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연·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누구나 한 번쯤 학교 책상이나 벽에 낙서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는 즉흥적으로 글자나 그림을 아무 데나 쓰는 행위, 또는 그 시각적 결과물을 뜻한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처럼 낙서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나, 일각에서는 낙서가 무의식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정의하며 예술이나 심리 치료 등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악용과 선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낙서가 혼재해 있다. 따라서 낙서를 건강하게 활용하기 위한 고찰이 필요하다. 낙서의 긍정적 사례들을 통해 낙서와 인간이 지혜롭게 공존할 방법을 탐색해 보자.

① 폼페이 유물 속 낙서
고대 로마 시대 화산 폭발로 묻힌 도시 폼페이에서는 지금까지 약 1만 1,000개의 낙서가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 1월 13일 개최된 전시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에 걸린 폼페이의 담벼락 낙서 사진이다. 더럼대 고고학과 마이클 빈스 연구원은 “해당 낙서는 폼페이 도시인 두 명을 도시에 걸맞은 인물로 만들어주기를 간곡히 바란다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폼페이에는 '가이우스는 이곳에 있었다'와 같이 흔적을 남긴 낙서 등 다양한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고전학자인 레베카 베네피엘 박사는 폼페이 낙서가 과거 폼페이에서 살던 사람들의 실제 육성이라는 점에서 고대 문명의 역사를 바라보는 귀중한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밝혔다.

 

② 아이들의 낙서를 활용한 공연 ‘두들팝’
아이들은 대략 2세부터 벽이나 종이에 낙서하기 시작한다. 자기 생각과 의도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아이들에게 낙서는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낙서화 감상활동을 통한 시각적 문해력 신장 방안」 (2019)에 따르면 낙서화는 시각적 기호를 활용해 소통하고자 하는 특성을 지닌 그림으로, 이미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인 시각적 문해력을 길러 줄 수 있는 좋은 학습 소재다. 어린이 대상 교육 연극인 매직드로잉 가족극 ‘두들팝’은 연극에 사용될 낙서를 아이들이 화이트보드에 직접 그리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함과 동시에 연극에 등장하는 낙서의 의미를 해석하며 사고력을 확장할 수 있다.

 

③ 낙서의 특성을 살린 힐링 아트 프로그램 ‘젠탱글’
복잡한 사고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끄적이는 낙서의 특징은 심리 치료에 활용되기도 한다. 집중과 몰입을 뜻하는 ‘젠’과 엉킨 선을 뜻하는 ‘탱글’의 합성어인 ‘젠탱글’은 명상의 낙서라고도 불리는 힐링 아트 프로그램이다. 젠탱글은 ‘타일’이라는 사각형 종이 안을 계획 없이 자유롭게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젠탱글협회에 따르면 젠탱글은 스트레스 해소를 돕고 공포증, 중독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완화를 돕는다. 이에 젠탱글은 명상과 치유 효과를 인정받아 △기업 △병원 △학교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④ 남산서울타워 ‘사랑의 낙서벽’
남산서울타워 4층에 위치한 '사랑의 낙서벽'에서는 '평생 친구', '우리 사랑 영원히'와 같이 관계에 대한 소망을 담은 낙서를 볼 수 있다. 사랑의 낙서벽을 방문한 관광객 A씨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들의 이름과 함께 '행복하자'라는 낙서를 적었다"고 전했다. 「학교 낙서의 교육인간학적 이해」 (2012)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지향하는 존재로, 낙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의 낙서벽의 관계 지속을 염원하는 낙서를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⑤ 신촌 토끼굴 그라피티
그라피티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낙서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기법·재료를 도입하는 다원주의 경향과 함께 재치 넘치는 그라피티를 선보인 키스 해링과 같은 예술가의 등장으로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게 됐다. 이에 서대문구는 2018년, '신촌 토끼굴 관광 명소화 사업'을 추진해 음침했던 신촌 토끼굴 터널을 그라피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곳은 글자 ‘CLAP’, 손뼉 치는 그림 등 다양한 그라피티로 채워져 있다. 실제로 신촌 토끼굴을 방문한 B씨는 “전에는 가기 무서운 길이었으나 그라피티가 채워지면서 지나다니고 싶은 길이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그라피티는 단순히 낙서의 의미를 넘어 예술로서 기능하며, 신촌 토끼굴을 명소로 재탄생시켰다.

 

⑥ 낙서 활용 브랜드 ‘엘두들’ 제품
「두들 아트의 아트마케팅 활용에 관한 연구」 (2020)에 따르면 낙서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이 없어 창작자에게 편안함을 주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가진다. 리빙 브랜드 ‘엘두들’은 △예술가 △학생 △회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낙서를 담은 세라믹 제품을 판매한다. 사진은 충청남도 청년 창작자들이 그린 꽃·선인장 등의 낙서를 접시와 컵에 새긴 제품이다. 이에 엘두들은 ‘어떠한 예술 작품은 가벼운 낙서로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누구나 간단하게 창작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소비자들에게는 낙서하는 시간과 같은 온전한 쉼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⑦ 디지털 낙서 애플리케이션 ‘CORI – 혼날 걱정 없이 낙서해!’ 
낙서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 이후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CORI - 혼날 걱정 없이 낙서해!'는 위치 기반 증강현실(AR) 서비스를 이용해, 실제 공간이 아닌 애플리케이션 내에 낙서를 남길 수 있도록 한다. 원하는 공간에 카메라를 비추고 '낙서하기' 버튼을 눌러 텍스트를 입력하면 온라인으로 낙서가 새겨진다. 이용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낙서를 지도에서 확인하고 댓글을 달 수 있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벽을 더럽히거나 법에 저촉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낙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서가 하나의 표현 수단이자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도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