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혜원 기자 (nanchoc09@skkuw.com)


노력도 완벽 앞에서는 배신할 수 있다
본인의 핵심 욕구 파악과 더불어
사회 전반의 분위기 개선이 필요해

A 학우는 이번 학기에 21학점을 신청했다. 몇몇 수업에 지각한 그는 A+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지각했던 수업들을 하나씩 수강 철회했다. 완벽하게 공부하지 못한 수업은 중간고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시험을 보면 공부가 미흡했다는 것을 들키겠지만 아예 응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만족하고 싶었던 A 학우는 결국 학사경고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조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에서 비롯됐다.

현실은 환상을 이길 수 없다
완벽주의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판하는 성향이다. 이런 성향은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넘어 일을 완벽히 처리하려는 강박에 가깝다. 높은 목표를 향한 단순 열의와 완벽주의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수립하는지와 이후 실패하더라도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맡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주도성을 발휘하게 해주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연세대 상담심리연구실 김서영 연구원은 “완벽주의자는 오로지 결과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자기 비난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완벽주의는 완벽을 기대하는 주체와 그 기대를 받는 대상에 따라 △자기 지향 완벽주의 △타인 지향 완벽주의 △사회부과 완벽주의로 분류된다. 자기 지향 완벽주의는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완벽을 달성하고자 하는 유형이다. 해당 유형은 이상적 자기와 실제적 자기 간의 불일치로 부정적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타인 지향 완벽주의는 자신에게 중요한 타인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부여하고 그들의 행동을 엄격히 평가하는 유형이다.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송미경 교수는 “해당 유형의 사람은 본인에게 중요한 타인이 자기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 상대에 대한 신뢰를 잃고 비난하는 정도까지 이르러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회부과 완벽주의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송 교수는 “해당 유형은 타인이 실제로 나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더 높은 기대를 한다고 추측한다”며 “이 경우 자신의 괜찮은 모습은 과시하려 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회피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완전하지 못하면 자신이 수용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불안을 양분으로 한다
완벽주의는 불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심리적 현상 및 정신질환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 중 지연 행동은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데도 불안과 긴장을 낮추기 위해 미루는 것이다. 이는 완벽주의가 부정적으로 발현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징후로 일반적인 게으름과 달리 내적으로 가지는 부담감 및 실수에 대한 염려가 지나쳐 나타나는 행동이다. 김 연구원은 “연세대 상담심리연구실에서 한국인 511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완벽주의자는 ‘실수에 대한 염려’ 정도가 눈에 띄게 높았다”며 “느긋한 성격이어서 일 처리를 서두르지 않는 사람은 완벽주의자만큼 자기 비난을 심하게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번아웃도 완벽주의와 연관이 있다. 번아웃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 등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을 낮추기 위해 일을 하고,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는데도 많은 시간 동안 일에 몰두하는 경우다.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신선임 교수는 “과제를 할 때 본인이 원하는 수준이 정말 높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마감 기한에 맞춰 제출하거나 다른 교과목과의 타협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완벽주의로 인한 번아웃 경험자는 일상생활에서도 타협점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한편 완벽주의자의 통제 욕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강박증으로도 이어진다. 강박증은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는 불안 증상이다. 이때 강박증과 완벽주의는 모두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경직된 조건에 몰입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행위와 목표의 일치 여부에서 차이가 있다. 김 연구원은 “일반적인 수준 이상으로 위생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한 강박행위가 청소라면 완벽주의자가 청소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비로소 할 일에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한편 심리적 증상 외로 완벽주의가 부정적으로 발현될 경우 우리 신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표적 예시로 식이장애가 있다. 완벽주의자가 가진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가 자신의 신체로 향하면 SNS상에서 보이는 몸매를 이상화하면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고, 운동 중독에 빠지는 등 건강훼손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완벽주의와 식이장애 사이에는 마른 몸에 대한 사회적 선망과 미디어의 영향도 존재하기 때문에 절식으로 인해 체력을 잃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서도 마른 몸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전했다. 
 

무엇이 완벽주의를 유발하는 것일까
완벽주의를 유발하는 요소로는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공존한다. 우선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완벽주의가 발현될 수 있다.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하정희 교수는 “정해진 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녀의 경우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많다는 연구가 지배적이다”며 “자녀가 자신의 주관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부모의 요구와 기대를 따르려 노력하고, 나아가 부모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리정돈 습관과 같은 특정 행동의 습관화도 지나치면 완벽주의를 유발한다. 청소는 자신이 해당 공간에 가지고 있는 통제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행동이다. 불안할 때 본인이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좋은 감정을 경험하면 해당 행동을 반복하는 행동 경향성이 커지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습관이 지나쳐 깔끔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결코 집중할 수 없는 식으로 악화하면 완벽주의가 오히려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셈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
 

완벽이 미덕이 되기 위해서
완벽주의는 완벽을 추구하는 정도에 따라 미덕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를 강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어떤 완벽주의자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이는 자기평가 소재와 자기조절 초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기평가 소재는 스스로가 생각한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둘 중 무엇에 귀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김 연구원은 “보통 내부 평가 소재와 외부 평가 소재 모두 고려하지만 어느 쪽이 더 지배적인지 비중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자기조절 초점은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멋지고 좋은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인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지로 구분된다. 본인의 핵심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완벽주의를 활용함에 있어 중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신 교수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거쳐온 과정을 칭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거시적인 차원의 개선도 필요하다. 김 연구원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의지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와 성취 중심의 가치 평가도 완벽주의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자기가치감과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며 “본인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평가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