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현 (dreamer7@skkuw.com)

 

인사캠 만남 - 이정원(한문 90) 동문

 

사진 김가현 기자 dreamer7@

 

한국고전번역원에 들어서니 한쪽 벽에 고전 문헌들이 가득했다. “완역된 작품도 있고, 번역 중인 『승정원일기』 같은 작품도 있죠.”
한국고전번역원 이정원(한문 90) 번역가가 번역 중인 책들을 소개했다.
그곳에서 배우고 연구하며 끝없이 성장 중인 이 동문의 삶을 들어봤다.


끝없는 공부 속 번역가의 삶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다

 

시를 좋아하던 소년, 한문학을 전공하다
“막연하게 시를 쓰고 싶어 했어요. 시인이 되고 싶었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어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이 동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시 쓰는 걸 좋아하던 그는 특히 국어와 국사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것을 좋아했어요. 국어 고전문학에 나오는 작품들을 특히 좋아해서 글이 저절로 외워질 정도였죠.”

시인의 꿈을 가졌던 이 동문은 국문학을 전공한 외삼촌의 조언에 따라 한문학과 진학을 결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나라 문학은 대부분 한문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계속 국문 공부를 하고 싶다면 한문학 전공이 나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는 이후 어느 대학에 진학할까 고민하던 중 우리 학교를 선택하게 됐다. “우리 학교 한문학과는 깊은 역사와 전통이 있어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던 제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혼란스러웠던 90년대 초, 
공부하고자 노력했던 20대

이 동문은 군사독재 말기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대였으나 공부를 향한 그의 마음은 열렬했다. 그는 1학년 여름방학 때 서당에 가 옛날 방식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한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제는 사라진 ‘성독’이라는 방식으로 수업했는데, 이는 선생이 읽으면 학생들이 따라 읽는 방식이었어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이 동문은 『맹자』의 구절을 막힘없이 읊었다.

“91년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공부할만한 사회적 상황은 아니었죠.” 학과 학년 대표를 맡았던 이 동문은 투쟁과 집회의 역사로 당시를 기억했다. “수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어떤 수업은 한 학기에 세 번밖에 못 하기도 했어요. 편안히 내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죠.” 그런 환경 속에서 그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시작된 끝없는 공부, 
상임연구원과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이수까지

방위로 입대하기 위해 휴학했을 무렵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이 동문은 다섯 권짜리 한문학사 책을 구매했다. 휴학하며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던 그는 송재소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학업 방향을 바꾸게 됐다. “앞으로 한문책으로 공부하려 한다고 말씀드리니 그것도 좋지만 한문 공부를 하려면 먼저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는 이를 계기로 독해 능력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책인 『맹자』를 다시 탐독했고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운영한 연수원은 한문 독해 교육기관 중 가장 수준이 높은 곳이었어요. 기본기를 익히고자 다니게 됐죠.”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다른 언어와 달리 한문에는 끝이 없다며 웃었다. 끝없는 배움의 길은 그가 성장할 무한한 기회를 제공해줬다. “계속 글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큰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끝없는 배움의 길을 따라 점점 깊이 공부하게 됐죠.”

남들보다 일찍 연수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이 동문에게 이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방위병 시절 연수원 시험 정보를 얻자는 생각으로 시험을 한번 봤는데 붙었어요. 연수원을 보통 빨리 시작하면 4학년 때부터 가는데, 저는 2학년부터 다니게 된 거죠. 방위 퇴근 후 연수원에 가서 공부하는 일상을 보냈어요.” 복무 소집해제 이후에는 대학과 연수원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막 뛰어가서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탔어요. 공부해야 하는 양도 무척 많아서 힘들었지만, 연수원 1학년 때는 복습을 한 번도 빼먹지 않았어요. 그때는 공부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는 시작부터 성적이 상위권은 아니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차츰차츰 상승곡선을 달려서, 졸업할 때쯤 손에 꼽히게 됐어요. 그 덕에 상임연구원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죠.”

상임연구원 과정을 이수하고도 이 동문의 배움은 끝나지 않았다. 상임연구원을 끝마친 그는 이어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을 이수한다. “옛날에는 고전 번역학이라는 게 없었고 번역과 학문 사이에 유기적인 소통이 없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죠.”

한국고전번역원에서의 삶, 
번역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동문은 단지 고전번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공간으로서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을 소개했다. “고전번역 사업은 번역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번역할 문헌을 모으는 일, 평가 기준을 검토하는 일 등을 포함해 번역을 위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이에요.”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하며 번역원 내의 어떤 일이든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번역된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검토와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직접 번역하며 프로젝트를 관리하기도 했고, 기획재정부에 가서 예산을 받아오고 새 청사 건물 설계에 관여하기도 했죠.” 그의 말처럼 그는 번역원의 새 청사를 짓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번역원 내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번역원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이 동문은 책장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왔다. 조소앙의 『유방집』이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낸 책이에요. 조소앙 선생님이 적으신 것을 번역했죠.” 그는 『유방집』을 번역하던 순간이 보람차면서도 매우 힘들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우리는 번역하면서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어요. 영화라면 독립운동가의 극적인 탈출 장면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기록된 사실을 번역하는 일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을 번역할 때가 심적으로 특히 힘들었죠. 그들이 맞이한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는 번역하는 순간이 가장 즐거우면서도 힘들다고 말했다. “사명감과 희열이 있으면서도 안 풀릴 때는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그게 번역하는 사람들 일상이에요.”

단절된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이 곧 고전번역이라고 말하는 이 동문의 눈은 사명감에 빛났다. “건너지 못하는 큰 역사의 강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곳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고되지 않냐는 물음에 이 동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는 늘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일이라며 고전번역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라 설명했다. “아무래도 끝이 없어서 쉴 수가 없죠. 하지만 그게 또 하나의 장점이에요. 해야 할 일이 계속 남아있고 하나하나 번역을 끝낼 때마다 나 자신이 진보함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의 삶과 고전문학,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이제껏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묻는 말에 이 동문은 망설임 없이 허균의 『호민론』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학교 기초한문 교재에 실려 있었던 내용을 회상하며 작품을 극찬했다. “센세이션이었죠. 지금도 누군가 물으면 『호민론』을 추천해요. 읽었을 당시 이 책은 사회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었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추가로 고사성어집과 논어를 추천했다. “고사성어집은 이야기가 들어 있고 우리 언어생활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고, 『논어』는 우리 선조의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어요.”

이 동문은 고전을 읽는다는 게 단지 과거를 보는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전으로 본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때 역사 간 소통이 잘 안 된 부분을 끄집어내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고전번역이 하는 거고요.” 그는 번역을 통해 만들어질 미래를 꿈꿨다. “과거 조상들의 수많은 업적과 사상의 찬란함, 그걸 보면 우리가 세계에 나섰을 때 비로소 기죽지 않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요.” 그는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고민했던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현재를 잘 살아간다면 보다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자신 있게 말했다.

번역가로서 번역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냐 묻자 이 동문은 “고전과 한문이 우리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라며 “한자로 적힌 문장이나 단어의 어원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들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더불어 그는 일상 속 고전과 한문을 번역하는 일뿐만 아니라, 각 시대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를 고전 속에서 끄집어낼 미래를 그렸다. “각 시대 사람들이 관심 가졌던 주제들을 바탕으로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고전에서 발췌해 책을 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개나 고양이니까, 고전 속에서 개와 고양이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보는 거죠.”

우리 속의 나, 주위를 돌아봐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우들에게 건넬 조언이 있는지 묻자 이 동문은 “주변을 많이 돌아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주변의 소외되는 사람들, 주위의 환경을 같이 보면 좋겠어요.” 그는 공심(公心)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이었다. “공심과 사심에서 모든 게 판가름 난다고 생각해요. 고전에 늘 군자가 나오는데, 참 진부하지만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느냐고, 정책을 결정하거나 일을 할 때 사사로움을 개입하느냐 안 하느냐가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더라도 그것이 옳다면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과 사의 갈림에서 공심을 갖는 것, 그게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죠.” 올바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던 그는 옛것을 아끼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