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속 노래 'Tonight The Streets Are Ours'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거리미술가 ‘뱅크시’. 지난 8월 20일부터 시작돼 내년 2월 6일까지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진행되는 전시회 ‘아트 오브 뱅크시’ 현장에는 그의 *그래피티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며 전시회를 ‘가짜(Fake)’라고 표현했는데요. 따라서 이번 전시가 ‘아트 오브 뱅크시’라 불리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논란 속에서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뱅크시가 직접 감독으로 나선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의 오프닝은 주제 음악인 ‘Tonight The Streets Are Ours’와 함께 시작합니다. 밝고 경쾌한 *얼터너티브 록 반주에 붙여진 “아무것도 당신을 구속하지 않아. 인생을 그렇게 시작해선 안 돼. 기억해 둬. 오늘 밤, 거리는 우리의 것이야”라는 가사가 자유롭고 생생한 느낌을 주는데요. 노래와 함께 화면에는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을 촬영한 영상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어두컴컴한 밤, 후드티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경찰을 피해 도주하는 모습까지. 이 노래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리차드 하울리가 경미한 수준의 비행에도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반사회적 행동 금지명령(이하 ASBO)’을 통해 치안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축하는 지역구 의원들을 비판하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ASBO가 젊은이들이 비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처벌만 강화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려는 ‘겁쟁이 법’이라고 말합니다. ASBO가 규정하는 반사회적 행동에는 벽에 낙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바로 그래피티죠. 그래피티는 불법적인 행위기 때문에 남몰래 진행돼야 합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얼굴을 가리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거리를 누빈 이유죠. 억압적인 현실과 달리 노래의 가사는 “오늘 밤 이 거리가 우리의 것”이라며 기쁘게 외칩니다. 거리미술가들의 저항 정신을 응원하는 듯한 노래와 박진감 넘치는 영상의 조화는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록광 ‘티에리 구에타’는 수많은 거리미술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작업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미술가들과 함께 도시를 종횡무진 활보하는 그의 모습은 노래 가사처럼 거리를 차지한 듯 자유롭고 흥분돼 보입니다. 그러던 티에리는 우연히 만난 뱅크시에게 완전히 매료돼 그의 모든 작업을 촬영하고 도와주며 신뢰를 쌓아갑니다. 뱅크시의 첫 미국 전시회인 ‘거의 불법(Barely Legal)’의 개막 현장도 티에리의 카메라에 담깁니다. 전시회에는 수많은 관람객과 취재진, 할리우드 스타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전시회 이후 수집가들의 소장 욕구는 거리미술품으로 향하게 됩니다. 경매를 통해 가격이 폭등한 거리미술품은 이내 가장 뜨거운 ‘상품’으로 떠오르죠. 미술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그래피티를 해온 뱅크시는 자신의 목적이 변질됐음을 깨닫고, 티에리에게 거리미술의 예술적 목표와 진실을 전할 다큐멘터리 제작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90분짜리의 파편적인 영상 기록물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뱅크시는 자신이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기로 하고 티에리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그에게 예술 활동을 제안합니다.

뱅크시의 제안에 고무된 티에리는 앤디 워홀, 뱅크시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방해 미술품을 대량으로 제작합니다. 스스로 만들 능력이 없어 아이디어만 낸 뒤 직원들에게 작품을 제작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죠. 졸속으로 완성된 티에리의 전시는 마케팅에 힘입어 열렬한 관심을 받습니다. 그렇게 티에리는 한순간에 미술계의 돌풍, 대형 신인 예술가로 부상합니다. 언론과 수집가, 대중은 그의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다시 한번 흘러나오는 ‘Tonight The Streets Are Ours’. 이번에도 노래는 경쾌하고 밝은 코드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다른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죠. “그 사람들은 영혼이 텅 비어 있어. TV로 우리를 눈멀게 하지 우리 눈과 목표를 가려. 눈 깜짝할 새 당신을 속여. 자라나지 못하게 해.” 마치 예술의 본질을 잊고 화제성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꾸짖는 듯합니다. 오프닝에서는 거리미술이 가진 저항적인 의미와 그들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 노래. 이번에는 결국 예술의 장이었던 ‘거리’가 전시장이자 판매대로 옮겨진 씁쓸한 현실을 애도하는 듯합니다. 오늘 밤, 거리를 차지한 ‘우리’는 누구인 걸까요?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담지만,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이 영화 역시 뱅크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티에리의 성공담을 다룬 것이기에 티에리는 내내 우스꽝스럽게 연출됩니다. 미술의 상업화를 반대하는 뱅크시와 그의 작품을 걸고 돈을 버는 사람들. 그러나 ‘거리’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거리미술의 핵심적 가치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러한 전시회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전시를 통해 영국의 거리를 서울에서 경험하고 그래피티의 메시지를 느낄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뱅크시가 말하는 진실과 그의 주장을 아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을 뿐이죠.


◆그래피티=전철이나 건축물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
◆얼터너티브 록=헤비메탈적 성향을 벗어난 록 음악.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포스터.
​​​​ⓒ네이버 영화 캡처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스틸컷.
​​​​ⓒ네이버 영화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