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염색연구가 홍루까 씨 인터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산하고 하늘하고 누가 누가 더 푸른가. 그에게 묻는다면 산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쪽’이라 답할 것이다. 도넛 체인점, 아트 갤러리 사업을 뒤로하고 과거의 색을 지키는 일을 택한 전통염색연구가 홍루까 선생. 염색 공부를 위해 늦깎이 학생도 마다않는 그를 ‘하늘물빛천연염색연구소’에서 만났다.    

정송이 기자 song@
엄보람 기자(이하 엄) 전통염색연구가로 전향하신 계기가 ‘어느 날 갑자기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다소 추상적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달라
홍루까 전통염색연구가(이하 홍) 어머님이 매듭공예 장인이다 보니 색실이나 천을 직접 염색하시는 일이 많았어. 천안에 염색하려고 마련한 시골 땅도 있었는데 매년 여름 어르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작업하러 들어가셨거든. 한 해는 나도 도와드린다고 따라 들어갔지. 일 좀 하다가 혼자 밭 옆에 있던 평상에 누웠는데 8월 중순 하늘이 얼마나 청명하고 예뻐. 그 하늘 아래로 물들인 원단들이 너울너울 비치는 거야. 하늘이 도화지고 거기다 자연을 색깔별로 붓질해놓은 것 같았어. 순간적으로 큰 망치로 뒤통수를 탁 맞은 기분이더라고. 염색 천 널어 말리는 걸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미치겠지’하면서 그 매력이 순간 닥쳐 온 거야. 그날부로 이것저것 뜯어다 찌고, 삶으면서 조금씩 염색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
:전통염색, 처음 시작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홍루까 제공

홍:그 당시만 해도 서른 줄이었으니 난 젊은 세대였잖아. 정보에는 빠른 편이었지만 전통염색 관련해서는 책도 별로 없어서 인터넷에 논문이란 논문은 다 뒤져야 했어. 그마저도 양이 턱없이 부족하고 너무 어려워서 봐도 모르겠는 거야. 한 두 줄 이해가 되는 부분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가며 근근이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갔지. 내가 꾸역꾸역 글씨랑 씨름하고 있으면 우리 어머님이 툇마루에 앉아서 “야야 그래하면 안된다” 하셨지. 근데 난 또 신세대답게 학문에 입각한답시고 책엔 이렇게 나왔다고, 그건 어머니 방식이라고 나 잘난 척을 했어. 결론은 항상 어머님이 맞았지. 세상 전통공예들이 학술적으로만 풀 수 있는 게 아냐. 그때부터 꼬리 내리고 어머님한테 이거 묻고 저거 도와달래고 했지. 어머님 방법 반, 학문적인 방법 반, 중도를 꾀하다 보니 어느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별별 연구를 다 하고 있더라고. 그렇게 배웠지, 염색을. 
:가족 모두 예술인인데 그것이 선생께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어머님이 전통 매듭을 하시고, 동생이 조각보 작가고, 누님은 가야금 준 인간문화재고, 내가 전통 섬유 염색을 하니까 별난 가족이긴 하지. 그들이 준 영향이라고 하면 ‘전통’ 그 자체인 것 같아. 전통은 곧 옛것인데 우리 가족이 하는 게 다 옛날의 것들이잖아. 현대인들은 옛것을 별로 안 좋아해. 앞으로 가는 세상에 자꾸 고리타분한 거 꺼내면 다들 지루해 하는데 우리 가족은 그게 아니었다는 거지. 옛 것 자체를 좋아하는 풍토를 만들어줬다고 할까. 나한테 매듭 가르치려고 어머니가 꽤 애를 쓰셨는
홍루까 제공
데 나도, 내 형제도 다 다른 전통을 찾아 하잖아. 그게 바로 내 가족이 내게 물려준 것이 가업이 아니라 가풍이라는 증거야. 
:특별히 쪽 염색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파리들은 땅에 떨어져 마르면 누렇게 되잖아. 근데 쪽은 죽으면 진한 청색 아니면 검정색으로 보여. 지구상에서 나오는 재료 중에 남색이 나오는 건 쪽 하나 밖에 없지. 쪽 염색이야말로 전통 염색 중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분야야.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염색 중에 유일하게 인간문화재로 지정받기도 하고. 쪽 염색은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서 그 기법을 후대에까지 체계적으로 물려줄 제도적 수단이 있어야 해. 70년대에는 쪽 염색이 완전히 사장돼 우리 땅에서 쪽 풀이 멸종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 그 때 우리 어머님이 일본에서 쪽 씨앗을 구해오고 쪽 염색 장인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쪽빛이 부활할 수 있게끔 중간 역할을 하셨어. 그 일화는 지금까지 내게도 굉장한 자부심이 되고 있지. 
:그토록 소중한 쪽 염색, 어쩌다 사양길에 접어들게 됐는지
:현대화 때문이지. 다이얼 전화기가 요새 골동품 시장에 가야 볼 수 있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라져간 거야. 삶이 발전하면 별 볼일 없는 건 사라지는 게 맞아. 화학 염색은 인류 역사상 큰 발견이었어. 조선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경기를 다 살렸거든. 온 천지가 화려하고 저렴한 옷인데 누
홍루까 제공
가 이 힘든 전통 염색을 해서 입겠어. 한해살이 풀인 쪽이 그런 시대 상황을 버텨내긴 무리가 있었지. 지금은 몰라도 그 당시에는 쪽 염색이 귀하고 소중한 게 아니었어. 그냥 늘 해오던 일상적이고 별 볼일 없는 거였는데 지금에서야 조금씩 희소성을 느껴 가치를 얻는 것 뿐이야. 옛날에 <장학퀴즈>에 쪽빛이 무슨 색인지 문제로 한번 나온 적이 있었어. 아무도 못 맞히더라고. 어느 세대에겐 당연하고 친숙한 것이 불과 몇 세대 만에 이름까지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해. 
:전통염색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주신다면
: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전통염색 기술은 거의 유치원 수준이었다고 보면 되. 그 당시 일본은 이미 대학생 정도의 수준이었지. 2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수준까지 올라왔어. 곧 대학원 수준까지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 일본의 전통염색 기술은 잘 보존된 대신 정체돼 있어.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저력이 대단해. 그런 가능성의 원동력은 두 가지로 보고 있지. 일단 국내 분위기가 자연주의로 가고 있잖아. 그러다 보니까 전통염색도 여기에 맞물려 계속 뜨고 있어. 게다가 한국인은 날 때부터 자연을 사랑하도록 설정된 민족이야. 그런 타고난 민족성이 바로 우리 전통염색의 저력이자 원동력이지. 요새는 전통염색도 조금씩 주먹구구식 답습을 보완해가고 있어. 과학적인 메커니즘으로 접근하고 있지. 수치의 정량화까지는 무리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레시피를 만드는 정도의 작업과 보존에 대한 연구도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 중이거든. 전통염색도 과학을 곁들여야 하는 시대가 오긴 왔나봐.   
:앞으로 전통염색연구가로서 바라는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국내 최초로 박사학위를 가진 인간문화재가 되는 게 꿈이긴 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런 목표가 있으면 자꾸 뭐라도 하게 되잖아. 좋아서, 미쳐서 하는 일이니까 결과는 자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싶어. 더 넓은 꿈이라면 전통이 무시되는 나라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단 사실을 모두가 하루빨리 깨닫는 거야. 자네들이나 나나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겠어. 역사는 하나의 산 증인인데 그걸 무시하면 내 존재를 없애는 것과 같지. 전통에 발을 담그라는 게 아니야. 그냥 들여다보자는 거지. 우리 뿌리를 알고 대접해 줄줄 아는 마음 정도만 가져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