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연 기자 (sheonny@skkuw.com)

인터뷰 – 강병호 도시 서체 디자이너

처음으로 직접 작업한 마포나루체가 가장 기억에 남아

도시 브랜딩으로 전하고 싶은 가치는 정체성의 소중함

안동시의 대표 새인 까투리를 활용한 ‘엄마까투리체’와 부여군의 소중한 유적지인 정림사지를 표현한 ‘정림사지 서체’를 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글꼴로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현재 ‘도시 브랜드 연구소’의 대표이자 도시 서체 디자이너로, 도시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서체를 위해 오늘도 전국을 활보하며 고군분투하는 그, 강병호 도시 서체 디자이너를 만나보자. 

도시 서체 디자이너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초등학생 때 받았던 ‘글씨가 참 예쁘다’는 칭찬을 계기로 글씨를 쓰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대학생 때 간판에 사용된 서체를 살펴보다 고향 창원시의 버스 정류장에 활용된 ‘서울남산체’를 발견했다. 창원시에 서울 서체가 쓰인 모습에 아쉬움이 남아 창원시만의 서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후 그 꿈을 위해 서체 기업 ‘윤디자인’의 영업 기획 2본부에 입사했다. 업무 도중 시간이 나면 서울시부터 제주도까지 240개의 시·도청에 직접 전화를 걸어 도시 서체의 필요성을 전했다.
 

도시 브랜딩에서 서체만이 가진 강점은.
서체만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영속성이다. 로고나 슬로건은 지자체장의 교체와 함께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체는 반영구적으로 축적되는 디지털 자산이기에 장기간 활용된다. 더불어 무료로 배포된 도시 서체는 간판 등에 쓰일 수 있어 활용성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현재 60곳 이상의 지자체에서 서체가 개발될 만큼 도시 서체가 발달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도시 서체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창원시의 서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뤄준 ‘창원단감아삭체’도 있지만 서울시 마포구의 ‘마포나루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는 퇴사 후 마포구청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모티브로 왁자지껄하고 자유분방한 축제의 분위기를 담으면서도 서체의 균일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애정 가는 작품인 만큼 일 년 내내 작업 과정을 프린트해 보관하기도 했다. 마포구 곳곳에 활용된 마포나루체는 여전히 내게 위로와 용기가 된다.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기반으로 한 마포나루체. ⓒ마포구청 공식 홈페이지 캡처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기반으로 한 마포나루체. ⓒ마포구청 공식 홈페이지 캡처

 

서체 도시 브랜딩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는.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도 각자만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가치가 있기에 존재만으로 특별하다. 도시 서체를 작업하기 위해 해당 도시에 찾아가면 뛰어난 문화 자원이 있음에도 정작 주민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각 도시와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특별한 강점을 찾고 이를 정체성으로 삼길 바란다. 나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비전을 찾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시 브랜딩은 어떤 상황인지.
우리나라의 도시 브랜딩은 지역 설화나 특산물을 근간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든다는 특징을 지닌다. 남원시에서 춘향전을 도시 브랜딩에 활용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많은 도시에서 되풀이되니 비슷한 양산형 작품들이 생겨나는 추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민이 모인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시의 문화 자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모이면 각 도시만의 특성을 담은 도시 브랜딩이 가능해진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양질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한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는 경북 문경시의 특산물인 사과를 모티브로 한 ‘문경감홍사과체’를 작업하고 있다. 서체는 누구나 한눈에 오브제를 떠올리도록 직관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동글동글하고 꽉 찬 사과의 모습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도시 서체 개발을 통한 궁극적인 목표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공공적인 활동인 도시 디자인에만 몰두하며 소멸 위기의 지역을 소생시키고 주민을 돕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 

강병호 도시 서체 디자이너. 사진 | 이서연 기자 sheonny@
강병호 도시 서체 디자이너. 사진 | 이서연 기자 sheo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