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물에서 불이 나온다? 술에 숨겨진 다채로운 이야기들 
단점도 많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시간 나면 술 한잔 할까? 쉽게 들을 수 있는 인사말이지만, 막상 우리 앞에 놓이는 술 한 잔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기회는 많지 않다. 술의 어원부터 소주병에 담긴 비밀까지, 술 안에 녹아든 이야기를 살펴보자. 

멀고도 가까운 그대, 
‘술’은 어쩌다 술이 됐나

술은 알코올 함량이 1도 이상으로 마시면 취할 수 있는 음료를 의미한다. 주원료는 에탄올 혹은 주정이라고도 불리는 알코올의 한 종류인 에틸알코올로 주로 곡물 등의 발효를 통해 제조된다. 

‘술’은 순우리말로 명확한 어원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술을 빚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며 “언어학자들은 이를 두고 물에서 불이 나온다고 해 처음에는 ‘물불’, 나중에는 물 수(水) 자를 사용해 ‘수불(수블)’로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조선 초 『석보상절』에는 ‘수을’이라는 표기가 쓰였으며 이외에도 ‘수울’ 등으로 표기됐다. 또한 요리서인 음식 디미방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는 ‘술’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술의 기원에 대해서도 다양한 추측이 존재한다. 원숭이가 바위틈에 저장해둔 과일이 발효된 것을 술이라는 형태로 발전시켰다는 가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과일을 발효시킨 과실주 △가축의 젖을 이용한 젖술 △곡물로 빚은 곡주 등을 시작으로 술은 인류의 역사를 따라 다채롭게 변화했다. 

가양주? 전통주? ‘우리네 술’의 역사
집에서 빚은 술이라는 뜻에서 가양주로도 불리는 한국의 전통주는 쌀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박 소장은 이에 대해 “쌀은 한국인의 주식인데 이처럼 주식을 재료 삼아 술을 빚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조상들은 △쌀의 생산 시기와 종류 △생산지의 지역적 특색 △술을 마시는 날짜와 세시풍속 등에 따라 술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과일꽃약재 등의 부가적인 재료를 첨가해 조선 시대 술의 종류는 약 850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누룩과 물, 쌀을 이용해 빚는 우리 술은 크게 청주와 탁주로 나뉜다. 술이 다 익으면 내용물이 아래로 가라앉는데, 이때 맑은 윗부분을 청주라고 부른다. 또한 청주를 여러 차례 증류해 도수를 높일 경우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가 된다. 반면 떠내고 남은 찌꺼기나 청주를 떠내지 않은 것을 한 번 더 짜내면 보다 탁한 색의 술이 나오는데 이를 탁주라고 한다. 박 소장은 “청주를 뜨고 남은 찌꺼기는 다소 걸쭉하기 때문에 보통 물을 타서 마셨다”며 “도수가 반 이하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마구 걸러냈다고 해 막걸리라고도 불렀다”고 말했다. 

다양했던 전통주는 일제강점기 가양주 말살 정책으로 인해 거의 제조가 금지돼 상당수 맥이 끊겼다. 광복 이후 625 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널리 퍼졌다. 이는 전통 증류식 소주와는 달리 발효주정(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희석하는 방식이다. 맥주의 생산과 수입도 활성화돼 2019년 기준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39.69%, 소주가 33.88%로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또한 와인과 같은 양주의 국내 생산도 본격화됐다. 경희대 관광대학원 와인소믈리에학과 고재윤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국내 와인은 세계적으로도 꾸준히 위상을 높이고 있다”며 현재 국내 와이너리는 약 130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이후 침체됐던 전통주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지역별로 전승된 제조법을 복원하고 되살리기 위한 연구가 이뤄졌고 정부에서도 전통주 장인을 무형문화재와 식품명인으로 지정하는 등 문화 복원을 위해 나섰다. 박 소장은 “전통주 관련 자료가 적어 연구가 쉽지 않았다”며 “우리 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술에 매기는 세금부터 술병까지…
술 한 병에 숨겨진 사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주세 징수실적은 약 3조 5천억 원에 달했다. 국내 주세법은 가격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 종가세를 채택해 발효주류는 30%, 증류주류는 72%의 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탁주와 맥주는 1kg 단위로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방식으로 지난해 개정됐다. 2021년부터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물가연동제를 함께 도입해 매년 주세율이 결정된다. 

또한 주세율은 술의 가격뿐만 아니라 술병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주세율이 높아 양조 회사에서 최대한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잘 도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입 와인이나 위스키의 경우 병의 규격이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녹색 소주병은 모든 규격이 중량 290g, 병지름 65mm, 높이 215mm로 동일하다.

한편, 브랜드와 무관하게 규격이 동일한 소주병은 빈병 재사용을 용이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빈병을 반납할 경우 소액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빈용기보증금제도가 도입돼 국내 빈병 회수율은 최근 3년간 95%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 이렇게 회수한 병은 평균적으로 약 8회가량 재사용된다. 다만 2019년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진로’는 1970년대 디자인 그대로 재출시되며 표준용기가 아닌 별도 규격의 용기를 도입했다. 이는 일반 소주병 대비 회수재사용이 어렵다는 점에서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약이냐 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술은 중독 위험이 높은 식품으로 과한 음주는 건강에 해를 끼친다. 대표적인 알코올 중독의 합병증으로는 불면과 우울증알코올성 치매가 있으며 중독자가 겪는 금단 증상 또한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2016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생에서 알코올 의존과 남용을 포함한 알코올 사용장애를 겪을 확률은 약 12.2%에 달한다. 하지만 술의 단점은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술로 인한 대표적인 사회적 문제로는 음주운전이 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故 윤창호 씨 사건으로 그 심각성이 재조명됐다. 최근에도 음주측정 거부 등과 관련해 법률 개정 및 처벌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술은 여전히 인류의 문화·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그만큼 술이 갖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 교수는 “술은 의학이 발달하기 전부터 약으로도 쓰였고 감염을 막고 고통을 줄이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며 “이외에도 일상적인 괴로움을 잊게 하고 개인에게 기쁨을 주는 등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술.
국내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술.
사진| 손재원 기자 
전통주 브랜드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 술담화 홈페이지 캡처
전통주 브랜드 '지란지교' 무화과 탁주.ⓒ 술담화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