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현 (kshyunssj@skkuw.com)

【체험기】

기와지붕 아래, 바텐더가 막걸리에 키위와 레몬그라스를 넣고 흔든다. 최근 다양한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통주로 만들어낸 칵테일의 맛은 어떨까? 

전통주와 칵테일의 만남
옛 정취와 새로운 바람이 공존하는 서촌에서 ‘바참(Bar Cham)’을 찾았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도착한 그곳에는 대나무가 우거진 한옥의 창문으로 어렴풋이 많은 사람이 보였다. 평일 저녁 6시 즈음에 방문했음에도 입구에는 대기명단이 있었다. 기와지붕 아래 가게로 들어서자 향긋하고 퀴퀴한 다양한 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두운 바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칵테일을 즐기며 친구, 연인, 때로는 바텐더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통주와 이름을 읽기 어려운 외국 술병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는 찬장 앞 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메뉴판을 펼치자 ‘함양’, ‘금산’ 등 지역 이름을 딴 칵테일부터 ‘봄날은 간다’처럼 눈길을 끄는 칵테일의 이름이 연도와 함께 쓰여 있었다. 박희만 바텐더는 “메뉴는 1년에 두 번씩 새로 개발한 칵테일로 바뀐다”며 “칵테일의 이름 아래 적힌 연도는 그 칵테일을 개발한 연도”라고 설명했다. 

칵테일에서 김밥 맛이 난다니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고 하자 바텐더는 ‘우희열의 스케치북’을 추천했다. 올해 개발된 ‘우희열의 스케치북’은 백제 시대부터 전래한 전통 약주 ‘한산 소곡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다. 한산 소곡주는 술을 깔끔하게 발효시킨 뒤 생강, 메주콩, 들국화, 홍고추를 더해 감칠맛을 끌어낸 전통주다. 바텐더는 “한산 소곡주의 맛을 배가시키기 위해 *리큐어로 꽃향기를 추가하고, 유자와 계란 흰자를 넣어 부드러운 느낌을 더한 18~19도 정도의 칵테일”이라고 해당 메뉴를 소개하며 따른 잔을 건넸다. 전통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달콤한 과일과 우유 향이 나는 칵테일 위에는 난이 그려진 화이트 초콜릿이 올려져 있었다. 맛을 보니 부드러운 크림과 상큼한 유자, 깔끔한 막걸리 맛이 뒤섞여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조화가 느껴졌다. 칵테일 특유의 독한 뒷맛이 없고 향긋한 막걸리로 맛이 마무리돼 계속 맛을 보게 됐다. 칵테일 이름의 유래를 묻자 바텐더는 ‘우희열’은 한산 소곡주를 만드는 명인의 이름이라며, 가수 유희열의 노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선곡해 들려주었다.

첫 잔을 비우고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저마다 색도 모양도 각기 다른 다양한 칵테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바에서 칵테일이 만들어질 때면 향긋한 과일 향이 났다가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어떤 바텐더는 솔방울에 불을 붙여 향을 자아냈다. 그중 옆 손님이 주문한 칵테일에서 나는 오이 향이 오래 공기를 맴돌아 같은 칵테일을 주문했다. ‘충주김밥’이라는 뜻밖의 이름을 가진 이 칵테일은 충주에서 만든 ‘토끼 소주’에 막걸리로 밥의 느낌을 더하고, 오이 주스와 참기름, 깨를 첨가해 김밥의 요소를 모두 갖춘 칵테일이다. 바텐더는 연한 초록빛의 칵테일 위에 검은깨를 뿌려 칵테일을 완성했다. 향을 맡아보니 신선한 오이가 듬뿍 들어간 김밥의 냄새가 났다. 향이 주는 인상에 겁을 먹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바텐더는 “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얼른 마셔야 최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모금 마시자 갓 썬 향긋한 오이와 고소한 참기름의 맛이 한데 뒤섞여 났고, 끝에는 연한 소주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특색 있는 각 재료의 맛이 순차적으로 느껴져 정말 김밥과 같은 다채로운 맛이 났다. 걱정과 달리 매력적인 맛에 빠르게 잔을 비워냈다. 세심하게 만들어진 술 한 잔은 전통주와 칵테일 각각에서는 느낄 수 없던 오묘한 맛의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전통주 칵테일은 처음인데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임병진 사장이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공감’이기 때문일까. 그는 “다양한 지역의 전통주를 활용해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고향을 다시 떠올리고, 친숙한 재료를 활용해 ‘아! 이 맛이었지!’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며 “손님들이 이런 ‘공감’의 가치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참’에서 전통주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전통주가 주는 편안함과 칵테일이 주는 새로움 사이 각자의 저녁을 맡기고 있었다. 익숙한 소주와 이국적인 칵테일이 모두 떠오르는 날, 기와지붕 아래에서 전통주 칵테일을 즐겨 보면 어떨까.

■리큐어=혼합주의 하나로 알코올에 설탕, 식물, 향료 등을 섞어 만든 술.

 

'충주김밥' 칵테일.
'충주김밥' 칵테일.
'바참'의 내부 모습.
'바참'의 내부 모습.
'우희열의 스케치북' 칵테일.
'우희열의 스케치북' 칵테일.
사진 |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