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일러스트 I 김지우 기자 webmaster@


분명 꾹 눌렀는데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앱들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 해소는 국가와 사회에게 부여된 책무

 

우리는 ‘모두’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을까?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기술을 지닌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무한한 정보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의 발전이 고령층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사람이 아닌 기계와 마주하는 순간이 늘어났고, 메뉴를 묻는 기계의 목소리와 함께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기술을 이용한 실시간 정보 전달이 활성화되며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진보하는 기술 속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에 대해 알아보자.


고가의 시계로 전락한 노인들의 스마트폰
디지털 격차란 새로운 정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발생하는 차이를 뜻한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정보의 격차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격차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68.6%에 불과했다. 여기서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디지털 정보 △접근 △역량 △활용 수준이 모두 반영된 수치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 및 인터넷의 접근성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으나 질적인 활용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70대 이상의 경우,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이 29.7%로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어도 주로 전화나 시간 확인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 넘어 산, 고령층의 디지털 적응기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또 정보화 사회로 약 60년 사이에 빠르게 발전해왔다. 정보화 시대에 태어난 젊은 층과 달리 고령층의 경우 빠른 변화와 발전된 기술에 새롭게 적응하는데 심리적·물리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디지털 격차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신동운(67) 씨는 “데이터와 와이파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 채 밖에서 동영상을 시청했다가 요금 폭탄을 맞았다”며 “그 뒤로는 무서워서 전화, 문자 외에 다른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기를 잘못 조작해 연락처 등의 중요 정보가 사라지거나, 통신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김영선 교수는 “고령층은 과거 및 현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 새로운 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며 “고령자의 새로운 기술 이용 의향을 분석한 결과 기술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손쉽게 이용하는 동작조차 고령층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작업에 앞서 가장 기본적 기능인 터치에서부터 장벽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기기의 경우 압력이 아닌 손가락의 전류를 통해 터치가 인식돼 동시에 여러 버튼이 눌리거나 의도와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배경화면 내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은 살짝 누르는지, 길게 누르는지에 따라 다른 작업이 실행되는데 고령층의 경우 이런 작동의 이해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나아가 신체적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손 떨림이나 관절염, 시력 저하 등은 정교한 스마트 기기 동작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 

언어의 장벽 역시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디스플레이 등 기기의 조작에 필수적인 용어가 영어인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영어교육이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된 시기는 1997년으로 학습 기회가 적었던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영어에 취약해 기기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것이다. 대면 서비스라면 직원에게 물어볼 수 있으나 키오스크는 기계 속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앞선 수많은 장벽을 넘었더라도, 어렵고 복잡한 사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웹사이트의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며 최근에는 보안을 위해 비밀번호에 영어로 된 대문자, 소문자와 특수문자까지 포함해야 한다. 각종 공인인증서나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은행 업무, 등본 발행 등은 컴퓨터가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고령층이 사용하기 힘든 서비스인 것이다. 

기술이 준 그림의 떡이 도착했습니다
지난달 서울시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이순자(81) 씨는 음식을 주문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점원을 계속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서 다른 식당을 이용했는데 알고 보니 기계로만 주문하는 매장이었다”며 “기계를 다룰 줄 모르고 현금만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는 매장에 쉽게 방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많은 가게가 인건비의 절약을 목적으로 직원 대신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무인 판매기인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키오스크로 비대면 주문을 받는 가게가 증가하는 가운데 기계 사용이 미숙한 고령층이 겪는 불편함은 커지고 있다. 

은행도 많은 금융 서비스들을 온라인으로 옮기면서 오프라인 영업망을 줄여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뱅킹 서비스 이용 여부에 관한 질문에 60대는 18.7%, 70대 이상의 경우 6.3%만이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고령층은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기기 조작의 불편함을 꼽았다. ATM 기기를 이용한 은행 업무에 익숙하지 않고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창구를 통해 진행하는 고령층에게 온라인화되는 금융환경은 실질적인 금융 접근성의 저하로 이어진다. 

디지털 격차가 가져온 생활 속 불편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8월 제주도는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요금, 버스 노선, 번호체계 등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온라인으로 바뀐 정보가 즉시 업데이트됐으나 이를 확인하기 힘든 고령의 도민은 큰 혼란을 겪었다. 게다가 고령층의 버스 이용 데이터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채 운행 편수 및 노선이 변경돼 도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원장 문용식) 김봉섭 연구위원은 “정책 결정에는 주로 수집된 여러 데이터를 활용한다”며 “이에 디지털 기기를 통한 데이터 발생이 활발하지 않은 노인들의 정보가 적확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편함을 넘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으로
나날이 커지는 온라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금융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 이자 절감과 같은 혜택을 온라인 상품에 집중하고 있다. 2019년 9월 금융위원회의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홈페이지에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 신청한 경우에만 0.1%의 우대금리를 제공했다. 전자 기기를 이용한 복잡한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은 혜택을 누리기 힘든 것이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여러 금융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지만, 창구 거래의 경우 은행원이 제시하는 상품만을 접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좁다. 

온라인 서비스를 누릴 수 없어 겪는 상대적 불리함은 쇼핑에서도 드러난다. 할인 정보를 주로 전단지나 지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다양한 소비자들의 상품 후기를 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도 없다. 온라인몰로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무료로 배달해주는 대형마트의 당일배송 서비스나 새벽배송 서비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이용이 어려워 매번 무거운 장바구니를 끌고 올 수밖에 없다. 

전자민주주의 사회에서 디지털 격차는 정치참여에 불리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정치적 공론의 장이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디지털 기기 활용이 힘든 고령층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를 통한 디지털 정치참여에도 제약이 있어 상대적으로 집단적 의사표출 방법이 적다.
 

디지털 격차, 이제 생존의 문제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디지털 격차는 불편함을 넘어 생존에 연관된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감염 예방에 필수적인 마스크의 공급이 수월하지 못했던 작년 3월, 정부는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해 판매처와 판매량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 활용이 서툰 고령층의 경우 인터넷으로 안내되는 실시간 판매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서울시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안주현 약사는 “마스크가 모두 판매된 뒤에 약국에 방문해서 남은 마스크가 있는지 물어보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긴급재난문자를 받지 못하는 고령층도 많았다. 재난문자는 일반적인 메시지 전송과 다르게 휴대전화의 CBS(Cell Broadcasting Service) 기능을 이용하는데, 기지국에서 신호가 잡힌 모든 단말기에 라디오처럼 동시 송출되는 방식이다. 2013년 이후에야 스마트폰의 CBS 기능 탑재가 의무화돼 2G 단말기를 이용하거나 휴대전화가 없다면 재난정보를 실시간으로 알기 힘들다. 대화노인종합복지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계층에 속한 고령층의 경우 스마트폰 사용률이 20%에 불과했는데 이들은 재난에 더 취약할 수 있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재난정보에 접근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격차 없는 평등한 디지털 사회를 위하여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에서는 주민센터, 도서관 등을 활용해 전국적으로 ‘디지털 배움터’를 운영 중이며 △기차표 예매 △모바일 금융 서비스 △온라인 쇼핑 등 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을 교육한다. 이외에도 시니어 강사로 구성된 서울디지털재단 소속 ‘어디나 지원단’의 노노(老老) 교육, 교육로봇 리쿠(LiKU)를 활용한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디지털 교육을 진행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기가 교육받은 대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본적인 교육 이후에도 언제든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대리점, 사회복지사 혹은 마을 청년에게라도 고령층이 디지털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와 네트워크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에 능숙한 10대들의 자원봉사나 같이 학습해가는 고령층 내의 커뮤니티 활성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해결방법이 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고 음성지원을 확대하는 등 디지털 기기 자체를 사용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스마트 폴더’는 화면 외에 버튼으로도 조작할 수 있게 설계돼 화면 터치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의 이용 편의성을 높였다. 더불어 필수적인 정보들을 추가적인 설치 없이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모아놓은 앱을 개발해 보급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하드웨어적 개선뿐 아니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한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고령자들이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AI 스피커를 그 예시로 들었다. 김 교수는 “고령층을 위한 기술의 개발과 함께 고령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용 지속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반드시 함께 병행해야 한다”며 디지털 기기를 바라보는 긍정적 태도의 함양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기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리함과 혜택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학습 및 사용에 대한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정보화 시대 속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들은 이제 천연자원이 됐다”며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책무임을 강조했다.

* 사용자 인터페이스=컴퓨터의 입출력 장치 중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입력하고 제어하여 정보를 주고받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