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책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선박 중개인으로, 자신의 지인과의 모임 중 괴한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권총을 쏘아 그 괴한을 사살한다. 이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며 그는 자신의 행동 모두가 우연의 일치이며 아무런 개연성 없는 행동의 연속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물론 인정되지 않고, 검사 측은 긴밀하고 논리적인 연결로 그의 행동들을 설명하며 그의 범죄가 계획되었으리라 판단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역시 만연하게 보여진다. 사회에서, 각각의 개인이 타인의 행동을 판단할 때, 심지어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볼 때도 우리는 논리성과 개연성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논리성이 항상 우리에게 진실만을 보여주는가? 우리는 자신의, 혹은 누군가의 행동을 논리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세상의 인식 과정에서 이유 없는 행동에 개연성과 논리성을 부여하려 한다.

우리는 논리적 판단만을 내릴 수는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은 감성과 이성 그 어딘가를 헤매며, 또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무의식적, 충동적 판단 속에서 이루어진 행위들은 앞선 행위들과 인과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또 행위들의 근거를 본인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것이 그 행위들의 원인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충동성에 비판적 입장을 지니며 계획 속에 모든 행동이 존재하리라 믿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항상 그 계획 안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충동성이라는 그 자체가 오히려 행동의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목표를 위해 여러 행동을 계획했다고 가정할 때, 그 계획한 행동들은 논리적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a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루트는 절대로 한 가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루트들을 보통 생각나는 대로탐색해보고 결정할 것이다. 어떤 점이 생각이 났다면 그 생각이 떠오른 것에 개연성이 확실히 존재하는가? 물론 경험적인 요소가 개입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생각에 그 경험적 요소란 무엇인지 답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의식 속에 존재하는 개연적이고 논리적 생각이 아닌 경험에 의한 충동적, 자동적 생각일 것이다. , 의외로 행동의 근간은 논리적이기보다 충동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인에서 역시 독자인 우리는 뫼르소의 범죄에 대해 우연적 사실임을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사건을 접한다면 논리적으로 왜곡된, 만들어진 진실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논리성은 결코 진실을 보여주는 만능도구일 수 없다.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 논리성 역시 자체의 부작용이 있고, 이를 유의하며 논리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충동성과 우연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진실한 그 자체의 모습을 보는 방법이 아닐까?

김진경(유동22)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