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하나 기자 (hopehn@skku.edu)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금요일은 갔습니다.

황모교수가 그랬던가? 자신에게는 휴일이 없고 ‘월화수목금금금’뿐이라고... 정말 그렇다. 고 3시절 수능공부를 할 때도 8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꼬박꼬박 지키던 나지만 이제는 주말에 밤새는 것이 익숙하다. 신문사 일정상 금요일 날까지 기사를 써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면장(면의 책임자)에게 기사의 흐름이라든지 맞춤법등을 확인받다보면 금요일이 훌쩍 넘어 토요일 아침까지 기사를 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금요일에 기사를 모두 쓰고 집에 가는 부지런한 기자들도 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신문에 실리게 될 기사와 사진을 가지고 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면구성은 면을 책임지는 면장과 전문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도와주시는 분들과 함께 하게 된다. 신문의 면에서 기사를 배열하고 사진을 넣는 문제까지 기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제작에 있어서 조판이란 작성한 기사를 주어진 면에 맞게 구성하는 완성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금요일에 시작한 조판은 토요일 오후에 끝나게 되고 최악의 경우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나의 첫 부서기사는 ‘유교의 현대화’에 관한 내용의 기획기사였다. 첫 기사는 체크를 통해 고쳐지는 수준이 아니라 면장에게서 “처음부터 다시 써오라”라는 말을 듣기 마련이다. 대부분 기사 전체의 흐름이나 구조상에 있어서 문제가 있거나 기사의 문체와는 다른 어투를 쓰는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이다. 이제와서야 당시 첫 부서기사를 체크했던 부서장에게 들은 이야기로 나에게 첫 기사를 “아예 다시 써오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첫조판이 이런 아픈 기억대신 밤새서 단어 하나에 고민을 하고 기사내용에 대해 면장과 토론하다가 잠깐 밤바람을 쐬며 동기들과 수다떨며 피곤함을 웃음으로 재껴버리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조판의 기억은 당시에는 힘들지 몰라도 완성된 신문을 받는 순간 보람차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첫 조판의 어려움은 그날 새벽에 쓴 일기로 조판의 어려움을 겨우 기억해냈다. 그날의 일기 제목은 ‘새벽 4시 25분, 아~ 나의 사랑하는 금요일은 갔습니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