올해는 이 씨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민 온 지 20년째 되는 해다. 그는 10년 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통계청의 2021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상주 귀화허가자 수는 4만 9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계 중국인은 36.2%를 차지한다. 귀화를 위해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종합평가를 보는 현재와 달리, 그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던 당시에는 별도의 귀화 필기시험을 봐야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많이 공부했죠.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해서 시험에 몇 번 떨어진 끝에 귀화할 수 있었어요.”

요즘 이 씨는 걱정이 많다.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어드는 탓이다. “한때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할 만큼 장사가 제법 잘 됐죠. 그런데 요즘은 좀 힘드네요. 중국인 손님도 많았는데 코로나 이후 많이들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럴 때마다 그를 힘내게 하는 건 그의 가족이다. 그는 세 딸의 아버지이자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든든한 아들이다. “일하는 거 힘들죠. 그래도 하는 거예요. 가족이 있으니깐.”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반죽을 집어 들었다. 가판대에 하나 둘 노릇한 꽈배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단골 중국 음식점을 소개해주는 이 학우의 모습.
혜화동 성당에서 타칼로그어 미사가 진행되는 모습.
필리핀마켓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본곤 씨.
꽈배기를 만드는 이군도씨와 그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