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에게> 속 무용극 <카페뮐러>

기자명 정재윤 기자 (mjae@skkuw.com)

©Filmes, apenas.
무엇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명쾌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방이 행복하도록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할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 <그녀에게>를 보면 그것만을 사랑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 <카페 뮐러>의 공연장에서 시작됩니다.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수십 개의 의자가 놓인 무대 위에 있습니다. 깡마르고 안색이 파리한 여자들은 눈을 감고 고통스럽게 춤을 춥니다. 여자들이 의자에 부딪히지 않도록 남자는 다급하게 의자를 치웁니다. 남자는 매우 슬퍼보입니다. 이후 지친 표정의 새 남자 무용수가 등장합니다. 춤을 추던 여자는 그의 팔에 안기지만 남자는 반응 없이 가만히 서 있기 때문에 여자는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이 무용극을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두 남자가 영화의 주인공인 마르코와 베니그노입니다.
극장에서 돌아온 베니그노는 사랑하는 알리샤에게 무용극에 대해 말해줍니다. 알리샤는 눈을 감고 누워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식물인간이기 때문이지요. 베니그노는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입니다.
4년 전 알리샤는 베니그노의 집 앞 무용학원의 학생이었습니다. 베니그노는 우연히 창밖으로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매일 알리샤를 훔쳐보고 집에 돌아가는 그녀의 뒤를 쫓기도 합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알리샤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우연히도 베니그노의 환자가 됩니다. 그 후 그는 알리샤를 지극정성으로 돌봅니다. 씻기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이지요.
마르코는 실연의 상처를 가진 잡지사 기자입니다. 그는 우연히 유명한 투우사인 리디아를 인터뷰하게 되지요. 그녀 또한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있었고 같은 아픔을 겪은 둘 사이엔 급격하게 사랑이 싹틉니다. 어느 날 리디아는 마르코에게 경기가 끝난 후 꼭 할 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그날 성난 황소에게 받혀 식물인간으로 돌아옵니다. 마르코는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그녀를 보살핍니다.
베니그노와 마르코는 연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러나 두 주인공의 사랑엔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돼 있습니다. 베니그노는 알리샤와 영원히 함께하고픈 욕망 때문에 식물인간인 그녀와 성관계를 맺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성폭행한 것입니다.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베니그노에게 마르코는 “자넨 알리샤에게 혼자 떠드는 거야. 나무 키우다가 정들었다고 결혼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연인과 소통하지 못한 것은 마르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를 당하던 날 리디아는 할 얘기가 있다고 마르코에게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만을 계속해서 얘기합니다. 투우가 끝나고 대화를 하자는 리디아에게 그는 “우리 지금 얘기하지 않았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당신 혼자만 얘기한 거지, 난 아냐”라며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식물인간이 돼 돌아온 그녀는 말이 없지요. 그 후 한 남자가 찾아와선 그녀가 마르코에게 하려던 말은 옛 연인인 자신과의 재결합 통보이며, 리디아는 자신이 돌보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베니그노는 알리샤를 성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고 마르코도 리디아를 떠납니다. <카페 뮐러>의 여자 무용수가 남자 무용수에게 끝내 안기지 못한 것처럼 베니그노와 마르코도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연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사랑을 공유하길 꿈꿉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대화는 응답이 없는 반쪽짜리였지요. 사실 그들은 연인과 소통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연인의 행복을 위해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랑엔 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같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더라도 그 마음이 일방통행이라면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리디아가 식물인간이 되어 괴로워하는 마르코에게 베니그노는 “그녀에게 말해보세요(talk to her)”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talk ‘to’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talk ‘with’가 돼야 합니다. 사랑은 한 쪽의 일방통행으로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연인의 팔에 안길 때, 연인 또한 당신을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