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나는 3월에 있는 1주일 간의 봄방학 동안 서부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까지 10일간 갈 곳을 구글지도에 저장하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코로나와 함께 무산되었다. LA행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만 해도 미국에서 코로나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황은 미국 곳곳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며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봄방학에 여행을 가도 될지, 학생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게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봄방학 당일, 뉴욕시티로 가는 버스가 1130분 출발이었기에 11시쯤 짐을 싸서 기숙사를 나가려고 하던 때 갑자기 학교에서 메일을 받았다. 전날까지도 아무 발표가 없었는데, 이번 봄방학 동안 학교를 떠나는 사람은 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30분 안에 선택해야 했다. 그 순간 학교를 떠나는 것은 아예 미국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5월 말에 예약되어 있었고, 남은 시간 동안 기숙사 짐을 다 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과감히 버스와 LA행 비행기를 모두 포기하고 일단 기숙사에 남기로 했다.

남은 학기의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기에 학기가 끝날 때까지 기숙사에 남을 것인지 한국으로 조기 귀국할 것인지 우선 결정해야 했다. 다른 교환학생들은 거의 자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나도 결국 3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구했다. 2주간은 기숙사에 머무르다 남은 1주일은 뉴욕시티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2주로 한정된 포츠담 생활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풍경을 얼마 후면 못 본다는 생각에 매일 밖으로 나갔다. 캠퍼스 건물과 포츠담 일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어 투어 영상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다.

학교가 위치한 포츠담은 뉴욕주 제일 북쪽, 캐나다와 인접한 시골이었기에 다행히 코로나로부터 다른 도시에 비해 안전한 편이었다. 하지만 셧다운이 내려진 뉴욕시티 한가운데 맨해튼의 호텔 방에서는 24시간 내내 앰뷸런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센트럴파크 멀리서는 야전병원을 위한 하얀 천막들이 보였다. 팬데믹 시대 위험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학기가 끝난 후 뉴욕과 주변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기에 한국으로 이렇게 그냥 돌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다. 음식점, 드럭스토어를 제외하고는 다 문을 닫았지만 밖에서라도 뉴욕시티를 느끼기 위해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로 향했다. 그러다 나 홀로 집에나온 프라자 호텔 앞에 하얀 목련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2020년에도 봄이 왔음을 처음 느꼈다. 세상은 모든 것이 침체되고 어수선하지만 꽃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 피어 있는 것을 보며 얼른 이 땅에도 봄이 오길 간절히 바랐다.

미국을 떠나는 날 아침 호텔을 나설 때 날씨가 매우 흐려서 기분이 더 씁쓸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미국에서 본 날씨 중 가장 맑은 날이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도 창문에서 한참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좌충우돌을 겪은 내 교환학생 생활의 마지막만큼은 그래도 밝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은 여러 아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아직도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지만 타국에서 겪은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내 자신이 한층 더 성장했을 거라 믿는다. 학교생활을 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 포츠담의 동화 속 장면 같은 풍경들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새로운 목표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임서영(소비자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