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심 끝에 산 가디건이 무색하게도,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잔뜩 열이 오른 여름 날씨가 바로 코앞에서 더운 김을 훅훅 내뱉고 있다.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괜스레 걸음마다 가슴이 콩콩거렸던 지난 봄날은 여름의 기세에 눌려 어디로 도망 가버린 걸까. ‘아이고 날이 왜 이렇게 더운 거야.’ 투덜대며 금세 지나버린 짧은 봄을 아쉬워하다 보니 봄날과 우리 젊음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청춘이 올 때는 온다고 실컷 광고하고, 갈 때는 간다는 말없이 가버리는 한때의 봄날같이 짧고 아쉬운 탓이다. 아직 20대인 내가 이런 노숙한 소릴 하면 엄마나 이모들은 아직 어린 게 우스운 소리를 한다고 꿀밤을 놓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빠른 걸 어째. 불과 몇 년 새, 교복을 입고 자율학습을 하던 고등학생에서 어엿한 성인이 돼버린걸. 이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보낸 해는 오른손가락 다섯 개로 충분히 세고도 남지만,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책임들은 손가락 몇 개로 셀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불어났다. 지금의 생활을 영위할 조금의 물질적인 것들, 앞으로 내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상당한 비용,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적당한 예의. 혹은 그 이상. 이 모든 책임을 어깨에 이고, 취업을 준비하고 다양한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청춘이 진짜 봄날이 맞는 건가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무엇인가 해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뒤척이는 밤들. 그리고 엇비슷한 또래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구직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살벌한 경쟁.
그러나 우리, 생각을 살짝 바꿔보자. 봄날은 일 년 중 가장 짧지만 그만큼 가장 기억에 남고 하루하루가 감동이지 않는가. 춥고 팍팍한 겨울에 지난 봄을 생각하면, 따뜻했던 봄날의 추억이 떠올라서 가슴께가 훈훈해진다. 마찬가지로 십 년 이십 년 뒤의 우리에게, 지금의 젊은 날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나고 마음이 데워지는 연료가 되어 줄 거다.
그러니 우리, 조금은 부담을 덜고 남은 청춘의 봄날을 하루하루 즐겨보자. 쏟아지는 주변의 기대와 압박들은 모른 척 저리로 제쳐놓고, 난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박박 우겨버리자. 적당히 게으르게, 조금은 느리고 여유 있게.
내 봄날은 이제 시작이라는 핑계를 대며 철없는 소리를 한 번 더 해본다. 아이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아직 더 놀고 싶은데….
▲ 김현정(한교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