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비온뒤무지개재단 길벗체

 

한국의 성소수자 담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모든 사람이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에는 다양한 성향과 정체성을 지닌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와 다른 이름, 성별, 정체성, 그리고 가치관을 가진 어떤 ‘나’는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기 있는데, 왜 내 존재에 대한 인정과 합의가 필요한가요? 거기 지나가는 당신,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성소수자다.


2년간 이어진 싸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관한 국내 첫 판례로
지난달 27일 故 변희수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해당 재판은 2019년 변 전 하사가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중 성전환수술을 받고 이후에 강제 전역을 당한 사건에서 촉발됐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법적으로 트랜스젠더의 성별전환·정정이 가능해졌다. 트랜스젠더 아이를 둔 엄마이자 2015년부터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오은지(활동명 위니) 운영위원은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성별정정 요건 중에는 △외과 수술 △생식능력 제거 △부모동의서 등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부모동의서도 필수 요건이 아니고, 인권 침해적 요소가 인정돼 생식능력을 제거하지 않아도 성별정정을 인정한다는 판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적 성별을 정정해도 당사자가 겪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며, 성별정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 불리함을 겪는 사례가 더욱 많다. 

성소수자의 정의와 분류는 늘 과도기에 있다 
성소수자란 △성별정체성 △성적 지향 △신체상 성적 특징 등의 부분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사람을 말한다. 이때 ‘성적 지향’은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적낭만적성적 끌림 등을 통칭한다. 또한 ‘성별정체성’이란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으로, 생물학적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경우를 트랜스젠더, 동일한 경우를 시스젠더라고 정의한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에 관련된 다양한 용어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양선우 대표는 “예전에는 성소수자가 단순히 게이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등으로 분류됐다”며 “최근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논의는 계속해서 확장돼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개념이 정립되고 있다. 과거에는 명확히 정의되지 못했던 정체성이 새로운 범주로 규정되기도 한다. 현재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약어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Questioning)는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괄한 용어다. 

질병이 아니어도 의료 서비스는 필요합니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했다. 이후 성소수자 담론은 사회적인 문제로 전환됐으며 매년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한다. 현재는 국제질병분류(이하 ICD)는 물론이고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도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질병이나 정신질환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과거에는 성별정체성 장애나 성별 불쾌감이 공식 용어로 쓰였다. 서울대 의과대학 윤현배 교수는 “최근 개정된 ICD 11판은 트랜스젠더를 성별 부조화 혹은 불일치 상태라고 지칭한다”고 전했다. 장애라는 이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낙인 효과를 우려한 명칭 변경이다. 윤 교수는 “이는 성별정체성의 *비병리화를 위해 변화하는 것”이라며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은 질병의 영역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다만 이러한 상태에 대한 통계와 의료적 접근이 필요해 분류 체계에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와 우울에 관련된 연구는 국내에서도 시작 단계다. 윤 교수는 올해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의과대학 전공 수업을 개설했다. 또한 △강동성심병원 △고대안암병원 △순천향대병원 등은 젠더클리닉을 운영하며 성소수자의 의과 진료를 지원한다. 윤 교수는 “성소수자를 위해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는 많지 않다”며 “가령 트랜스젠더의 성별전환수술(트랜지션)이 의료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것도 성소수자의 의료 문제가 기본적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부연했다. 


한국 사회 속 성소수자의 현주소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성소수자 담론은 사회적으로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오 운영위원은 “이전에는 아이의 커밍아웃에 대해 슬퍼하고 당황하는 부모가 많았다”며 “점차 공부를 더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반응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한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의 20~30대는 관련 담론에 노출되는 비율이 높고 사회적 인식도 보다 개방적이다. 특히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모임이나 동아리의 활동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학교에도 성소수자모임 ‘퀴어홀릭’이 활동 중이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언어가 해당 담론 외의 영역에서 사용될 때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이 성소수자와 무관한 맥락에서 쓰이거나, ‘덕밍아웃’ 등으로 변형된 사례가 있다. 양 대표는 “원래 커밍아웃의 어원은 (성소수자가) 벽장 밖으로 나온다는 의미”라며 그간 숨기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당사자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단어의 남용은 개인이 느끼는 커밍아웃의 무게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운영위원 역시 “단순히 재미있거나 귀에 잘 들어온다는 이유로 활용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성소수자의 사회적 권리가 상당 부분 침해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양 대표는 “통계상 성소수자가 인구의 3~5%, 최대 10% 전후일 것으로 본다”며 어디에나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오 운영위원은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찬반을 논할 수는 없다”며 “성소수자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인권 운동이 지속되는지 이해하고 공부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할 시점이다. 
 

◆비병리화=무언가를 병리적 현상, 즉 질병으로 여기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