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답답한 시대다. 현실이 답답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비전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 난무하는 비전들이 어설퍼 오히려 세상을 더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말이 거창한 건 속이 비었을 때, 현실감을 잃었을 때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한 데다가 2년째 전 세계에 역병도 돌고 있다. 미세먼지가 대기를 점령하는 날도 잦아졌다. 숨쉬기조차 버거울 땐 시원한 바람이 그립다. 답답함을가를 통쾌한 상상력이 간절한 시대다.

이번 성대문학상 희곡 시나리오 부문에 응모한 8편의 작품을 쓴 작가들도 갑갑하고 때론 냉혹한 이 현실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치게 현실에 치인 탓인지 거친 상황을 뚫는 담담한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응모작들을 읽으며 든 생각 몇몇을 여기에 적는다. 먼저, 풍부한 정서와 감상적인 감정은 그 효과가 다르다는 사실을 작가들이 염두에 두면 좋겠다. 풍부한 정서는 세상을 향한 폭넓은 반응이지만, 센티한 표현은 말 그대로 현실에 대한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표출일 뿐이다. 그래서 전자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과 달리 후자는 자기감정 안에 갇히게 한다. 감상이 남발할수록 상상력의 공간은 좁아진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도 제한한다.

기성 영화의 어법을 차용하다가 자칫 표절 문제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관심을 끈 기성 표현법을 따르는 것은 습작에서는 괜찮겠지만 한 명의 작가로 나서기 위한 응모작에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답답하고 거친 현실을 똑같이 거친 언어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거친 언어 때문에 거친 현실이 오히려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꼭 욕설이 들어가야만 욕 나오는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지 숙고하면 좋겠다. 더군다나 언어의 마술사인 작가가 되려면 말이다. 현실의 암담함을 표현하기 위해 쓴 거친 욕설들은 시나리오의 시각적 상상력도 억제한다.

무엇보다, 같은 이야기라도 시나 소설이 아닌 희곡, 시나리오로 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떠한 주제도 희곡에서는 결국 행동으로, 시나리오에서는 이미지로 드러나야 한다. 희곡과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면서 무대와 영상을 만드는 이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작이기도 하다. 어떤 신념이나 메시지를 성급하게 전달하기보다 세상에 질문을 던져 사유를 촉발하고 나아가 무대와 영상을 다양하게 그리게 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응모작 가운데 <산타 클로즈>(Santa closed)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진짜 사람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흥미로운 상태를 상상하고 있다. 이 작품의 산타는 한 아이를 정성껏 만났지만 끝내 그 만남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인조인간 아이에게서 따뜻한 진짜 동심을 바랄 수 없는 건 산타뿐 아니라 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허탈감이 작품 제목 자체를 언어유희 곧 말장난에서 구해냈다. ‘산타 클로즈’가 산타클로스라는 낱말의 언어유희가 아닌 어의(語義) 변화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그 허탈감이 여운을 남겼다면 더 좋았겠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체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시감은 흔히 착각으로 결론 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기시감은 우리를 허황하게 만든다. 그런데 작품 <데자뷔>(déjà:vu)에서는 이미 만난 것 같은 기시감이 기억의 착오 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점에서도 허무하지 않았다. 단지 작품 자체가 한류드라마의 트렌드가 된 타임슬립(time slip)의 기시감을 준다는 점은 아쉬웠다. 

이 두 작품을 가작으로 뽑으며 작가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지금은 통쾌한 상상력이 간절한 시대다.

오종우(러시아어문학과)·변혁(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