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체험기 - 디지털 휴먼 제작기

대중에게 디지털 휴먼은 단지 색다른 재미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디지털 휴먼이 정밀함을 갖추며 높은 접근성을 목표로 나아가는 지금, 디지털 휴먼은 나와 가상 세계를 잇는 필수적인 다리가 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외모를 지닌 디지털 휴먼을 실제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디지털 휴먼 제작 기술이 상용화될 미래를 살짝 엿보기로 했다.

30분 만에 탄생한 실사형 디지털 휴먼
수많은 비디오 게임 개발에 사용된 3D 제작 툴인 ‘언리얼 엔진’이 지난해 2월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를 선보였다.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는 누구나 높은 품질의 디지털 휴먼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툴을 제공하는 무료 어플이다. 빠르면 1시간 안에도 완성이 가능하다는 설명과 예시로 올려진 샘플 사진을 보니 개인이 직접 만든 디지털 휴먼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앱 실행하기’를 클릭하고 약 1분 정도 기다리니 드디어 생성 화면이 열렸다. 새로운 디지털 휴먼을 만들기 위한 베이스 샘플로 다양한 △성별 △연령 △인종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개성 있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자신과 가장 닮은 동양인 여성을 골랐다. 곧바로 외모를 수정할 수 있는 스튜디오 모드가 열렸다. 변경할 수 있는 외적 요소들은 크게 얼굴, 머리카락과 수염, 몸이 있었다. 얼굴은 △눈 △치아 △피부 △화장 등을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었는데 설정 창에서 색깔의 명도와 채도를 바꾸거나 마우스 커서를 직접 해당 부위에 가져간 뒤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직관적인 시스템이었다. 대략 30분 만에 기자와 닮은 디지털 휴먼이 완성됐다.

그림자처럼 훌륭한 따라쟁이
이번엔 얼굴 인식 어플을 활용해 디지털 휴먼을 직접 움직여보기로 했다. 언리얼 엔진과 연동되는 얼굴 인식 어플인 ‘라이브 링크 페이스’는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아이폰 사용자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작한 디지털 휴먼을 3D 스튜디오로 불러온 뒤 라이브 링크 페이스와 연동했다. 기자가 고개를 움직이거나 표정을 바꿀 때마다 동시에 디지털 휴먼도 똑같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만들고 나니 밀려오는 걱정
직접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보니 이렇게 쉽게 똑 닮은 존재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인간을 만드는 것이 쉬워질수록 인간이 대체되기도 쉬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우리는 인간은 모두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나를 대체할 존재가 가상 세계에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기자는 손재주가 나빠 직접 만든 디지털 휴먼에게서 정체성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지만, 디지털 휴먼과 실존 인물의 구분이 어려워질수록 인간의 유일성이 흐려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목구비의 미세한 특징까지 디지털 휴먼에 구현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내가 원하는 외형을 디지털 휴먼에 그대로 투영할 수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의 나를 외면하고 나를 본뜬 가상 세계 속 디지털 휴먼을 본래의 나로 여기고 싶지 않을까. 이미 기존의 디지털 휴먼 디자인에 반영된 이상적인 외모나 체형, 스타일이 미의 획일화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외적인 결함이 없는 디지털 휴먼이 현실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봄직하다.

디지털 휴먼의 악용 가능성도 중요한 문제다. 제작 툴이 생각보다 매우 정교해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의 얼굴도 쉽게 구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구든 외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디지털 휴먼 제작이 가능해지므로 디지털 휴먼은 가짜뉴스나 성범죄 등에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휴먼, 어떻게 쓰일 것인가
우려되는 점이 여럿 존재하지만, 디지털 휴먼을 그저 두려워하거나 우려 섞인 시선으로만 볼 순 없다.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 서영호 교수는 “디지털 휴먼을 제작하는 모든 기술은 이미 개발됐다고 본다”며 “이것을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휴먼의 상용화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현재는 사회 구성원들의 본격적인 토의와 제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은 늘 발전한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디지털 휴먼 제작 화면.
디지털 휴먼 제작 화면.
라이브 링크 페이스로 얼굴 움직임을 녹화하는 모습.사진|김수빈 기자 sb9712@
라이브 링크 페이스로 얼굴 움직임을 녹화하는 모습.사진|김수빈 기자 sb9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