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일러스트ㅣ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기술력과 함께 발전한 다큐멘터리 장르
정보 과부화 시대에 각광받는 진실성의 가치


 

우리는 농담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에게 흔히 ‘농담을 다큐로 받는다’고 말하곤 한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고 지루한 장르라는 인식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오늘날 다큐멘터리가 맞이한 기술적 변화와 다큐멘터리가 사회에 전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다큐멘터리는 투명한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란 실제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은 기록물을 말한다.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조지프 플래허티가 1922년에 제작한 <북극의 나누크>다. 이는 당시 이누이트의 삶을 기록한 영화로 평단과 관객에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라고 호평받았다.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이누이트 족인 나누크 가족의 일상을 극적으로 구성하면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냈다.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명성과 달리 <북극의 나누크>는 ‘진실성’이라는 다큐멘터리의 핵심 가치에 관해 비판받기도 했다. 플래허티가 이미 발전된 낚시 방식을 사용하고 있던 이누이트 족에게 작살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도록 주문하거나, 이글루 내부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반쪽짜리 이글루를 만들어 실제인 것처럼 연출하는 등 촬영대상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탄생한 이후로 촬영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담으려는 사실주의적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가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한계로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연구와 실험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다큐멘터리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록하되 작가적 해석을 덧붙여 ‘기록’과 ‘주장’의 역할을 병행하는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애니메이션부터 VR까지, 다큐멘터리의 변신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발전해왔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장해랑 교수는 “다큐멘터리는 시대와 환경, 기술발전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고민과 실천을 담았다”며 “그 어떤 장르보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분야”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다큐멘터리는 더욱 발전되고 다양화된 기술과 만났다. 애니메이션 기술을 사용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인 ‘애니멘터리’가 그중 하나다. 애니멘터리는 영상 자료가 없는 먼 과거의 모습이나 직접 촬영하기 어려운 우주 공간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디스커버리 채널은 3D 그래픽을 활용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Dinosaur Revolution'에 쥐라기부터 백악기까지 존재했던 공룡의 특성과 그들의 삶을 재현했다. 이는 뛰어난 그래픽 기술과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시도되지 않았던 코미디적 연출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VR 기술과 다큐멘터리의 만남도 이뤄졌다. VR 다큐멘터리는 공간감과 몰입감을 살리는 VR 기술을 사용해 시청자가 1인칭 시점에서 주체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VR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에게 새롭게 인식되며 다큐멘터리 장르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김진아 감독의 VR 다큐멘터리 <소요산>은 올해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VR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 학교 프랑스어문학과 박희태 교수는 “다큐멘터리는 당대의 기술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사실을 진실하게 담아내려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사조도 과거 촬영과 음향 기술의 수준과 함께 발전했다”고 말했다.

“더 가깝게, 더 즐겁게” 다큐멘터리가 다가온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다큐멘터리로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과거에는 주로 영화관이나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다큐멘터리를 소비할 수 있게 됐다. EBS 김형준 PD는 “플랫폼의 다양화는 단순히 유통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주제와 제작 형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며 “거대 담론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보단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거나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다큐멘터리의 성격도 달라졌다. 탐사 및 추적의 성격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특정 브랜드나 인물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다큐멘터리도 다수 제작됐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그룹 가수 ‘블랙핑크’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최초의 케이팝 다큐멘터리다. 이는 가수의 일상과 무대 뒤 사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친밀감이 상승할 수 있다는 효과가 증명되면서 기업이나 e스포츠 구단 등의 홍보용 다큐멘터리 제작도 계속되고 있다.

저널리즘으로서의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는 재미와 오락의 기능 외에도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장르다. 진실을 전하려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충족해주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다각도로 사실을 다루며 △부조리 고발 △해결책 제시 △현실 개선에 대한 요구 등 저널리즘의 역할을 한다.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2013년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추적하며 무고한 누명을 쓴 시민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박 교수는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거나 상업적이지 않은 소재에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며 “적은 제작 비용으로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콘텐츠와 방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에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이 주목받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대공황, 세계대전과 같은 큰 혼란이 있을 때마다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사실적인 정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수요가 는다”며 “이는 투명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를 다큐멘터리가 효과적으로 충족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 역시 “다큐멘터리는 사람을 조명하고 시대를 비추는 장르”라며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다큐멘터리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애니멘터리 'Dinosaur Revolution' 스틸컷.
ⓒIMDb 캡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네이버 영화 캡처
VR 다큐멘터리 'Journey into Deep Sea' 스틸컷.
ⓒ내셔널지오그래픽 유튜브 채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