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함께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주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던 말이다. 더구나 그 언어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아니라 대통령의 취임사를 통해서 들려왔다. 지성의 전당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서 염치없으나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사라진 언어는 잊혀진 세계를 가리키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지성’의 세계와 그 언표가 이런 방식이나마 우리 기억 속에 다시 등장했다. 민주화의 열기가 가득했던 1980년대의 대학교정은 지성, 지성인, 지성의 전당, 상아탑과 같은 생명력이 박동치는
예전 고3 막바지에 대학을 합격해 놓고, ‘대학생’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대학의 이념』(야스페르스 저, 민준기 역, 서문문고)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샀다.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책이었지만, 내용은 너무 어려웠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서 초자연적이며 초국가적이고 전 세계적인 이념으로부터 그 자유를 부여받는다.’ 같은 문구에 줄을 치고 골똘히 생각해봤으나, 고등학생의 지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난해하면서도 무엇인가 매혹적인 그 문장들이 대학에 대한 나의 기대를 높
역지사지라 는 말은 “네 입장을 떠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라”는 의미의 한자성어이다. 현대 정치사회윤리 자체가 역지사지에서 출발한다.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의 근본 원칙은 “당신 생각에 보편적인 법률이 되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라 (Handle nur nach derjenigen Maxime, durch die duzugleich wollen kannst, dass sie einallgemeines Gesetz werde)”이다. 자신의 입장을
토요일 이른 아침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다. 우리 위성 달 동쪽에 위치한 ‘풍요의 바다’ 탐사기지국에서 세계지질자원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서 우주행성 지질자원 활용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는 아내에게서 온 전화다. 지난 2080년부터 시작된 우주개척 붐을 타고 일어난 우주산업혁명을 통해 개척되기 시작한 6개의 달탐사기지국 중의 하나인 ‘풍요의 바다’ 탐사기지국은 한국-일본-중국 3국이 주도적으로 개척한 곳으로 핵융합에너지 활용도가 높은 헬륨-3 자원발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늘은 중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서해 상공 400여 km에
일반적으로 인재는 I자형과 T자형으로 구분한다. I자형 인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느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이다. I자형 인재는 소품종 대량체제의 산업사회에서는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전문가형이 필요했다. I자형 인재는 80년대, 90년대 당시의 일본의 소니가 좋은 사례이다. 소니는 세계 최초 하면 떠 오르는 기업이었다. 오디오, TV, 컴퓨터 등 소니 가전은 늘 세계 최초의 고가 제품이었다. 소니의 제품이 1등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쉽게 남들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아나로그 기술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기게스의 반지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마법 반지이다. 이 반지를 낀 자는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어 어떠한 불의(不義)를 저질러도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이 반지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물체에 비춰진 빛의 반사 형태를 관측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지의 상징성을 떠나 물리적으로만 본다면 손가락에 낀 자그마한 금속조각으로 시야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명인간에 대한 욕망은 반지의 역사만큼 길지만 기술적인 단초가 마련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클로킹(cloaking)이라 부르
동물은 한자로 動物이니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해 위치를 바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동물은 여러 신경세포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뇌를 이용해 정보를 처리한다. 사람의 뇌에는 여러 부분이 있다. 뇌 안쪽 깊숙한 곳에는 인간과 파충류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뇌줄기가 있다. 호흡이나 심장박동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 뒤통수 아래쪽에 자리 잡은 소뇌는 몸의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조율한다. 척추동물 대부분의 뇌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부위다. 포유류의 뇌에는
“연구중심 선도대학”은 우리 대학 vision 2030의 두 번째 큰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 소프트웨어를 혁신하며, 연구형 학문후속세대 육성에 투자한다”는 선언이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라있다. 실로 고무적인 비전이며 말이지만, 과연 이 목표가 얼마나 현실성 있게 실행ㆍ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네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 국가의 학문후속세대 육성사업에 의지하는 것 외의 우리 대학의 독자적인 학문후속세대 육성 계획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대학은 4단계 BK21 사업에서 전국 최고 수준으
뉴스를 검색하는 데 ‘MZ세대 글로벌 대형 행사’, ‘대선 후보의 이남자 공략’, ‘욜로 족과 파이어 족’ 등 세대나 부류를 나누고 규정하는 용어가 눈길을 끈다. 한 경제용어사전에 의하면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로서 이들은 2021년 현재 10대 후반에서 30대의 청년층으로 휴대폰, 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다. 이들은 변화에 유연하고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쓰는 돈이나 시간
미래의 역사가는 20세기 중반이후의 인류사를 요약하며 그 중요한 특징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나 우주진출 등과 함께 민주주의의 만개를 꼽을 것이다. 오늘날은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민주주의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인기있고 가장 널리퍼진 정치제도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정치체를 떠나 어떤 조직이에서든 관철되어야 할 보편적인 원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경제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회사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동호회, 심지어 가족내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초등학
마름모꼴 몸통에 짙은 반점이 있고 주둥이가 짧은 홍어가 갯벌바닥에 숨어 있다. 꽃게, 돔, 광어, 우럭 등 먹이가 될 만한 어패류가 풍부하니 몸을 빨리 날릴 필요는 없는 듯 바닥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산란을 마친 어미 홍어 주위로 새끼 간재미 무리들이 햇살이 들어오는 섬마을 연안 바다에서 꿈벅꿈벅 날개 짓이 한창이다. 타원형의 납작한 몸통의 쏨뱅이도 바닥근처를 오가고 야행성인 곰치는 바위틈에 숨어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달리 멍하니 입을 쩌어억 벌린 체 아가미로 신선한 물을 연신 보내고 있다. 근처에는 아직 북상하지 않은 고등어 떼
매년 가을이 다가오면 학생들로 부터 기업 면접 지도요청을 받는다. 이때에 꼭 확인하는 것이있다. 동아리 활동 내용이다. 기업에서 면접위원으로 참여할 때의 일이다. 대학생활에서의 동아리 활동을 질문하게 된다. 동아리 활동 내용 중에서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나 본인의 기여도나 또는 무엇을 얻었는지를 관심 있게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는 다른 학생들과 협업해서 성공한 사례를 물어보기도 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답변하기 어렵다. 가끔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물어보면, 많은 학생들이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했더라
자연계에는 수많은 신호가 다양한 물리량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압력과 빛의 변화를 가장 중요한 신호로 인지한다. 듣고 보고 말하는 모든 과정은 이 변화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과정이다. 전자기기에서 이 모든 신호는 전자의 축적을 통해 전압신호로 변환된다. 전자공학은 이 전자들을 축적하고 통제하는 소자를 개발하고, 이 소자들을 집적하여 입력된 신호를 원하는 형태의 신호로 재가공한 후 최종적으로는 원거리로 전송하거나 다시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물리량의 형태로 변환하는 제반 과정을 다룬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전자공학의 역사는 더 많은
긴 역사에서 인간이 서로 만나 소통하는 범위는 끊임없이 늘어왔다. 오래전 선사시대 선조들은 많아야 몇백명 정도의 사람과 가까이서 소통했다. 요즘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과 소통한다. 이제 소통은 전 지구적 규모다. 더 넓은 연결로 소통도 늘었지만, 분열과 갈등도 함께 늘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기적 개인의 관점이 있다. 하지만 눈을 돌려 주변을 보라. 자신을 뺀 다른 모두와 투쟁하는 이는 현실에 없다. 오래전 여름휴가 때 들린 해변 가 상점은 휴가 온 외지인에게 높은 바가지요금으로 상품을
상당히 묵직한 주제였다. 그러나 시장판 논란으로 끝났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운운하는 현 정부를 향해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갈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는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든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건 바로 북한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슈에 대하여 반대당은 물론이고 같은 당의 동료의원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 책무라고 그를 질타했다. 그의 애매모호한 자구선택이 논란을 부채질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을 “국민”
지난 13일 한적한 오후, 문주원(정외 19) 학우가 인사캠 성대신문사를 방문했다. 지난 1678호를 미리 읽고 온 문 학우는 자신의 생각을 빼곡히 메모해왔다. 문 학우와 함께 신문을 한 면씩 자세히 살펴보며 평가를 들어봤다.보도면 비판해 달라.전체적으로 칭찬에 비해 비판이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절학기 전공강좌 기사는 ‘강좌 증가’에 초점을 맞춰 내용이 전개된다. 하지만 전공강좌 개설은 사실상 17%에 불과하다. 이 점에 집중해 기사를 비판적으로 실었다면 조금 더 문제의식이 드러났을 것이다. 학술정보관 장서 수 부족 기사에서는
시인 기형도는 청춘의 우울한 상징이자 위로였다.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은 청춘들 사이의 선물 목록 1순위였고 여전히 스테디셀러이다. 그는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뇌졸중이 사인이었다. 그의 시 『빈집』은 열렬하게 전파되고 읽혔다.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최근 언론을 통해 국제적으로 반도체 공급이 대란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고, 얼마 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 중에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설명하는 사진이 대부분의 신문 지면에 실려 나왔다. 반도체 품귀 현상은 현재 여러 가지가 함께 겹쳐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먼저 피부로 와닿는 최근의 변화는 2020년 초부터 발생한 코로나19로 집콕이 늘며 가전제품의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요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공장 한파로 인한 장기간 셧다운과 일본 반도체
웃음은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어릴 때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웃음은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며, 함께 웃다 보면 어느덧 이제까지 둘갈라놓던 섭섭함이나 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정이나 연대감이 생겨난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쓴 영원한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이면서 인간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웃음을 터부시하고 억누르려 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소
“자연의 법칙을 찾는 것이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가지고 하는 창조적 게임이다. 이 게임의 장애물은 실험적 기술의 한계들과 우리들의 무지며, 목표는 전체 우주를 지배하는 내부적 논리인 물리의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연의 법칙들을 찾을 때, 사냥할 때와 같이 오랜 흥분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들의 커다란 사냥감-바로 우주의 암호-를 쫓고 있다.” 30년도 더 지나서 이제는 색이 바래 버린 책 ‘우주의 암호’에 나오는 구절이다. 록펠러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자 뉴욕 과학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한 하인즈 페이겔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