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마름모꼴 몸통에 짙은 반점이 있고 주둥이가 짧은 홍어가 갯벌바닥에 숨어 있다. 꽃게, 돔, 광어, 우럭 등 먹이가 될 만한 어패류가 풍부하니 몸을 빨리 날릴 필요는 없는 듯 바닥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산란을 마친 어미 홍어 주위로 새끼 간재미 무리들이 햇살이 들어오는 섬마을 연안 바다에서 꿈벅꿈벅 날개 짓이 한창이다. 타원형의 납작한 몸통의 쏨뱅이도 바닥근처를 오가고 야행성인 곰치는 바위틈에 숨어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달리 멍하니 입을 쩌어억 벌린 체 아가미로 신선한 물을 연신 보내고 있다. 근처에는 아직 북상하지 않은 고등어 떼의 움직임도 날렵하다. 그때, 큰 물고기 떼의 움직임이 다급하고 팔뚝만한 문어도 잰 걸음이다. 저 멀리서 서너 마리의 꽃상어가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중 암놈 꽃상어의 뱃속 태보 속에는 새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 새끼를 가진 꽃상어는 먹이가 많이 필요하다. 해안가 바다 표면에는 햇살이 부서지고 그 위로 고기잡이 배가 한 척 보인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 유배지로서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그 흑산도. 그곳에서 정약전은 새 길을 시작한다. 7년간 집필한 해양생물학서로서 해양생물의 생김새, 생태, 요리방법, 효능 등을 기록한 어류도감인 자산어보가 쓰여진 곳이다. 사람의 갈 길을 알고자 성리학, 노자, 장자 등 가리지 않고 공부한 그에게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장덕순과의 만남은 눈부신 운명이다.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공부(과학공부)에서 오는 가슴 뛰는 설레임과 어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정약전을 우리나라 수산학 및 해양생물학을 창시한 학자로서 자리매김하게 한다. 정약전은 비늘이 있고 없는 어류, 딱딱한 껍질을 가진 어류, 해조류 등으로 분류과정을 정립하고 대분류 군에서 소분류 군, 종국에는 종 수준까지 내려가는 부분들을 체계화시키고 있다. 비록 그의 분류법이 현대 과학적 분류법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동식물분류법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도 발표되기 전인 19세기 초 어류분류학 백과사전을 집필하였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해양생물학 전반의 발전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음은 분명하다.  

10여년 전 우리학교 동아시아 학술원에서 주관한 이공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18세기 동아시아 지식인, 정약용의 철학’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강연해 주신 교수님께서 읽어 주신 구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대략 이해하게 되었다. 책은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 한 글자를 보더라도 의미를 분명히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 수백 가지 책을 널리 상고하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의 의미와 이치에 대해서도 분명히 꿰뚫을 수 있게 되니 이점을 알아야만 한다.” 정약전의 동생이기도 하고 <목민심서>를 집필한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 유아에게 붙이는 편지>에 수록된 글이다. 조선후기 새로운 사상인 실학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으로 자리 매김하였으며 이는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편지는 계속된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탐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또 끝까지 탐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格)이라는 것도 끝까지 연구하여 마지막에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마지막에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대학> 8조목에 나오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넓힌다’는 뜻의 격물치기는 과학을 정의하는데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정약용이 말하는 사물에 대한 탐구와도 맞닿아 있다. 

어떤 연구에서든 철저한 전문가 의식을 갖고, 그 주제에 관한 한 내가 누구보다도 엄밀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웅변한 정약용. 죽기 전까지 철저하게 흑산도의 바다를 기록하여 해양생물학의 결정판, 자산어보를 완성한 정약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학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에는 잘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