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이집트 사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사그라질 새도 없이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 정권과 시민의 대립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도 이들과 비슷한 역사를 가져서일까,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시위 장면은 가슴 한편을 아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여기 숭고함마저 자아내는 또 다른 민중의 모습이 있다. 바로 리비아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인 이란의 민중들이다.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이란 여성이 자신의 기억 속 이란의 사건ㆍ사고를 만화의 형식으로 진실하게 그려낸 작품, 페르세폴리스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란 민중의 모습을 마르잔의 주변인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로써 덤덤히 나타나는 이란인의 모습들에 현실이 적나라하게 반영돼있다. 예를 들어 은연중 드러나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극명한 대조는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은 금색이 칠해진 플라스틱 열쇠를 받는다. 이른바 천국으로 가는 열쇠. 운이 좋아 전쟁터에서 죽게 되면 음식과 보물이 가득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일러주며 학교에서 나눠준 열쇠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쟁터가 디즈니랜드보다 더 신 나는 곳이라 각인시키고 천국을 약속받은 아이들은 목걸이를 걸고 지뢰밭에서 폭사한다. 그리고 같은 시각 비교적 부유한 마르잔이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이 두 장면은 병렬적으로 배치되면서 어딘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폭사하는 아이들이 폭발의 충격으로 팔, 다리를 벌리고 날아가는 장면과 생일파티에서 양팔을 벌리고 신 나게 춤을 추는 아이들의 자세는 매우 유사하다. 다만 폭사하는 아이들의 목에는 ‘천국의 열쇠’가, 춤추는 아이들의 목에는 멋진 목걸이가 걸려 있을 뿐.
만화에 드러난 마르잔의 어수룩함은 종종 독자를 당황케도 하는데 이를테면 열 살 남짓의 마르잔이 혁명가를 동경할 때 일이다. 친구의 아빠가 시위에 참여해 생사를 넘나드는 ‘영웅담’에 마르잔은 넋이 나갔고 자신의 아빠도 멋진 혁명가가 아닌 것이 속상했다. 대신 마르잔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을 하며 시위를 펼치는 외삼촌이 자랑거리였고 친구들에게 삼촌 얘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작가는 이란 민중에게 일어나는 일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철없는 시절까지도 드러내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 만화에는 검은색과 흰색만이 쓰였는데 두 색이 음각과 양각의 판화처럼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수없이 많은 판화가 머리에 찍히듯 각각의 장면들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표현이 얼마나 단순한지 극 중 인물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뚝뚝 떨어지는 구슬 같은 눈물이 더해질 뿐이다. 이렇게 작가가 극중 인물을 좀 더 섬세하게 그리는 것 대신 단순한 표현을 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작가는 책 머리말에 “용서는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남긴다. 목숨을 잃더라도 끝까지 자유를 위해 싸운 민중들, 그들의 피와 땀, 열정과 간절함을 잊지 말고 앞으론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 판화를 찍어내듯 인상적인 그림과 단순한 표현 등의 특징들은 우리 머릿속에 각 장면을 찍어내면서 ‘잊지 말자’는 작가의 의도에 수렴한다.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마르잔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는 것은 주인공보다 그 주변 상황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막연히 테러, 이슬람과 같은 개념들로 뭉뚱그려 놓지는 않았는가? 우리의 의식 속 이란에 대해 잘못 뿌리내린 편견이 있다면 과감히 벗어보자. 그들의 본모습을 모르고 지나치기엔 우리의 지난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이란 민중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려 했던 그녀의 위대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