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생토록 착실했고, 단정했고, 금욕주의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며, 깨끗했고, 언제나 시간을 잘 지켰고, 복종했고, 신뢰를 쌓았고, 예의 바른 삶을 살았으며, 빚이라고는 진 적이 없고, 남에게 폐를 끼친 적도 없고, 병에 걸린 적도 없고, 사회 보장 보험금에 신세를 진 적도 없고, 언제 그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일생 동안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말고는 절대로, 결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다.”

  조나단 노엘, 그는 상처받은 사람이다. 불행한 과거사 탓에 자신을 꽁꽁 무장한 폐쇄성 짙은 성격을 지녔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정확히 말하면 스침일 뿐이지만)을 꺼린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무감각에 빠져있다. 그의 삶은 수동적이다. 조나단 노엘의 삶은 어쩌면 우리들의 전형적인 표상으로 볼 수 있겠다. 나약한 인간. 우리는 늘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수많은 규칙과 규범을 세워 세상을 예측하려 한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자신을 둘러싼 벽이 높고 두터워진다. 자기 방어가 강하면 강할수록 극단적으로 고독하길 원하고 혼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구속받길 싫어하면서 구속받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누가 됐든 간에 그렇게나 증오하던 타인, 다른 사람의 체온을 갈망한다. 우리는 늘 외롭다.

  여기 외로운 사람 한 사람이 더 있다. 『비둘기』의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만들어낸 또 한 사람. 바로 『향수』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히 혼자였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그를 버리려고 했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다음날 교수형을 당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살인자가 된 셈이다.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성격과 그에 따르는 운명이 결정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르누이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기형적으로 예민한 후각을 타고났다. 스스로는 아무런 체취도 없으면서 모든 냄새를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한다. 그는 향기를 사랑한다. 아니 향기는 사랑받고 싶은 그르누이의 욕망이다. 아름다운 향기를 자신의 몸에 입힘으로써 그 향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대리 만족적인 사랑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본인의 체취인 마냥 배어 있는 거짓의 향기를 증오한다. 그는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움을 받아도 괜찮으니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부딪히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타인에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길 원한다. 하지만 향기로 인한 충족은 대리 만족일 뿐, 결국 자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 속에서만 흡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 없는 그르누이의 내면은 얼마나 황폐할까.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더라면, 그의 손을 한번만이라도 잡아줬다면 조금은 다른 방향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쥐스킨트의 작중 인물들은 우울하고 내향적인 성격에 사교를 싫어하는 작가 자신을 담아내고 있다. 대부분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고독하고 소외된 인간이다. 조나단 노엘과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그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외로운 인간상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