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작년 초 한국과학기술인총연합회는 과학기술 관련 64개 학회를 대상으로 새 정부가 펼쳐야 할 과학정책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기초과학육성이 53%를 차지하였다. 그 뒤를 이어 이공계출신 처우개선 23%, 과학기술교육 개선 10%, 이공계 기피 방지 대책 4%, 기타 10%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국내 대부분의 과학기술인은 기초과학육성이 현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학정책의 일순위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일부 산업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이미 60, 70년대부터 기초과학 전공자들을 채용하여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해왔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전공자들은 산업현장에서 당장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어떤 업무도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재들이다. 기초과학은 모든 공학의 기초가 되고 공학의 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초과학 전공자들은 응용력, 적응력, 확장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기술을 보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등은 물리학, 화학 등의 기초과학 없이는 개발될 수 없는 신성장 동력영역이다.

최근에 의학, 약학 등의 생명과학이 매우 각광을 받고 있지만, 생명과학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 덕분이다. DNA를 발견하여 196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릭 박사는 X-선 회절을 전공한 물리학자이다. MRI 영상장비 개발 공로로 작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맨스필드 박사는 물리학자이고 로터버 박사는 화학자이다. 이들은 1952년에 NMR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퍼셀 박사의 업적을 의공학에 응용한 것이다. 세포 하나를 손가락으로 만지듯이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리학에서 개발된 레이저 덕분이다. 초음파를 이용한 인체영상장비와 결석 제거시술 등은 주위에서 흔히 보는 물리음향학의 응용이다. 방사선과 핵물리학 등은 CT, MRI, PET 등의 영상장비 개발에 이용되었고, 암, 파키슨씨 병 등의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국가만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기초과학이 발전된 국가만이 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따라서 선진국은 기초과학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초과학이 중요한 것은 첨단 기술 개발 때문만이 아니다. 기초과학의 교육은 인간을 합리적이고 방법론적으로 만든다. 기초과학은 단순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우치게 하고, 새로운 원리와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은 새로운 원리와 새로운 기술 영역을 개척하고 탐구하는 정신을 키워주는 학문 분야이다. 문제가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해답을 추구하는 기초과학자의 탐구정신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고귀한 인간정신이라는 점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