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티스트 한상윤

기자명 정재윤 기자 (jjjj67677@hanmail.net)

루이비통을 입은 돼지. 골프채를 휘두르는 돼지. ‘된장 냄새 좀 나는’ 돼지들이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돼지의 행동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린다. 어라, 그런데 가만 보니 돼지의 모습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나도 저 돼지들처럼 소비에서 행복을 느끼지는 않았던가? 마음 한구석이 콕콕 찔린다. 화려하고 밝은 색채로 현대인들의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 그림. 27살의 젊은 팝아티스트 한상윤의 작품들이다.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정재윤 기자(이하:정) 만화를 전공하셨다는 점이 미술 시장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한상윤 팝아티스트(이하:한) 처음에는 어려웠다. 미술 시장에는 모순이 있다. 화가가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리면 그건 회화 작품이지만, 만화가가 회화를 그리면 그 그림은 미술 시장에서 작품으로 안 쳐 준다. 비평가들은 계속해서 순수미술과 다른 미술 사이의 경계를 긋는다. 그런 점이 매우 힘들었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잡지 인터뷰 등을 자주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만화가 출신이지만 충분히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만화 전공이 순수미술 전공보다 더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이 나에게 만화를 그리다가 회화를 한다는 데에 어려움은 없느냐고 묻는데 그런 문제는 전혀 없다. 오히려 팝아트를 하면서 만화의 드로잉적인 측면을 그림 속에 넣을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만화 전공자였던 게 부끄럽지도 않고, 지금도 내 그림 속에서 만화는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국형 팝아티스트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형 팝아트란 무엇인가
한:우리나라에서 팝아트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 그냥 앤디 워홀 같은 사람이 만화캐릭터를 쓰니까 그게 팝아트구나 한다. 처음에 나도 팝아트란 만화 주인공들이 나오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팝아트에는 한국의 철학이 없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그런지 미술에서 민족적 철학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작품도 진정한 한국형 팝아트라고 할 수는 없다. 수묵을 쓰니 재료는 한국적일지 몰라도 재료가 작품의 본질은 아니다. 작품에 들어 있는 내면의 사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근대를 표현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형 팝아트다. 한국형 팝아트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내 작품이 그것을 담기엔 조금 부족하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내가 꿈꾸는 한국형 팝아트가 정립 됐을 때 한국의 근대화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위한 연구 과정이다.

정:루이비통을 입은 돼지 슈퍼맨, 대표작 ‘비통맨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은
한상윤 제공

한:처음에는 슈퍼맨 같은 기존 만화 캐릭터로 작업 했는데 수많은 작가가 그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아무래도 그 사람들을 이길 순 없겠다 싶었다. 내 그림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상윤만의 특이한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정치만화를 공부할 때 동물에 비유해서 정치를 표현하곤 했었다. 그래서 동물을 이용한 캐릭터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돼지의 양면성 때문이다. 돼지는 부정적인 상징으로도 쓰이지만 꿈에서 나오면 길몽이지 않나. 돼지의 양면적인 모습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돼지라는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그려보려고 했다. 한편 슈퍼맨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신에 가까운 인간이다. 돼지의 인간적인 요소와 슈퍼맨의 신적인 요소가 합쳐지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돼지 슈퍼맨에 더해서 내가 언제나 그리고 싶었던 현대인의 물질에 대한 욕망까지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은 루이비통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품을 이용해서 나타냈다. 그래서 루이비통을 입은 돼지 슈퍼맨, 비통맨이 탄생한 거다.
한상윤 제공

정:비통맨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려는 내용은 무엇인가
한:비통맨 시리즈는 루이비통 옷을 입은 돼지 슈퍼맨이 골프도 치고, 스타벅스 커피도 마시는 그림이다. 루이비통을 입은 돼지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림의 배경은 웃고 있는 꽃인데, 멍하게 웃는 꽃이라서 이름이 ‘멍꽃’이다. 멍꽃은 비통맨으로 상징되는 물질적 욕망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만 멍꽃의 웃음이 결코 긍정적인 건 아니다. 현대인들이 탐욕스러운 인간을 보면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그저 웃어 넘기는 모습, 비판 의식 없는 모습을 꼬집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모든 인간이 비통맨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통맨 같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나는 현대인 중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진, 탐욕스러운 인간을 돼지 슈퍼맨으로 비유해서 내 스토리 속에 등장시키는 거다.
한상윤 제공


케이블 TV에도 많이 출연하셨는데 그 취지가 궁금하다
한:이번 12월에도 케이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할 계획이다. 내가 방송 출연을 많이 하는 이유는 예술가라고 해서 작품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도 한다는 것을 젊은 층에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또 방송을 통해 내 작품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나는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조차도 내 그림이 우선으로 방송에 나오도록 했다.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란 생각보다 크다. 신문에서도 글로 된 기사보다 사진 한 장이 더 큰 효과를 볼 때가 있지 않나. 그림이 갤러리에 걸리고 끝나는 것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쓰지 못하는 일인 것 같다. 방송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내 작품을 알리는 것도 그림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의 힘을 방송이라는, 기존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다른 도구로 보여주고 있는 거다.  

미술에서 상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한:상업성은 중요하다. 상업성이 빠지면 돈을 못 번다. 상업적이지 않은 작품을 다루는 갤러리는 없으므로 상업적이지 않은 작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업적인 측면도 포함되어 있다. 상업을 위한 미술이라기보다는 미술에 상업이 끼워 맞춰지는 거다. 그게 지금 세상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상업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지만 상업과 미술은 반드시 공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