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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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자산의 수익을 함께 나누는 기본소득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것


지난달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그의 대표 공약 중 하나인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 논의가 더욱 뜨거워졌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모두의 의식주가 보장된 이상적인 세상일까 혹은 그저 무분별한 돈 뿌리기일까?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짚어보며 자세히 알아보자.

기본소득제 베타테스트, 그 결과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직장인 이지영(24) 씨는 올해 청년기본소득을 수령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청년’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른 심사 절차 없이 지원금을 받아서 생활비에 여유가 생겼다”며 “구직 활동을 보다 맘 편히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 씨가 수령한 청년기본소득은 경기도에서 도내의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당 25만 원, 연간 총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제공하는 제도로 2019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지급대상이 청년층으로 한정됐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제의 적확한 예는 아니지만 재산·소득·노동 활동과 관계없이 시·도 단위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신대 경제학과 강남훈 교수는 “노인이나 아동에 비해 청년 복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낮았다고 생각한다”며 “청년 복지의 필요성을 알리고, 가계 형편과 무관하게 청년층에게 자기계발 시간과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의의를 설명한다. 올해 상반기 기본소득을 받은 청년 3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90.2%는 일괄 지급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해당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연세대 행정학과 양재진 교수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사회보장제도 측면에서 일을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청년층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무작정 큰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소득제

만약 기본소득이 ‘만 24세 경기도 거주자’가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된다면 어떨까?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는 기본소득을 ‘자산 조사와 근로에 대한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어지는 주기적 현금’이라 정의한다. 즉, 전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별성 △무조건성 △보편성 △정기성 △현금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하지만 위 특징들을 모두 충족하는 기본소득제를 전 국가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2020년도 정책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제의 도입에 찬성이 52.2%, 반대가 45.5%로 조사됐다. 48.6%가 찬성했던 지난해 6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비해 찬성 의견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박현진(27) 씨는 “돈을 준다고 하니 좋긴 하지만,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권리로 바라본 기본소득
최근 화두가 된 기본소득은 혜성처럼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라는 발상의 시초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모어는 그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조건없이 식량을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한다. 이후 후안 루이스 비베스, 버트런드 러셀 등 여러 근현대 학자가 기본소득과 유사한 발상을 논의한 바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속 자동화와 기계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소득과 자산의 배분이 극도로 불평등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제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기본소득제는 사회의 공유 자산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18세기 자유주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인류 공동의 유산인 토지의 소유자는 사회에 빚을 진 것과 같으며 그 몫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를 구성원들이 권리로서 수령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본소득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유 자원인 환경을 훼손하거나,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통한 이익이 특정 계층에 귀속되거나, 빅데이터에 대한 독점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이 그 이득을 독점하는 경우 모든 국민이 일부를 나눠 가질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장발장에게 
평생 빵을 준다면

우선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절대적 빈곤층의 생계유지를 보장해주며 생활형 범죄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기본소득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 모두에게 주어지므로 요건을 갖추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년 2월 리서치기업 엠브레인의 설문에 따르면 기본소득제를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가 꼽혔고 사회 불안요소의 경감 및 자아실현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안정적 소득의 보장은 비정규화·플랫폼 노동화되는 일자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덜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는 노동에 대한 관점 전환이다. Lab2050 이원재 대표는 “고용된 노동, 돈벌이를 위한 일만 노동은 아니다”며 “본인의 보람과 가치를 위한 일, 세상을 위한 일도 모두 노동의 일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본소득은 고용으로의 노동 외에 어떤 노동을 택할지에 대한 실질적 자유를 제공해준다”고 덧붙였다. 노동임금 없이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해지므로 실질적으로 노동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또한 임금만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노동자의 협상력이 향상되고 불공정 계약을 줄여 더 높은 급여와 나은 근무환경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의 기본소득제, 
재원 마련 방법은 

지난 7월 이 전 지사는, “다음 정부 임기 안에 청년들에게는 연 200만 원, 그 외 전 국민에게는 연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며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막대한 재원의 마련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 전 지사의 기본소득제 시행을 위해서는 2023년부터 5년간 국가 재정 250조 원, 즉 연평균 50조 5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일시적으로 지급된 재난지원금과 달리 1년 국방예산 총합에 맞먹는 50조 원 이상이 매년 소요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원 마련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는 방법의 하나는 ‘공유부 배당’에 따른 토지세와 탄소세다. 이 전 지사의 기본소득 재원 확보 방안 중 하나인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에 보유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토지는 사회가 지닌 공유자산이기에 토지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토지소유자가 모두 갖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토지 사유를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지대의 일부는 구성원이 나눠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토지세의 도입은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 무주택자와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지나친 규제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사유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토지세와 함께 거론되는 세수 방안은 탄소세다. 이 전 지사는 공약에서 탄소 배출에 대한 징세를 통해 30~64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탄소세는 탄소 배출에 대해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며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공유부의 남획으로 보는 관점에 기초한다. 이외에도 데이터세, 교통세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유·무형의 자산에 사회적 가치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증세가 논의된다. 이 대표는 “특정 기업의 제품 생산에도 사회의 축적된 지식, 네트워크 등이 투입되기에 대부분의 생산물은 공유부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부분이 기업이 투자해 실현한 가치인지,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방안은 근로소득공제와 같은 소득세의 각종 감면제도를 축소하는 것이다. 감면 축소가 곧 증세와 같지 않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납부 세액이 증가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 마땅히 부담할 세율이기 때문에 감면은 곧 이를 정상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재정구조 개혁 및 예산 절감, 세원 관리 강화 등이 재원 마련 방법으로 제시된다. 
결국 국민의 조세 부담이 커지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양 교수는 “현재 한국과 미국은 조세부담률이 약 20%인데 사회보험료를 더하면 27%다”며 “증세 없이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면 전부 기본소득에 써야하는데 그러면 기존의 사회보장 및 국방, 교육 등 공공서비스마저 유지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방법의 획기적인 증세로 이를 도입한다면 경제에 부정적 충격과 국민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기본소득제, 그 가성비를 따져보자
한편, 기본소득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반대 측은 기본소득에 막대한 예산을 할당하는 대신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을 불필요한 고소득층에게까지 일괄적으로 지급하기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기본소득제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며 “불난 곳에 찾아가서 불을 꺼야 하는데 모든 산에 물을 뿌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기본소득제와 사회보장제도는 각각 그 목적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는 “기본소득제는 소득 안정, 사회보장제도는 위기 구제가 그 목적이다”며 “각각의 필요에 따른 예산 투입에 상대적 우위를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제의 소득 재분배 효과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모두에게 돈을 주면 소득 재분배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장용성 교수는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율을 높이거나 기존 복지제도를 축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말하며 “재원 마련 시나리오의 대부분에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경우 소득분배 불평등이 심해질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불로소득이 생겨 노동 시간을 줄이는 사람이 증가하고, 근로 의욕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기본소득제에 반대하는 응답자의 과반이 그 이유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를 꼽았다. 양 교수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다시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의무다”며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할 수 있도록 사회를 이끌고 집중적으로 돕는 것이 알맞은 대처”라고 덧붙였다. 반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스탠퍼드대 휘도 임번스 교수는 “기본소득 같은 불로소득은 노동력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하지만 연구결과 근로 의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경기연구원의 ‘2021 기본소득 일반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3%가 월 50만 원 이하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더라도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더욱 뜨거워질 기본소득제 공론장
일각에서는 여러 기본소득제 공약들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관악구에 거주하는 A 씨는 “돈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제도인지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제는 아직 세계적으로 도입된 선례가 없으며 실험 수준에 머물러있다. 기본소득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제도든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바탕이 돼야 함을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새로운 대책으로 부상한 기본소득제는 장기적 의제로 그 논쟁이 계속될 전망이다.

■포퓰리즘=본래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형태.

 

기본소득 관련 서적.사진| 나지윤 기자
기본소득 관련 서적.사진| 나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