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교를 오르는 명륜당 앞 보도블럭에 설익은 은행의 꼬릿한 냄새에 가을이 온 것을 느끼려는 찰나, 날이 선선해지면서 신문 지면은 온통 아웃도어 광고로 넘쳐난다. 한 벌 갖추려면 몇 백 만원은 족히 드는 아웃도어 광고를 보니 근교 산에 가는데 에베레스트 원정갈 때 입는 옷을 걸치는 형국(形局)이 따로 없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남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이목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청계산을 가는데 200만원을 들여 아웃도어를 걸쳐야 소위 “쪽팔리지 않고” 그나마 체면이 서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걸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입었느냐일 것이다.
한 때 우리나라는 아침형 인간이 사회적 화두였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의 기본조건인 것처럼 모두들 알람시계를 새벽 다섯시 반에 맞추고 학원 새벽반은 출근 전 직장인으로 넘쳐났다. 몸짱 열풍이 불 때는 퇴근 후 수영장이나 헬스장에 가는 사람들이 늘고 각종 운동들이 유행이었으며, 한때 자전거타기 열풍으로 국내 자전거 업체의 주식은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하였다. 웰빙이라는 트랜드에 맞춰 채식과 유기농 제품을 찾으며 너도나도 힐링을 위한 책과 숲길을 찾아 헤맨다. 명량이 천팔백만을 돌파했다니 왠지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영화를 봐주기도 한다. 프랑스 경제학과 피케티가 지난 12월 출간한 <21세기 자본>은 전 세계적 열풍에 이어 저자의 방한과 함께 순수 경제 학술서적으론 이례적으로 주간베스트셀러 1위까지 등극했다.
이렇게 유행과 트랜드에 너도나도 발맞춰 따라가는 현상은 대학가도 다르지 않다.
스펙이라는 정해진 틀에 맞추어 그것을 갖추기 위해 대다수의 학생들은 영어학원을 다니고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각종 인턴십의 경쟁률은 100:1에 가까우며 국토대장정과 드림클래스, 멘토링 캠프도 마다하지 않는다. 혹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도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불안이 부화뇌동(附和雷同)을 부추긴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학원에 등록하고 부모님께 연수를 조르고 생각지도 않았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하지만 정작 부딪혀보니 내께 아닌 것 같아 모든 것들이 작심삼일에 그치고 만다.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시작되어 수많은 기업이 사원을 채용하지만 누구랄 것 없이 삼성. 현대. SK를 가려하니 3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같은 시험에 목을 맨다. 우리는 지나치게 타인 지향의 삶을 산다.
타인지향은 나를 상실하는 것이고 선택의 기준을 남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타인지향의 "체면"은 자신의 생각과 주도성을 방해한다. 한때 대학가 주점을 풍미했던 “아무거나” 라는 안주는 자신을 잃어버린 주도성 상실의 정점이다. 주는 건 뭐든지 먹는데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없는 형국인 것이다. 모든 선택에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따라 우리는 선택을 하지만 그 기준이 내가 아닌 남에게 있으니 여기 힐끔 저기 기웃 거리게 된다.
사전(辭典)은 단어에 대한 정의(正義)를 내리는 것이고 그렇게 내려진 정의는 선택의 기준이 된다. 지금 우리는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불행을 탓하고 실패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행복은 무엇이고 성공은 어떤 모양인지 자기만의 정의와 스스로 정한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는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보편적 “인간”으로 살 것이 아니라 자발적 주도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적인 “나”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보편성, 기준, 개념을 딛고 서서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만의 인생을 정의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주체적인 “나”로 사는 일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나라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부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