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소비자 입맛에 맞춘 다양한 주종 등장
과거에 비해 즐거운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음주 늘어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에 늘어선 왁자지껄한 술집들, 수십 명의 사람이 서로 잔을 부딪치며 시끄럽게 ‘건배!’를 외치던 대학가의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전처럼 요란하지 않을 뿐, 여전히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다. 누군가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술을 찾아 나서며, 또 누군가는 집에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말이다. 취향 존중의 시대를 맞은 주류 시장은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주히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술을 마시고 있을까?

평범함은 거부한다, 이색 술
최아정(인과계열 21) 학우는 올해 ‘아이셔에 이슬’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소주를 처음 접했다. 호기심에 시도해본 이후 기존 소주와 다른 상큼한 맛에 매력을 느껴 즐겨 마시게 됐다. ‘아이셔에 이슬’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오리온의 '아이셔'가 합쳐진 최초의 콜라보 소주다. 이처럼 소주는 여러 기성 제품과의 이색적인 만남을 통해 독특한 콜라보 소주로 재탄생하고 있다. 콜라보 소주는 *펀슈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기존 소주에 거부감을 지닌 소비층을 공략한다. 최 학우는 “소비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점이 콜라보 주류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라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품이 소주와 만난 콜라보 소주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전통주인 막걸리 역시 젊은 층의 입맛과 문화를 겨냥해 다채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역별 특산물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품질의 저가 막걸리를 생산해 윗세대의 술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젊고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도 챙겼다. 문경 오미자 생막걸리, 제주 우도 땅콩 막걸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나만의 술을 찾는 사람들
소비자들이 즐기는 주종 자체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반적인 소주, 맥주보다 칵테일을 즐겨 마시는 이송헌(전자전기 20) 학우는 “칵테일은 다양한 재료를 섞는 만큼 향도 다양해 보편적으로 마시는 술과는 다르다”며 칵테일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양주 업체는 칵테일을 즐기는 젊은 층을 겨냥한 깔루아, 말리부 등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양주를 편의점에 적극적으로 납품하며 주류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자신과 맞는 술을 찾는 소비자들의 다채로운 요구는 다양한 주종의 주류 시장 입성으로 이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술자리가 줄어든 점도 한몫했다. 명욱 주류 칼럼니스트는 “회식을 하는 경우 주종을 하나로 통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제는 취향대로 술을 고르는 문화가 더 강해졌다”며 “취향 존중의 시대에 발맞춰 주류 시장의 트렌드도 달라졌다”고 밝혔다.

다양한 술을 경험하며 나와 맞는 술을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소비자들도 있다. 국내 여러 *브루어리를 찾아다닌 김세진(전자전기 17) 학우는 “브루어리마다 개성 있는 맥주가 준비돼 있고 일반적으로 접하는 라거 계열 맥주 외에 IPA나 스타우트 등 특별한 맥주를 즐길 수 있다”며 “요즘은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맥주나 예쁜 디자인의 캔맥주를 만드는 등 브루어리마다 풍족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같은 종류의 술이라도 매장마다 개성이 뚜렷한 제조방식과 분위기를 두루 느끼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알코올 프리, 근데 취해
논 알코올 주류 시장도 커지고 있다. 황동하(건설환경 18) 학우도 종종 논 알코올 맥주를 즐긴다. 다이어트와 헬스를 병행 중인 황 학우에게 도수 높은 술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황 학우는 “시험 기간이거나 헬스 중일 때 논 알코올 맥주를 마신다”며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술을 보다 간편하고 부담 없이 마시려는 경향이 늘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논 알코올 주류 시장은 연평균 23.1%의 성장률을 보이며 주요 시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명 칼럼니스트는 “논 알코올 주류는 알코올 함량이 적기 때문에 칼로리도 낮고 신체에 부담도 덜하다”며 “다른 술과 달리 온라인으로 배달 주문이 가능해 간편하다는 점 또한 인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져도 소통은 그대로
혼자서 술을 마신다는 의미의 ‘혼술’ 문화는 코로나19로 날개를 달았다. 이병주(수교 20) 학우는 이따금 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그는 “여러 사람과 마실 때보다 나의 속도를 유지하며 술을 마실 수 있어 혼술이 편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혼술의 성행으로 개인적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외부에서 구매한 술을 집에서 마시는 ‘홈술’ 문화 역시 발달했다. 이색적인 주류를 찾는 홈술족을 겨냥하기 위해 수제 맥주나 와인, 전통주 등이 편의점과 마트의 매대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술자리는 줄었지만, 여전히 SNS에서는 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은 음주를 콘텐츠로 한 ‘음주로그(음주+V-log)’나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활용한 ‘짠메랑’을 통해 자신의 음주 경험을 SNS에 게시한다. 또한 자신만의 안주와 술 조합을 찾아내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술, 이젠 굿즈로도 즐겨라
지난달 초 오비맥주는 ‘카스’ 브랜드의 파란색을 바탕으로 한 카세트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 굿즈를 출시해 뉴트로 감성을 자극했다. 이처럼 대형 주류업체의 브랜드 굿즈 생산은 마케팅의 핵심 요소가 됐다. 일반적으로 굿즈는 팬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특정 브랜드의 파생상품을 의미한다. 주류업체의 굿즈 생산은 곧 주류의 팬덤 확보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개성 있고 특별한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술잔이나 술 키트와 같이 술자리에서 사용하는 굿즈뿐만 아니라 인형이나 스티커처럼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굿즈에도 열광한다. 곰표 브랜드와의 콜라보 맥주인 ‘곰표’ 맥주나 두꺼비 캐릭터를 활용한 ‘진로’ 소주는 굿즈 판매를 위한 팝업스토어가 열릴 정도로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다.

취하기보단 취미로 즐길래요
예전에는 흔히 사용됐던 ‘마시고 죽자’는 말, 지금은 어떨까? 이송헌 학우는 “음주의 의미는 술의 맛을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친밀해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취하는 것보다는 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명 칼럼니스트는 “이전에는 음주의 목적이 취하는 것에 있었지만, 이제는 술이 취미의 영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취미는 무리해서 즐길 필요가 없으니 폭음과 만취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과거엔 함께 마시는 사람에 의해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 일쑤였다면 현재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음주문화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펀슈머=상품에 대한 재미를 소비하는 경험을 통해 느끼는 소비자.
■브루어리=맥주를 생산하는 양조 공장으로 수제 맥주를 판매한다.

 

아이셔에 이슬.
아이셔에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