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그리는, 박일환 전 대법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그리는, 박일환 전 대법관
  • 서수연 기자
  • 승인 2021.11.15 16:28
  • 호수 1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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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일환 변호사(전 대법관)

논리적 사고 좋아하는 성격과 맞아 법조인의 길 택해
판사는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장점 존재해
법관은 인내와 끈기, 설득하는 능력 필요해
서로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 인식한다면 세상의 많은 갈등 사라질 수 있어

“안녕하십니까, 박일환입니다.” 항상 평범한 인사로 시작을 알리지만, 매우 특별한 유튜버가 있다. 바로 대법관 출신 1호 유튜버로 알려진 박일환 변호사다. 그는 1975년 사법연수원 제5기 수료 후 각종 법원의 판사와 부장판사, 그리고 법원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원 대법관을 지냈다.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이자 ‘차산선생법률상식’  채널을 운영하는 3년 차 유튜버다. 오랜 경력을 쌓아온 법조인이자 인생 선배인 그를 만나 그의 인생과 가치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 학창 시절부터 법에 특별한 흥미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꼼꼼히 따지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단순히 암기하는 과목보다는 원리를 알고 문제를 풀면 답이 명확하게 나오는 과목을 좋아했죠. 그리고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는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직업이 한정적이었고 회사 수도 적었어요. 공무원은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될 수 있는 직업이고, 그중 법조인은 남의 지시를 많이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법을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법과대학에 진학해보니 하나하나 따지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이 법 공부와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어요.

법조계 직업 중 판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고 해서 바로 업무를 능숙하게 해내지는 않아요. 그래서 많은 법조인이 일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더 배우고 실력을 쌓아야 하죠. 당시에는 선배 법조인과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곳이 법원과 검찰청밖에 없어서 대부분 판검사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법무법인(로펌)이 별로 없었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 정도의 규모라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이 배우기가 어려웠거든요. 

판사 업무의 장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판사 업무의 장점은 본인의 일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거예요. 판사에게 배당되는 사건의 양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사건이 갑자기 들어오거나 밤을 새워서 일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업무를 보고 남은 시간에는 연구도 할 수 있어요. 또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비교적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다만, 판사는 일을 직접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배당되는 사건들만 담당해요. 그래서 다소 수동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어요. 그리고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건이 한번 배당되면 선택의 여지 없이 본인이 처리해야 하죠.

대법관 시절, 매일 고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나.
봐야 하는 사건이 워낙 많으니까 힘들었죠. 3심까지 오는 것 중에는 1심과 2심 결론이 반대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것이 옳았는지 따져야 하는데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이런 사건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결하는 데 시간이 정해져 있고 결론은 내려야 하니까 힘들었죠. 판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건데, 실제로 그 당시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을 때도 있고, 또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바도 다르고 말도 다르니 판사 입장에서는 판결을 내리기 힘들 때가 있어요. 

법조인으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
회사에 다니면 프로젝트를 맡아서 어떤 사업을 성사를 시킨다든지, 본인의 아이디어가 채택돼서 기뻐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법관은 생활이 단순해서 막 기뻐할 일은 없어요. 가끔 형사 재판하며 피고인에게 죄가 없는 것을 밝힌 경우에 성취감을 느끼거나 기쁠 수 있지만, 사실 그것도 판사가 밝혔다기보다는 변호사가 노력해서 증거 수집을 잘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판결을 내리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사건들도 있어요. 판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어려웠던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모두 결과에 승복할 때, 그들 사이에 있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도와줬다고 생각할 때에요.


대법관 퇴임 후 2013년도부터 현재까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 업무는 이전의 일과 어떤 면에서 다른 것 같다고 느끼는지.
판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이 배당되면 그 일을 해야 하는데, 변호사는 의뢰인을 만나보고 사건을 맡을지 거절할지 결정할 수 있어요.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이에요. 변호사는 의뢰인의 일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만약 서로 마음이 안 맞거나 의뢰인이 과도한 요구를 하면 사건 의뢰를 거절할 수 있죠. 업무 면에서는 변호사가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변호사는 본인이 맡은 사건에 대해 승소 또는 패소로 결과가 나오니까 성취감도 있고 더 동적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판례나 생활과 밀접한 법률 상식을 소개하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사람들에게 법 상식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나.
법조인의 입장에서 법을 올바르게 소개하고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보통 기사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되는데, 언론에서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않고 각색을 해서 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판사는 어떤 사건이든 현재 존재하는 법을 기준으로 판결을 내려요. 법 자체의 문제는 판사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마치 판사가 누구의 편을 들어 판결을 내린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외국의 법과 비교해 같은 상황에서 어느 국가는 형이 매우 강한데 우리 법은 너무 약하다고 하잖아요. 그건 법의 문제라 법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어떤 사건의 판결이 보도되면 사람들이 판사를 비난할 때가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죠. 이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유튜브 채널명 ‘차산선생법률상식’에서 ‘차산’은 본인의 호라고 알고 있다. 이를 본인의 호로 정한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 제가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차산’은 그때 제 할아버지가 지어준 호예요. 차산은 누구든 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평범한 산을 의미해요. 사람들이 저를 만났을 때 산속에서처럼 편안함을 느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차산을 제 호로 정했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후 일상이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법조인은 일터도 정해져 있고 만나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예요. 소위 말해, 꽉 짜인 틀에 박혀 있는 삶을 살고 있죠. 유튜브를 하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제가 살던 세상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방송국 돌아가는 시스템도 알게 됐고, 방송국에서 많은 사람도 만났어요. ‘이렇게도 일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등을 깨닫고 있어요.


가장 가치 있는 헌법 조항으로 대한민국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를 꼽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사회를 보면 정말 많은 갈등과 문제가 존재해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면 많은 갈등과 문제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념으로 사람을 나누고 적대시하기보다는 ‘상대방이나 나나 모두 같은 존엄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한다면 세상의 많은 갈등은 토론과 대화로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


법조인으로서 가장 가져야 할 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법관은 인내와 끈기의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사건을 검토하고 판결을 내려 해결하는 것은 엉켜 있는 실을 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차분한 마음이 필요하죠. 사건을 자세히 살피고 파악해야 하는 법관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참고 견뎌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판사는 판결에 대해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왜 이렇게 판결했는지, 왜 이 판결이 타당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해요. 덧붙여,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제대로 파악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당사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하죠.

앞으로 우리나라 법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조인이 창의력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이 창의력과는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이 발전하고 새로운 분야가 계속 나오니까 법도 그에 따라 발전해야 해요. 법조인이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창의력이 없는 사람이 법 분야에 종사하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결국 사회의 흐름에 계속 반대되는 법률이 나오게 될 거예요. 법조인이 법 전문가로서 사회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대책을 고안하고 목소리를 내 법의 발전을 선도해야 해요.


인생 선배로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로를 정할 때 본인이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중심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현재 어떤 직업이 유망하고 수입이 좋다고 해도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냥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혹은 친구를 따라 진로를 정했다가 나중에 잘 안됐을 때는 분명 후회하겠죠. 본인이 원하는 걸 해야지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돼도 후회가 없어요.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해야 분명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고요.

현실에서 안정적이고 안락한 삶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안락할지 몰라도 30년 후에는 인생이 안락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남들은 지금 뛰어다니고 저 앞으로 가고 있는데, 혼자 걸어가고 있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바뀔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떤 분야든 창의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옛날과 비교했을 때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보는 시대죠.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전 세계로 퍼트릴 수 있고 소비자들은 24시간 기다리고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는 창의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질문있어요!

성대신문의 독자 분들이 남겨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은 코너입니다


Q.대학교로 돌아간다면 어떤 것을 제일 해보고 싶으신가요?
영어나 다른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외국어 교육이 잘 안 이루어졌어요. 읽기, 쓰기는 잘해도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배우지를 못했죠. 국제회의에 가거나 외국인을 만나면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회화가 잘 안 되니까 괜히 주눅 들고 의사 전달을 제대로 못 해서 아쉬울 때가 있어요.


Q.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법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룰’이에요. 룰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고 이에 맞춰서 지킬 수 있죠. 사람마다 척도와 관점이 달라서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법을 알면 그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변호사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변호사는 흔히 말하는 악질 범죄자도 변호해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대원칙과 누구든 변호 받을 권리가 있으니 변호하는 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제 마음으로는 그 논리가 와닿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떠한 마음으로 변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극악무도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몰라요. 극악무도한 사람일 수 있지만 정말 억울한 사람일 수도 있죠.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왜 범인이 아닌지 잘 들어보고 꼼꼼히 따져봐야죠. 변호사 또는 법관이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면서 그들이 변론을 못 하게 하면 안 돼요. 만약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지면 무죄 추정의 원칙과는 상관없어지니까 그 이후는 다른 이야기가 될 테고요. 법조인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돼요.


Q.어떤 소명의식으로 일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맡은 사건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판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해왔어요. 특히 대법관이었을 때는 제 판결이 사건의 마지막 판결이 되는 거니까 더욱 꼼꼼히 보고 조심했던 것 같아요. 과연 제가 그 목표를 이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대법관 시절 모습.
ⓒ박일환 변호사 제공
'차산선생법률상식' 실버 버튼 획득 인증 사진.
ⓒ박일환 변호사 제공
유튜브 영상 촬영 모습.
ⓒ박일환 변호사 제공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당시 방송인 조세호(왼쪽), 유재석(오른쪽)과 함께 찍은 사진.
ⓒ박일환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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