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미 사어(死語)가 된 듯 보였던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등록금 마련 때문에 소를 팔고 땅을 팔아 버린 부모를 등지고 울며 귀경하던 개발근대화기의 농민의 아들 딸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내다 팔 소도 없으니 자식들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인골(人骨)이라도 팔아야 할 지경이다. 가계 경제는 악화 일로에 있지만 예전처럼 자녀의 졸업이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니 썩 힘도 나지 않을 법하다. 등록금 동결에의 요구에 이어, 등록금 카드 지불 요구가 대학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기에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로서는 소위 ‘스펙’을 채워야 하고, 등록금 말고도 고용 준비 비용은 끝이 없다. 아르바이트 급료는 십 년째 재 자리걸음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문자 그대로 인골이 녹아내릴 지경인데, 대학만은 요지부동처럼 보이니 화가 날만도 하다. 하지만 대학도 힘들다. 지식과 그 영향력이라는 게 경제나 기술과는 달리 한 사회의 상부구조에 속하기에, ‘세계적 인정’이란 경제나 실력보다 늘 늦게 온다. 하지만 온 사회가 한 목소리로 한국대학의 ‘부진’을 책망하는 판이니 대학으로서는 세계 도처에서 두루 인재를 구할 도리 밖에 없는데, ‘돈’이 모자란다. 국가는 여전히 성의 표시만 하고, 참견과 생색내기에 바쁘다. 등록금 동결이라 커다랗게 내걸고는 비난을 무릅쓰고 대학원 등록금이나 입학금을 올려보지만, 자연 상승하는 호봉과 임금 등의 비용을 치르기에도 바쁘다. ‘세계적 대학’을 추가 비용 없이 만들라 하니, 대학 구성원들의 희생과 고강도 노동을 주문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구호와 불안 속에서, 모두가 피로에 지쳐 있는 곳이 요즘의 대학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고통과 절박감을 생각하자면, 쉽지 않은대로 카드 납부나 분할 납부를 대안으로 생각해봄직하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으로 보더라도 대학법인은 이미 ‘가맹점’이다. 누구의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 더 이상 대학을 자율적 예외의 공간으로 빼주는 사회 분위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학이 카드를 받으면 된다. 대학은 가맹점 수수료가 무섭고, 학생과 부모는 등록금 카드 납부를 바라는 한편 소비자 할부이자가 무섭다. 대학이 과연 점포나 기업이어도 좋은가를 묻기에는 양쪽 모두 처한 상황이 절박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생존이 한쪽에서는 추가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감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생존을 구하는 쪽에 양보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물론 카드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다른 모든 업종들처럼 카드 수수료 부담은 장기적으로 등록금이라는 ‘가격의 상승’을 유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불 약속(카드)과 분할 납부라는 것이 그런 위험을 모두 고려한 묘안, 즉 사람이 당장에 혹은 한 번에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여러 번에 나누어 감당하기 위해 생각해낸 사람 사는 마련의 인간적 방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 우골탑, 인골탑을 넘을 방도는 있는가. 지금처럼 문제를 학교, 학생, 학부모로 전가하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고민이 필요한대로, 일단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당장의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대학도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서로가 밑지더라도 서로가 견뎌낼 수 있는 방안, 그래서 길게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뒷감당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