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캠 만남 - 무용학과 임학선 교수

기자명 정정락 기자 (woo7875@skkuw.com)

지난달 2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임학선 댄스 위’의 창작 무용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 가 펼쳐졌다. 무용수들이 몸짓으로 새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표현할 때, 그들의 뒤에서는 이에 맞는 영상이 상영되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은 6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무용계의 중견, 우리 학교 무용학과 임학선 교수다.

▲ /정현웅 기자 dnddl2004@

무용만을 바라본 50년
올해는 임학선 교수가 무용을 시작한 지 50주년 되는 해다. 50년을 한결같이 무용만 봐온 그녀지만, 무용을 하겠다고 큰 결심을 안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부모님은 여동생에게만 무용을 시켰다. 무용을 하는 동생이 예뻐 보였고 부러웠던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 몰래 학교 무용반에 들어가 무용을 시작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무용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대회에서 자주 상을 타곤 하더니 대학도 무용과로 진학하게 됐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어느새 50년이다. “진심으로 이 일을 즐겼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일만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오랜 시간 하나의 길에 매진할 수 있었던 비결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녀는 창작춤 1세대라 불린다. 전통 무용만이 존재하던 80년대에 창작춤의 영역을 개척해서 한국의 전통을 현대성과 접목하는 작업에서 큰 성과를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 무용을 실험적인 단계로까지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을 듣는다. 현재 그녀는 △우리 학교 무용학과의 교수 △국제석전학회 회장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무용단 ‘임학선 댄스 위’의 단장으로 바쁘게 살고 있다.

예술의 전환점이 된 성대와의 만남
창작춤으로 붐을 일으킨 후 10년, 그녀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것이다. 이에 그녀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으로 들어가 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1998년, 우리 학교 무용학과에 교수로 오게 됐고 이것은 그녀의 춤 세계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국제석전학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으며, 유학의 예악에 관련한 책을 세 권이나 냈을 만큼 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녀. 그러나 그녀는 성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유학에 문외한이었다. “성균관대학교에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성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유학에 눈이 갔죠.” 마침 성균관에서 매년 석전대제(釋奠大祭)(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공자를 기리기 위해 펼쳐지는 춤인 문묘일무(文廟佾舞)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만난 유학은 그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이론적 바탕이 됐다. “무대 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나만의 이야기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줬죠.”
그녀는 특히 유학의 악(樂)에 집중했다. “유학의 예악(禮樂)에서 악이란 춤, 노래, 음악, 연주를 통합하는 개념이에요. 유학의 정신을 구현하는 개념이 그 안에 모두 들어 있죠.” 이에 대한 연구를 위해 그녀는 3년 동안 한국과 중국의 도서관과 고서점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구했다. 또 제자들과 함께 일일이 옥편으로 뜻을 찾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며 고서를 번역했다. 그 결과 유학의 예악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집필할 수 있었다. 유학을 이처럼 예술적 측면에서 접근한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그녀의 저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주목받았다.

전통이 예술의 시작이다
그녀는 예술에서 ‘전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통은 창작의 기반입니다.” 그녀는 유학의 악 분야의 전문가로 초청받아 간 프랑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나 영국 등 예술 강대국들이 그들의 전통을 굉장히 중요히 여기며 그런 전통이 삶에 베여 곳곳에서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럽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은 낡은 것이라는 인식으로 전통을 모두 버렸어요.”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이 잘 보존되지 않는 것과 이를 중요히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전통은 수많은 변화에서 살아남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요. 세계 예술계를 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전통을 변화시키고 응용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았어요.” 
그녀가 유학 공부와 전통의 재조명을 통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공자>다. <공자>는 공자의 일생을 주제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무대물로 무용수 70여 명, 국악관현악단 30여 명 등 모두 100여 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여기서 그녀는 성인 공자보다는 ‘인간 공자’를 다루려 했고,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유교적 가치관과 인간주의 가치관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처음 만들 때부터 세계에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작품 작품을 꿈꿨다는 그녀. 그 바람대로 2004년부터 공연된 <공자>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펼쳤고, 큰 호응을 얻었다.

'임학선의 댄스 위'가 <버즈 아이 뷰>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한용운 제공

‘변화’ 그녀를 움직이는 힘
언뜻 보면 임학선 교수는 전통만을 중요히 여기는 예술가 같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늘 변화를 꿈꾼다. 1980년대, 그녀는 변해가던 세계 예술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 전통춤도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명 ‘춤 문화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도 전통 무용의 틀을 넘어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보수적이었던 무용계의 분위기 때문에 그녀는 선생님들이나 선배들로부터 숱한 질타와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헛되지 않았다. 몇 년 후, 창작춤은 붐을 일으켰고, 이후 무용계에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무용 또한 소재나 주제가 다양화되고 현대적인 표현이 가능하게 됐다.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들었던 그녀는 이제 기성 창작 무용을 대표하는 중견 예술인이 됐다. 그러나 그녀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않았다. 자유로운 무용 공연을 위해 직접 만든 소극장 ‘두리춤터’에서 몇 번의 실험적인 작품을 공연한 후,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최근 공연된 <버즈 아이 뷰>다. “대중에게 조금 더 재미있고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예술에도 융합이 필요해요.” <버즈 아이 뷰>는 영화 연출가와 그녀가 함께 만들어 낸 작품으로 무용에 영화의 영상 기법을 더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영화와 공연이 합쳐진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녀는 우리나라의 문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젊은 무용수들과의 교류는 그녀에게 변화와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협업은 새롭고 깊이 있는 작품에 꼭 필요한 거예요.” 그녀가 이끄는 무용단 ‘임학선 댄스 위’는 단순히 그녀가 이끄는 무용단이거나 제자들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젊은 사람들과의 협업은 나태해져 있던 저를 깨우고, 영감과 창의력을 제공해주는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 자신의 춤 세계에 젊은 피를 수혈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면서도 우리 전통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는 그녀.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엔 계획하고 있는 실험적 무용이 가득하다. 젊은 무용수 못지않은 열정과 노련함까지 갖춘 중견 예술인은 오늘도 변화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