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한국학이 요새 주목받는 학문분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학이란, 말 그대로 한국에 관해 연구하는 학과이다. 한국학에 앞서 유사한 분과로 국학이 주목받은 바 있다. 국학은 국내 학자에 의해 연구되어온 전통적 한국 인문학의 총합이며, 한국학은 전 세계의 관찰자에게 초시간적 한국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이해시키고자 하는 학과이다. 한국학의 내용은 국학의 내용을 주된 분야이자 원천으로 삼는다. 이 대목에서 한국학의 정체성 혹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고자 한다면 국학의 정체성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선이란 봉건왕조가 외세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그들만의 고유한 질서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정치와 철학과 사유를 지배했던 유학도 외래 질서였고, 우리의 감성과 레토릭을 지배했던 한문학도 외래 질서였으며, 상층의 문화와 제도를 상징적으로 규정지었던 서예ㆍ미술ㆍ음악ㆍ무용ㆍ의상 등의 예술 역시 외래 질서였다. 심지어 민중들의 망탈리테를 보여주는 문화ㆍ예술적 형식들 가운데서도 외래 질서거나 그것에 대한 모방이 있었다. 이 외래 질서의 양상은 시기별로 진화하였다. 조선시기의 외래 질서에서의 외부는 명과 청이라는 두 개의 중국이었고, 일제 강점기의 외부는 서구화된 혹은 서구화를 지향하는 일본이었으며, 해방 이후의 외부는 세계질서로서의 미국이었다. 조선 이래 우리의 국학에는 혹은 그 국학을 생산한 사람들의 의식에는 이와 같은 다채로운 외래 질서들의 스펙트럼이 아로새겨져 있다. 조선만 따지면, ‘조선중화주의’라는 치명적 표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다시피 정치ㆍ문화ㆍ학문ㆍ예술ㆍ종교 등 모든 방면에서 우리의 고유 질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또한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근대 또한 우리의 근대가 아니었다. 우리 질서의 부재가 당연히 우리 근대의 부재로 이어진 것이다. 이입된 질서가 이입된 근대로 이어진 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어 지나갔다. 더구나 지금의 시점은 더 이상 보잘 것 없는 한국이 아니다. 경제력 상승 등에 의해 한국의 국력은 신장되었고, 한류에 의한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 또한 증대 일로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 속의 한국이다. 그렇다면 국학 종사자가 짊어져야 할 일차적 임무는 우리의 질서를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의 질서들로 생산된 유물을 마치 전승기념물처럼 살피는 것은 다분히 국수주의적 시각이다. 민족주의적 효용성과 가치는 물론 있지만, 때로는 제삼자의 시각으로도 살펴야 한다. 외래 질서와 내재 질서가 마구 뒤섞인 내용물이 오직 한반도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학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한편으로는 외래 질서에 가려졌거나 훼손됐거나 파기되었던 우리 고유의 질서가 무엇인지 발굴해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구동시킬 우리 고유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만의 고유한 이 질서가 바로 진정한 한국학의 정체성이다. 인문학 뿐 아니라 예술 및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까지의 분야에서도 한국학이 흥기해야 한다. 이 폭넓은 학과의 총합 혹은 융합에서 한국 고유의 질서가 수립되기에 그렇다. 무한 경쟁의 치열함을 갖지 않고 내부 거래만이 횡행하는 현실 안주의 국학 연구는 음풍농월이다. 국학을 하는 것이 꼭 한국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