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민 기자 (yumin510@skkuw.com)

애니메이션은 과거 전쟁 선전으로 이용되기도 해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 감상에 비판적 시각과 열린 태도 필요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폭력적인 전쟁의 만남은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회화나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처럼, 애니메이션 역시 전쟁을 담아왔고 전쟁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프로파간다로써 사용되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과 전쟁, 이 둘은 언제부터 함께해 왔을까.

미키 마우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영혼이나 생명을 뜻하는 라틴어 ‘Anima’에서 유래한 단어다. 즉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상상력을 토대로 멈춰 있는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움직이는 그림에 익숙하지 않았던 관객들에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등장과 동시에 큰 충격을 줬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명확한 선으로 그려진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다. 동의대 일본학과 정충실 교수는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통해 간략화한 영상의 정보들을 관객들에게 쉽게 인식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중심으로 전쟁 선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됐다. 일례로 디즈니의 선전 애니메이션 <모두 함께>(1941)에는 ‘Help Win THE WAR’이라는 슬로건이 달린 차에서 군악대처럼 옷을 갖춰 입고 행진곡을 연주하는 미키 마우스와 그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 <총통의 얼굴>(1943)에서는 도널드 덕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적국이었던 독일을 풍자하는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관객들은 거부감 없이 애니메이션이 전달하는 선전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 역시 중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다양한 선전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며 국민들의 사기를 고취했다. 특히 선전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교육용으로 활용됐다. 상명대 한일문화콘텐츠전공 안노 마사히데 교수는 “선전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에게 당시의 전쟁이 갖는 의미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재미있는 매체로 여겨졌다”며 “전쟁 중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바다독수리 모모타로>(1942)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은 실감나는 묘사와 귀여운 캐릭터로 당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 속 행진 장면. 속 행진 장면. ⓒ유튜브 채널 Coconut Press 캡처
'모두 함께' 속 행진 장면. ⓒ유튜브 채널 Coconut Press 캡처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로 기록된 전쟁 범죄
애니메이션은 과거 전쟁의 도구로 활용됐지만, 현재는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기도 한다.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실제 사건을 다큐멘터리 장르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구현한 애니메이션을 뜻한다. △기록문서나 사진의 삽입 △내레이션을 통한 극 전개 △인물이나 공간 정보를 자막으로 배치 △전문가 의견 첨부 등의 기법이 그 예시다. 이에 『세계 애니메이션 대백과』 공동 저자 박세영 작가는 “다큐멘터리의 관습적인 기법들을 통해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에 다큐멘터리의 신빙성과 사실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은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다룬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다. 해당 작품은 여성과 아이가 포함된 3,000명의 무슬림이 이스라엘 군부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토마타 공작소 전승일 대표감독은 “<바시르와 왈츠를>은 주요 인물 9명을 실사 영상으로 촬영한 후 그림으로 다시 표현하는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는 등 전쟁 범죄를 애니메이션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네이버 영화 포스터 캡처
'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네이버 영화 포스터 캡처

실사로는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가 가진 독자적인 강점이다. <홀로코스트의 아이들>(2014)은 제2차 세계대전 생존자의 인터뷰를 통해 홀로코스트 사건을 다룬 영국의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다. 전 대표감독은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집단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이나 학살당하는 가족 등 실사로는 재현하기 대단히 어려운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학살과 같은 잔혹한 장면을 실사 영화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장면들의 지나친 폭력성을 소거함으로써 메시지를 부각하는 효과를 준다. 박 작가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전쟁과 학살의 사건들은 실사의 자극과 불쾌감 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의 아이들' 스틸컷. ⓒ네이버 영화 스틸컷 캡처
'홀로코스트의 아이들' 스틸컷. ⓒ네이버 영화 스틸컷 캡처

나아가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사건에 대한 단순한 영상 기록이 아니라 사유의 확장과 진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이라는 가치가 있다. 전 대표감독은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재현 과정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사용해 전쟁의 광기와 파괴된 사람들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다큐멘터리의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존재한다.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구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박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된 피해자들의 증언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왜곡과 눈으로 볼 수 없는 고통의 감정까지 담아냈기에 실사의 재현 방식보다 오히려 사실성을 획득했다고도 생각한다”고 전했다. 
 

허구적인 애니메이션, 리얼리티에 기반하다
비극적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허구적 전쟁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애니메이션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는 창작된 허구의 전쟁을 그린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속 전쟁은 19세기 유럽이 연상되는 풍경에 판타지 요소를 더한 환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안노 교수는 “작품 속 전쟁은 2003년 3월에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동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작품 속 밤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들의 폭격 장면은 이라크 전쟁 당시 폭격으로 불탔던 바그다드 시내를 연상시킨다. <붉은 돼지>(1992)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묘사도 마찬가지다. 안노 교수는 “해당 작품이 개봉했던 당시 해외에서는 걸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했고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군 참가가 국회에서 의논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픽션 속 전쟁들은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여겨지기 쉬우나 실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전쟁 장면. ⓒ유튜브 채널 차클 플러스 캡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전쟁 장면. ⓒ유튜브 채널 차클 플러스 캡처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에 섣부른 비판 지양해야
애니메이션 속 전쟁에 관한 묘사는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중 실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논란이 됐다. 명지대 일어일문학과 곽형덕 교수는 “같은 애니메이션도 각 국가의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판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2014년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됐던 <반딧불이의 묘>(1988)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돼 아사한 남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국내의 일부 대중들은 가해국인 일본 시민들의 피해를 그리는 작품의 내용에 반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의 폭력에 노출됐던 일본 소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달하고자 했던 작품의 의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안노 교수는 “전쟁과 그로 인한 아픔을 그린 애니메이션은 전쟁을 받아들이는 관점과 기억이 다른 국가의 국민들 간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 교수는 “애니메이션의 전쟁 미화와 관련된 담론은 대중에게 매체 속 전쟁 묘사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하지만 충분한 고민 없이 특정 애니메이션을 전쟁 미화라 단정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