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5월을 마무리하는 굵은 빗줄기속에 점점 더 가벼워져만 가는 축제의 기억도 씻겨 간다.얼마 전부터 대학 축제는 일부만이 참여하고 대부분의 학생은 관심도 없는 흔적기관같은 연례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변화도 보인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학 시절을 회고하며 향수에 젖곤 하던 학술행사와 같은 심각해 보이는 행사들은 사라지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공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축제의 주인인 대학생들이 원하는 행사가 그런 것인데, 또는 어쩌다 하는 축제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것이 축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것 같다.

감성적이고 피상적인 행동 양식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심각해야 할 때도 심각할 줄 모르는 병에 걸려있다. 심지어는 심각해야할 때 심각해하는 사람을 지겨워하는 경향조차 보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온갖 명목의 이벤트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는 4년 간 나라살림을 맡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도 차분하게 상대방의 정책을 비판하고 자기의 정책을 방어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유권자들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이벤트로 시작해서 그런 류의 이벤트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대방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자기 정책의 우수한 점을 알리자고 만든 토론회가 아예 열리지 않거나 열려도 말꼬리 잡기로 전락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감성적인 이벤트는 일시적으로 주의를 끌지만, 그 이벤트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비판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마력까지 지니지는 못한다. 아니 이런 마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감성이 이성보다 즉각적인 호소력이 크다 보니 감성이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을 소지도 많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면 핵심적인 것을 못보고 지엽적인 것만을 토대로 판단하고 결정해도 별 문제가 없다. 사소한 결정에서는 실수를 하더라도 잠깐만 후회하고 실수를 잊어버려도 될 만큼 뒤탈이 없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대상이 달라져도 그 동안 해오던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는 습성이 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도 충분한 일들만 겪다 보면, 그래서 순간적인 판단에만 의지해서 결정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심사숙고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걱정스럽다. 또 걱정스러운 것은 진지하게 심사숙고하는 방법을 배웠어도 감성적인 이벤트에 눈이 가려 심사숙고해야할 때 심사숙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심사숙고하는 사고 방법을 잘 익혀 두고, 나아가 언제 심사숙고해야 할지 구분하는 분별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감성에 이끌리는 순간적인 사고방식의 노예가 되어 두고두고 후회할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대학을 다니는 동안 감성에 호소하는 설득에 넘어가지 않는 비판적인 분별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심각해야 할 때 심각해지기를 요구하고 심각해지는 대학 문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