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미래의 역사가는 20세기 중반이후의 인류사를 요약하며 그 중요한 특징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나 우주진출 등과 함께 민주주의의 만개를 꼽을 것이다. 오늘날은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민주주의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인기있고 가장 널리퍼진 정치제도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정치체를 떠나 어떤 조직이에서든 관철되어야 할 보편적인 원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경제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회사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동호회, 심지어 가족내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하도록 교육받는다. 학급이나 학교의 대표를 유세, 공약발표, 직접 투표로 선출한 것은 오래되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인들이 혹시라도 우리시대에 와서 민주주의의 이런 만개를 본다면 어리둥절할 뿐 아니라 심지어 어리석다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폴리스 내의 재판이나 정책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가정을 포함하여 다른 조직이나 공동체도 모든 성원의 공정한 한표에 의해 다수결로 운영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그들 대부분에게 황당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민주주의의 시대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어느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지금부터 딱 80년 전인 1941년의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면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에 동조하는 여러 나라의 정치세력(나치 독일이 세운 괴뢰정권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프랑코의 파시스트 스페인을 발견한다.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의 운명 나침반이 1941년 당시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고 낙관할 근거는 별로 없었다. 민주주의는 영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나치와 자국의 파시스트드 정권에 맞서 투쟁하던 이런 저런의 저항세력 (그것도 전체는 아닌 일부)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내세우던 러시아의 실상은 스탈린의 일인독재였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물적자원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그런데 이 나라에도 원래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만 독일과 전쟁을 하게 되면서 약화되었을 뿐이다)가 버텨주지 않았다면 민주주의의 시대는 아마 오지 않았거나 훨씬 더디게 왔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류사의 긴 흐름에서 본다면 어리고 낯선 제도이며 그것도 서구 일부에서 발생한 제도이다. 이런 말에 아마 불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유럽의 전통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미 13세기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도 민주주의의 전통이 나타나 있다고 이야기한다. 동양의 전통, 한국의 역사에도 민주주의의 전통이 숨쉬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거의 예외없이 ‘통치는 피지배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거나 혹은 ‘공동체의 주요관심사는 전체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 혁명, 그 안에서 뿌려진 많은 피와 눈물은 민주주의가 누구에게도 그다지 ‘당연’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무엇일까? 100년 뒤에도 민주주의가 지금같은 인기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파시즘처럼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과거의 유물로 여겨질 것인가?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도, 이미 정해진 모습의 어떤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모든 성장하는 것이 그렇듯 소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를 혐오하거나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민주주의는 빠르게 소멸할 것이다. 그래도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어보겠다면 그를 위해 뭔가 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전적으로는 아니라해도) 상당부분 개인들의 판단과 결단, 노력에 달려있다. 여기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민주주의가 성장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소멸하기를 원하는가? 필자의 답은 오래전부터 분명하다. 그런데 여러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