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 속 샤갈의 <신부>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가요를 듣고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전부 사랑 얘기뿐이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겹다, 식상하다 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켜지요. 남의 이야기지만 그저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은 가사가, 화면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영화 <노팅힐>의 윌리엄과 안나

‘노팅힐’의 여주인공 안나는 유명 영화배우이자 일거수 일투족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대스타입니다. 그런 그녀가 여행서적만을 취급하는 허름한 서점에서 책을 파는 평범한 남자 윌리엄에게 고백합니다. “잊지 말아요. 난 단지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걸” 이처럼 언뜻 보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몰라요.
여느 영화처럼, 둘의 만남은 운명처럼 찾아옵니다. 어느 날 윌리엄이 일하는 서점에 안나가 찾아오지요. 윌리엄은 안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기뻐하지만 책을 산 그녀는 곧 서점을 떠납니다. 그러나 우연히 다시 마주친 안나의 옷에 주스를 쏟고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갈 것을 권합니다. 차 한잔하자는 윌리엄의 부탁을 뿌리친 안나가 옷만 갈아입고 훌쩍 떠나면서 둘의 만남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짧은 순간에도 사랑의 감정은 싹텄고 안나의 바쁜 일정에도 둘은 만남을 이어나가게 되지요. 그러나 둘에게도 곧 위기가 찾아옵니다. 안나가 있는 호텔에 찾아간 윌리엄이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안나와 윌리엄은 다시 우연한 만남이 있기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려 애씁니다.
그런 그들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안나가 데뷔 초 찍었던 누드 사진이 화제가 돼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이죠.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던 안나는 다시 윌리엄의 집에 찾아옵니다. 오랜만에 재회한 윌리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안나는 윌리엄의 집에 걸린 샤갈의 <신부>를 보고 반색합니다. 그림 속 신랑과 신부는 바이올린을 켜는 염소와 동물들의 축복을 받으며 짙푸른 하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윌리엄의 집에 이런 그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짙은 청색 하늘을 떠다니는, 사랑에 빠질 때의 행복함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윌리엄도 그런 그녀의 말을 흐뭇하게 받아주지요.
샤갈의 <신부>
샤갈은 화려한 색채를 이용한 몽환적인 세계의 표현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였어요. 그러나 그의 그림을 말할 때 동반자였던 벨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 샤갈은 당시 겨우 열세 살이었던 그의 아내 벨라에게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샤갈은 그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6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가난한 유대인 신분으로 부유한 보석상의 딸 벨라와 결혼합니다. 이후 벨라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샤갈은 <신부>를 비롯한 그의 많은 작품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샤갈의 축복이었는지 안나와 윌리엄도 그들 앞에 찾아온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합니다. 윌리엄과 샤갈처럼 자신이 선망해오던 상대와 행복한 결실을 맺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일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기적을 이뤄낸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요. 한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 6년 동안 기다리고, 또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는 것. 변변찮은 신분의 이혼남이 유명 여배우를 좋아하게 되고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는 것. 분명히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어떤 일을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그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지요. 불가능을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갔던 그들의 노력을 기적이란 말로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