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장 손대현 인터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사진 손대현 제공
서울 무형 문화재 1호 옻칠장. 그에게 따라 붙는 첫 수식어다. 공방 문 앞으로 마중을 나온 손대현 씨는 소박한 옷차림과 안료로 얼룩진 손이 잘 어울리는 진정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한국 문화의 집에서 일반인을 위한 옻칠 강의에 힘쓰는 한편 우리 칠기로 세계에 ‘노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에 위치한 ‘수곡공방’을 찾았다. 

엄보람 기자(이하 엄) ‘옻칠장’으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옻칠장인과 나전 장인이 따로 있는 것인가
손대현 옷칠장(이하 손) 나전 장인은 소라나 전복 같은 조개패를 가공해 문양을 오리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옻칠장은 백골* 위나 나전 작업이 끝난 작품 위에 칠을 해 마감을 하는 사람이고요. 우리가 흔히 나전칠기라고 하는 물건들은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나무를 깎아 초기 목재 틀인 백골을 짜는 사람과 나전을 하는 사람, 옻칠을 하는 사람이 다 따로 있지요. 몇 십 년 씩 나전칠기 작업을 하다보면 모든 과정에 능해지긴 하지만 저는 옻칠에 주력하고 있어요.

엄 : 옻칠작업의 과정이 궁금하다
손 : 잘 짜인 백골이 도착하면 표면에 처음으로 생옻칠*을 해요. 나무가 생옻칠을 빨아들인 후 마르고 나면 일차적으로 방습과 방부의 효과가 생기지요. 그런 다음 찹쌀풀과 생옻칠을 섞은 천연 접착제로 삼베나 모시, 소창 등의 천을 바릅니다. 천을 바르는 작업은 나무가 늘거나 줄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그리곤 옻액과 황토를 섞어 바르고 건조하는 작업을 3회 정도 되풀이하지요. 나무와 칠, 천과 흙 등이 두껍게 발라져 있어 이쯤 되면 백골은 돌처럼 단단해집니다. 그 표면을 숫돌로 곱게 간 후 오려놓은 나전문양을 붙이고 또다시 자개 두께 만큼 칠을 채워줘요. 자개 문양이 드러나도록 갈아주고 칠하기를 5회 정도 한 후 마지막으로 자개문양을 긁어내 광을 내면 드디어 나전칠기 하나가 완성됩니다. 보통 3개월 정도를 요하는 긴 작업이지요.

엄 : 옻칠장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까지의 과정이 듣고 싶다
손 : 64년도, 그러니까 열댓 살 즈음에 담배 심부름도 하고 구경도 하던 나전칠기 공방이 있었어요. 어느 날 막 포장을 하고 있는 완성 단계의 작품을 보고 있는데 그 빛깔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던 분야였는데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스승님인 민종태 장인의 공방에 열심히 들락거리면서 결국 제자로 들어갔지요.
스승님께 배우는 옻칠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매일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난롯불 피워놓고 청소도 해 놓을 만큼 일에 푹 빠져들더라고요. 스승님이 안 보시는 듯 하시면서도 결국은 다 아시곤 제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 칠방 전체를 저에게 맡기셨어요.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는 1대 스승님께 받아 평생을 쓰신 수곡(守谷)이라는 호를 물려주시면서 “이제 네가 써라” 유언처럼 말씀하셨고요. 수곡은 ‘자그마한 골짜기라도 제대로 지켜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요. 우리들이 배우고 익힌 기법을 변형시키지 말고 잘 지켜가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99년도에 옻칠장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더 절실해졌고요.

엄 : 기술적인 것 외에 스승님에게서 가장 크게 배운 바가 있다면
손 : 어느 날 일본 바이어가 스승님을 찾아와 차 도구에 옻칠을 해달라는 주문을 했어요. 오동잎 같이 생긴 일본식 문양을 꺼내더니 나전으로 써달라고까지 했지요. 일본에서 한창 옻칠품이 인기가 좋을 때라 발주하면 이익이 상당했을 텐데 스승님께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더라고요. 문양은 내가 알아서 우리 것으로 할 테니 받아들이면 하고 아니면 안하겠다고 딱 자르시면서. 나중에 제게 “우리 문양에 담긴 우리만의 정신과 문화를 그쪽에도 알려야한다”고 당부하셨죠. 아무리 이익이 크더라도 우리 것의 가치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걸 그 때 보고 배웠어요. 아직까지도 정말 큰 정신적 가르침으로 남아있습니다.

엄 : 본인의 작품 중 특별한 에피소드를 지닌 것을 하나 꼽아 달라
손 : 개인 주문으로 제작한 삼층 문갑이 하나 있었어요. 십장생도로 표면을 가득 메운 작품이었지요. 어느 날 그 댁에서 전화가 와서 찾아 갔더니 의뢰인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느 날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적이 있었대요. 안방에 들어와 앉아서도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래요. 그 때 무심코 응시하던 것이 제가 만든 문갑이었는데 그 분홍빛 자개와 옻칠의 빛이 자기 마음을 가라 앉혀줬다는 거예요. 고맙고 놀랍다면서 세 딸의 결혼 선물을 미리 주문하고 싶다고 당시로도 큰 액수의 돈을 건네주셨어요.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돈 받아 돌아오니 기분이 황홀하던데요(웃음). 벌써 15년도 넘은 얘긴데 참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엄 : 작품 활동에 있어 반드시 지키는 본인만의 원칙이나 가치관이 있나
손 :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얘기지만 과정 자체를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죠. 전 과정을 정성을 다해 마치면 제 작품도 천년을 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까요. 천연 옻칠은 일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백날이 가도 건조가 안돼요. 깨끗한 칠면에 먼지 한 올만 떨어져도 전체를 다시 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이렇게 항상 긴장하면서 작업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이 좋아요. 무엇하나 소홀하지 않으면 항상 그 다음날이 기다려지는 거죠. 바라는 결과를 위해 오늘 해야 할 것, 그 다음 것을 계속 생각하며 애정을 쏟아야 완벽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어요. 몇 백 년 후의 사람들도 볼 텐데 부족한 부분이 없도록 하고 싶죠.

엄 : 얼마 전 BMW와의 협업을 하는 등 세계적으로 나전칠기가 주목받고 있다. 그 가치를 짚어 달라
손 : 일단 소재가 전부 자연에서 얻어지는 거잖아요. 나무와 그 수액으로 입히는 칠, 바다에서 얻은 조개껍질 모두요. 빛깔을 내기 위한 정제칠 작업에서는 붉은 칠인 주칠, 검정 칠인 흑칠이 가장 널리 쓰이지만 여러 가지 천연 안료를 사용하면 모든 색이 다 나올 수 있어요. 옻칠 자체의 빛깔 뿐 아니라 자개가 내는 영롱한 색도 참으로 아름답고요. 인위적인 것이 절대 낼 수 없는 느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 같아요. 미적인 측면 외의 가치도 많아요. 몇 년 전 경남 의천군 고분에서 발굴된 옻칠 그릇 속에서 종류 미상

BMW와의 협업
의 열매가 하나도 썩지 않고 발견돼 학자들을 놀라게 했지요. 옻칠 작업을 할 때는 벌레들이 근처에 얼씬도 안할 만큼 방충이며 방부 효과가 커요. 이런 성질이 인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쳐 옻칠 제품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요.

엄 : 옻칠 기술이 지닌 과거의 가치가 현대에 들어 어떻게 변화 했는지 궁금하다
손 : 온갖 기술과 과학이 발달한 요즘 세상이지만 옻칠을 비롯한 나전칠기 기술만은 고려 때 이미 최첨단으로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 다른 어떤 기능을 첨가하거나 뺄 것 없는 경지로요. 고리짝 시절 것임에도 불구하고 천년 넘게 이어온 전통이 가장 견고한 옻칠기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더라고요. 옻칠은 나무나 금속에만 되는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어느 곳에든지 다 가능해요. 현대에 등장한 플라스틱 등의 신소재도 모두 옻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가전제품, 자동차, 건축물 등 요즘 세상에서도 다방면에 쓸모를 지닌다는 점이 옻칠의 큰 가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엄 : 옻칠, 나전 기술의 세계화를 위해 선결돼야 할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손 : 저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세계 시장에 노크를 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이태리 밀라노에서 가구쇼가 있다고 하면 우리 전통 옻칠로 된 아름다운 작품을 출품하고 싶은 거죠. 이 때 아쉬운 게 백골 자체의 디자인이에요. 어려서부터 이 일을 해오긴 했지만 디자인감각 같은 건 전문 디자이너에 비해 떨어지잖아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옻칠과 나전이지만 서양인들도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눈길을 끌어요. 현실적으로 말해서 유명인들의 관심을 받고 구매자도 나타나야 우리 문화의 가치를 각인시킬 수 있는 거거든요. 세계 곳곳의 박람회에 우리 것을 새롭게 선보이는 기회를 자꾸 만듦과 동시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와 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라요.

좌 나비당초 이층장, 우 나비당초문 이층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