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반갑! 저는 명품감성문화부 준정기자 이은지로소이다. 성대신문사 기자로 생활한다는 것은 마치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이나 철인n종 경기를 진행하는 선수에 비견될 만한 것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생각 외로 필요한 자질이 많아요. 아니 필요하다기보단 길러지는, 사육되는 자질이지요! 그만큼 새로운 경험을 많이 겪게 됩니다.

#1. 새터
"선배, 학교에 신문사도 있어요?"
"응. 있지! 왜? 관심있어?"
"네.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대학생 되면 학교 신문사 기자되는 게 로망이었어요!"
"근데... 우리학교 신문사 일 강도가 세다고 소문나있어. 후회해도 내 책임 아니다~"

#2. 미신에 근거한 수습기자 지원
재미로 봤던 타로점. 2008년 이은지의 운세를 점쳐보다. 어쩌구저쩌구하고 이러저러한데 "다른 것에 구애받거나 고민하지 말고 하고싶은 일이면 해라" 앉으나서나 머리속을 맴도는 그 말. 마침내 지원 일정 마지막 날, 인터넷으로 원서 접수하다.

#3. 8주간의 트레이닝
대학교 들어와서 학교에 올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간 A.M. 8:30 늦잠은 하늘나라로. 기자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보다는 막연한 동경에 지원한 신문사, 면접에서부터 정체를 드러내는 나의 부족함. 취재, 기사 작성 교육을 위한 연습기사 작성에서부터 언론관과 대학신문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과제 문건을 작성하면서 뇌에도 쥐가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만큼 내부의 치열한 생각과 트레이너와 트레이니 간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익숙해지며 느끼는 바ㅡ대학교를 이래서 오는구나. 두 달 간의 트레이닝 후 실전 투입! 날카로운 첫 취재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비록 작성자 이름도 안나오는 원고지 2매 분량의 첫 스트레이트 기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성취감을.

#4. 문화부의 이름으로
소수정예 55기 수습기자라는 명칭이 아직 익숙한 7월 말, 소속 부서 결정의 기로에 놓이다.
‘또라이’, 순화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 어느 하나에 ‘미친’ 사람에 대한 동경과 문화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창조한 문화에 의해 모두 ‘또라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결론ㅡ인성이 ‘또라이’이든 아니든ㅡ에 겁도 없이 문화부를 1지망에 적어넣다. 문화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문학에 대한 설익은 관심을 제외하고는 다른 분야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감히! 나에겐 선율에, 붓터치에, 몸짓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는 생각에.

#5. 후회
다시 수습기자가 되고 싶어! 수습기자 임기는 8월 31일까지인데 두 달 일찍 시작한 준정기자 생활은 자꾸만 내 능력 밖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렵기만 했다. 다른 부서에 소속된 동기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 서로 위로하며 깊어져가는 동기애!?

#6. 보람
문화부 기자 이은지라고 새겨진 명함 받다. 게다가 내 이름과 메일주소가 찍혀 나가는 첫 부서기사. 문화예술 전반에 대해 조금씩 늘어가는 잡지식과 고민들!

#7. 후회
기사 기획 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나에게 문화부 부서장님 가로되 '문화부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양 같은 건 딱히 없습니다 점차 배워가는 거지요^^' 라는 부서 소개 때의 발언 철회 파문. 부서원 모집을 위해 떡밥을 던지신 것이고 사실은 조금 필요하다나 뭐라나? 역시 난 아니었나?

#n.

#∞.반복

성대신문 기자로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굴려야 할 고민의 수레바퀴. 마치 시지프스처럼.
하지만 분명한 것. 나는 조금은 뺀질대지만 지금 여기서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 신문사는 마약과 같다는 말을 이해한다는 것. 20살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이은지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