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탐정물,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직접 탐정 돼보는 체험 문화도 등장

 

“범인은 이 안에 있어!”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며 범인을 찾아내는 명탐정을 꿈꿔본 적 있는가? 지난해 8월 탐정업이 합법화되면서 사람들은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들의 등장을 기대했다. ‘오귀스트 뒤팽’, ‘에르퀼 푸아로’ 등의 고전적인 캐릭터들을 거쳐 ‘김전일’, ‘코난’, ‘L’과 같은 현대의 캐릭터까지, 탐정 캐릭터는 성격을 달리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문화적 상징으로서 탐정이 지닌 면모를 살펴보자.


탐정 캐릭터의 전신, 뒤팽과 홈즈
최초의 탐정 캐릭터는 1841년 공포소설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탐정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뛰어난 지식과 천재적인 두뇌로 무장한 아마추어 탐정이었다. 

뒤팽의 등장 이후 약 40년이 지난 1887년, 영국의 아서 코난 도일이 탐정계의 고전 ‘셜록 홈즈’를 탄생시켰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당시 월간지 <스트리트 매거진>에 연재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자극적인 범죄 사건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해결해내는 홈즈의 활약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작품은 날로 유명세를 더해갔다. 작중 홈즈가 사망하고 시리즈가 마무리되자 충격에 빠진 독자들이 항의 편지를 쓰거나 저자인 코난 도일의 집 앞에서 홈즈의 장례식을 벌일 정도였다. 결국 성화에 못 이긴 코난 도일은 홈즈를 부활시키고 다시 연재를 이어가야 했다. 홈즈는 현재까지도 영원불멸의 탐정 캐릭터이자 영국의 대표 캐릭터로 인정받는다. 현재 영국 곳곳에는 홈즈 박물관이나 그를 실존 인물처럼 여기는 기념물들이 가득하다. 오늘날 ‘탐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인 사냥 모자, 망토 코트, 파이프, 돋보기는 모두 홈즈의 유산이다.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다
탐정 캐릭터는 시대의 영웅상을 의미해왔다. 비범하고 특출난 능력을 발휘해 온갖 범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탐정 캐릭터의 행보는 독자가 그들을 우상화하고 동경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늘날 영웅 캐릭터로 일컬어지는 DC코믹스의 ‘배트맨’ 역시 도시에서 범죄자를 상대하는 탐정 캐릭터로 시작됐다. 이러한 위엄에 걸맞게 과거의 탐정 캐릭터는 당시 주류층인 백인 남성 지식인이 대부분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여러 사회 운동과 맞물려 여성, 흑인 등 소외층이 탐정 캐릭터로 다수 등장했다. 미국의 작가 새러 패러츠키가 만들어낸 여성 탐정 ‘V. I. 워쇼스키’가 대표적 예시다. 패러츠키는 범죄 소설에서 주로 다뤄진 틀에 박힌 여성상을 벗어나,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강인한 여성 탐정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처럼 영웅상이 다양한 계층의 소유로 확장되는 모습은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드러냈다. 현재까지도 노인이나 아이 등 대개 약자로 그려지는 인물을 탐정으로 등장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어둠을 비추는 영웅, 탐정
탐정물이 여타의 수사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탐정은 경찰이나 형사, 검사와 같은 공권력을 지닌 직업과는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과 목적이 다르다.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진영 교수는 “탐정은 공공의 안녕과 사회 정의를 위해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와 국가가 놓치거나 외면한 그늘을 들춰내는 인물”이라며 “때때로 공권력을 조롱하거나 훨씬 뛰어난 추리 능력을 펼치기도 하는 점에서 정부나 행정력을 대변하는 직업의 캐릭터들과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도덕과 윤리, 전통 질서의 수호를 위해 범인을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추리 서사와는 목표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한국의 셜록 홈즈는 어디에 있나
20세기로 들어서며 우리나라에도 서구의 탐정소설이 소개됐다. 1908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탐정소설 『쌍옥적』을 시작으로 채만식의 『염마』, 김내성의 『마인』 등 한국형 탐정소설의 창작도 이어졌다. 그러나 탐정소설은 순문학보다 통속적인 하위 수준의 장르로 여겨졌기 때문에 전문 작가가 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탐정소설을 범죄와 같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저급한 장르로 치부하는 경향은 전 세계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였다.

한국의 역사적 배경 역시 우리만의 독자적 탐정의 탄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박 교수는 “탐정이라는 직업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며 “폐쇄적인 체제 아래에서 탐정은 공권력을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런 이유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탐정물이나 탐정소설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식민지배와 분단 체제를 거쳐 군부독재까지, 우리나라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적 구조에 도달하는 데 여러 난항을 겪어왔으므로 독자적인 탐정 캐릭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탐정이라는 직업의 부재로 탐정 캐릭터에 대한 몰입과 공감이 어렵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형 탐정 캐릭터 창조를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나 국내 추리물의 대부분은 경찰이나 형사, 검사와 같은 직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러던 지난해 8월, 탐정업이 합법화되면서 탐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가 탐정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사람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한국형 탐정 캐릭터를 등장시킬 것이라 기대받고 있다.


이제는 내가 명탐정! 
직접 추리에 뛰어드는 사람들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서사가 인기를 얻으며 탐정을 소재로 한 예능이나 놀이문화 역시 유행하고 있다. JTBC ‘크라임씬’은 가상의 살인 사건에서 출연진이 각자 탐정과 용의자 역할을 맡아 역할극을 하며 범인을 추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포맷은 큰 인기를 끌어 해외 유수의 영상제에서 수상하며 수출 문의가 빗발쳤다.

해당 포맷을 적용한 게임도 성행 중이다. 실제 사건 현장처럼 꾸민 ‘크라임씬’ 테마 카페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크라임씬’ 게임 앱 등 탐정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놀잇거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접 추리 게임을 제작해 운영하는 추리 게임 기획 연합동아리 ‘Contradiction_studio’의 최유리 회장은 “예능 프로그램 ‘크라임씬’을 무척 좋아해서 사람들과 추리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만들게 됐다”며 “역할에 몰입해 추리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추리 게임 속에서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탐정의 역할을 직접 체험하는 놀이문화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 탐정협회 손상철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탐정을 소재로 한 작품의 주인공을 동경하거나 동일시하는 감정을 가졌던 경험이 체험적 탐정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탐정 놀이 문화는 단순 오락을 넘어 교육적 성격의 문화로도 확산하며 전국 청소년 추리대회, 추리 마을 형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손 회장은 “아동과 청소년은 탐정문화 체험을 통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이타심,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과 소통 능력의 향상 등 다양한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포맷=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지닌 매회 반복되는 제작 특성.
 

JTBC 홈페이지 캡처JTBC 예능 '크라임씬3' 포스터.
JTBC 예능 '크라임씬3' 포스터.
ⓒJTBC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