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남성에 적대적인,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유난 떠는, 페미니즘에는 다른 급진적 사상보다 유독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남성을 향해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책은 아니다. 정희진 씨는 페미니즘이 저항이론이나 운동이 아닌, 새로운 인식 방법론이라고 강조한다. 그 안에서 페미니즘을 설익게 접한 기자가 어떤 요구를 도출해내는 작업이 사뭇 조심스럽기도 하다. 아래 쓰이는 내용이 정희진 씨의 주장으로 와전되지 않기를 바란다.

남성이 ‘여성의 영역’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다. 이때 여성의 영역이라는 표현은 특정 영역이 여성이라는 성별에 귀속돼야 한다는 내포하는 게 아니다. 그간 남성이 여성에 위탁해온, 천시되지만 필요불가결한 일들을 남성도 분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사노동은 물론이거니와, 남성은 감정노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노력해야 한다. 대인 서비스직을 진로로 삼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여성은 직업 밖에서의 일상 영역에서도 감정노동을 도맡고 있다. 성판매 여성이나 어머니는 남성의 보살핌받고자 하는 욕구, 혹은 권력욕,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공적 영역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친절하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곤 한다. 정희진 씨는 이런 현실을 두고 남성이 여성의 감정노동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요구는 ‘성평등’이 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직장에 여성이 진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여성이 도맡은 의무는 그대로인데 직장에서의 규범도 부과되면서 여성은 이중 노동, 이중 규범에 시달린다. 부조리한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그에 관한 질책은 고스란히 여성을 향한다. 반쪽짜리 성평등이 완성되려면 남성이 여성에게 부과되던 노동을 적극적으로 덜어와야 한다. 남성도 남성에게, 여성에게 정서적 지지대가 돼주고, 주변 사람을 보살피는 것도 의미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소개하는 ‘횡단의 정치’도 중요한 주문으로 보인다. 여성의 타자(他者)화, 여성 일반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핵심 원리다. 중년의 여성은 ‘어머니’로, 더 나이 든 여성은 ‘할머니’로 환원돼 남성의 필요에 따라 규정된 역할이 강요된다. 이를테면 남성 정치인에게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부과되지 않는다. ‘노동자 출신’, ‘개천에서 난 용’, ‘검찰 출신’ 등 젠더 외의 특징으로 정치인의 이미지가 결정된다. 반면 여성 정치인에는 유독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강조된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노인 간에는 어떤 보편적 특질이 없음에도 소수자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환원되고 그들 사이의 차이와 차별은 은폐된다. 유일-보편주의와 상대주의의 이분법, 타자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횡단의 정치다. 횡단의 정치란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멤버십에 기반을 두면서도 (중략) 상대방의 상황으로 이동(shifting)”하는 대화의 과정을 목표로 삼는 정치다.

“요즘에도 이렇다고?” 초판이 2005년에 발행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다 보면 여러 차례 이런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1년과 비교했을 때 가정폭력·성폭력·불법촬영·데이트폭력 등 올해 여성 대상 범죄 건수는 오히려 늘어났다(물론 이는 신고율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 인식 변화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성 대상 범죄를 폭력적 남성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 젠더 권력의 차이는 여전히 실재한다. 이 책 안에 남성을 향한 부당한 요구는 없다. 여성학자의 인식틀은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필요해 보인다.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