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솔로지스트 김봉하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딸기 마가리타 한 잔을 주문했다. 믹솔로지스트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어여쁜 3백mL짜리 유리잔을 꺼낸다. 그럼 이제 그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무려 딸기 일곱 개다. 대개는 과일 향이나 예쁜 색을 내기 위해서는 인공 색소와 향이 첨가된 ‘리큐’로 칵테일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천연의 색과 맛을 한 잔 가득 담아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었던 그는 어떤 과일류와 채소류끼리 만났을 때 맛과 건강 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공부했다. 이렇게 김봉하 그만의 칵테일은 오렌지 하나가 통째로, 사과 반 개가 통째로 들어가는 듣도 보도 못한 모습으로 부지런히 탄생되고 있다.


엄보람 기자(이하:엄) : 믹솔로지스트란 말이 아직 국내에선 생소하다. 스스로 무엇이라 정의하고 싶은가
김봉하 믹솔로지스트(이하:김)
: ‘혼합하다’의 믹스(Mix)와 ‘학자’의 올로지스트(Ologist)가 만나 탄생된 합성어가 믹솔로지스트다. 여기서 혼합이란 물론 일차적으로는 음료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혼합을 말한다. 신선한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솜씨를 잘 조율해 매력적인 음료를 탄생시키는 일이 믹솔로지스트의 기본 의무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바(Bar)를 비롯한 특정 공간 안에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룹이 되도록 ‘혼합’하는 일도 레시피 개발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그날의 감성에 어울리는 음악을 섞어보기도 하고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접목하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사람들의 행복한 기분에 반영될 수 있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음료를 매개로 온갖 종류의 관계를 조화롭게 혼합하는 문화적인 믹서(Mixer)라고 여기고 있다.    
: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 같은 칵테일이라고 매번 똑같이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따라서 매일같이 공급되는 레몬 및 천연과일의 산도와 맛을 점검한 후 음료로 표현됐을 때의 맛을 조절하는 등 유동성 있는 레시피를 구현하려고 애쓴다. 어머니가 김치찌개를 끓일 때 김치의 익은 상태에 따라 고춧가루와 소금의 양을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믹솔로지스트의 레시피는 음료 및 주류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확산하는 데에도 보탬이 된다. 이 때문에 홍보를 원하는 특정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반영한 고유의 칵테일을 개발해달란 제의도 종종 들어온다. 요즘은 일반 소비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홈메이드 음료 또는 칵테일을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문화적인 교육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엄 : 믹솔로지스트와 바텐더의 차별성이 모호해 보인다. 바텐더와 구별되는 특별함을 꼽는다면
바텐더는 사실 바 안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손님들의 이야기 상대로서 간단한 술을 제공하는 바가 늘어나는 추세라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됐다. 굳이 따지자면 믹솔로지스트와 바텐더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창조적, 전문적 연구의 집중도라고 할 수 있다. 음료와 칵테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창조하는 데에 집중해 그것을 마시는 사람들의 감정의 맛까지 통제하는 경지에 이르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여 언제 어디서나 간단한 세팅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음료와 칵테일을 선보일 수 있는 창조적 순발력, 그리고 시각적인 표현에 있어 예술가에게도 뒤지지 않는 디자인 감각에서도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
엄 : 하나의 레시피를 창조하는 과정이 알고 싶다. 그 안에서 각별히 염두에 두는 요소들이 있나
: 새로운 레시피를 표현하기 위해 우선 유명 외국서적을 많이 참고한다. 음료에 시각 디자인을 입힐 때는 디자인 서적과 웹서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고. 현재의 유행이 5년 뒤에 구식이 되듯 오늘의 내 음료가 시간이 지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다음 각종 잡지와 문화 지에서 현재 사회의 트렌드와 이슈를 고려해 재료를 선별한 후 실제로 만들어 본다. 레시피를 개발할 땐 △대중화와 △실용성 △실현 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둔다. 이 삼박자가 배제된 음료는 눈으로나 맛볼 수 있는 비현실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계절별로 가장 맛있는 재료와 신선함을 고려하고 각 재료의 호환성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요즘은 한국적인 맛을 입힌 음료를 연구하는 시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오미자와 보드카를 접목한 음료나 차(茶)와 유자를 인퓨전*해 음료를 만드는 등 특별한 메뉴에 집중하고 있다.
엄 : 믹솔로지스트의 손에서 태어난 칵테일은 하나의 예술작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의하는지
: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예술작품에서 진품은 오직 하나뿐이다. 또한 그 작품이 지닌 모습과 느낌도 고정돼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고 맛있는 칵테일이라도 예술품과 같은 영원성을 가질 수는 없다. 내 감정이 최상의 상태인 오늘 마신 칵테일을 내일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기분에 대입한다면 그 결과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손에서 탄생하는 음료에만 집중하기보다 △대중과의 소통 △마시는 사람의 감정 △만드는 사람의 컨디션 △그날의 신선한 재료의 맛 모두가 평균치를 나타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90%의 맛이 가치를 지니기에 칵테일을 굳이 예술작품에 빗대자면 매우 아름다운 모조품의 연속 정도랄까. 결국은 내가 만드는 모든 칵테일을 한 잔 안에 가둬두기 싫은 욕심이겠지만.


엄 : 대기업 회사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 ‘평범’이라는 단어에 나를 가두는 게 싫었다. 매일 아침 출근 버스에 올라 정해진 업무를 반복하는 생활이 지루해질 때 즈음 나만의 온전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제2의 미래를 그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인간관계에서 희로애락의 연결 고리 역할을 곧잘 하는 내 성격을 반영한 직업군을 찾아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던 끝에 바텐더의 길을 선택했고 우연한 기회에 영국의 믹솔로지스트 벤 리드(Ben reed)를 알게 돼 만남을 요청했다. 그와 꼬박 반나절을 △아시아와 한국의 바 △음료 시장 △주류 문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묵어 있던 의문점과 숙제를 모두 해소하고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바텐더보다는 마시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맛을 자아내는 직업을 꿈꾸게 되더라. 그 후 세계 각국 믹솔로지스트 콘퍼런스에 참가해 나라별 음료 및 주류 소비 특성과 문화 등을 교류하며 국내에 적용해왔다. 앞으로는 주류 분야를 넘어서 의식주 문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화 커넥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인퓨전 :술에 재료를 담궈 맛과 향을 우려내는 전통주 기법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