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영 기자 (kimkty0816@skkuw.com)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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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채택된 신설 종목들도 큰 주목 받아
새로운 도전에 의의 두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관전 문화 돋보여

5, 4, 3 “끝”. 2020 도쿄 올림픽(이하 도쿄 올림픽) 양궁 결승전에서 마지막 화살이 꽂히기도 전 오진혁 선수가 꺼낸 말이다. 이 확신에는 올림픽을 준비해온 지난 5년간 수없이 당겼을 활시위와 고군분투가 담겨있다. 많은 국민을 울린 지난 노력의 ‘끝’. 태권도 이다빈 선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승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2020 도쿄 패럴림픽(이하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탁구 시상식에선 도쿄 하늘에 3개의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예측할 수 없는 경기 결과에 울고 웃었던 지난 30일간의 여정, 그 열전의 순간을 다시 돌아보자.

새로워진 패러다임 속 빛났던 도쿄 올림픽의 이모저모
팬더믹으로 1년이 연기돼 무려 5년의 세월을 기다려온 도쿄 올림픽이 17일의 장정을 마무리하며 막을 내렸다. 총 205개국의 선수들이 참여한 도쿄 올림픽은 전체 일정의 약 96%가 관객 없이 진행되며 사상 첫 ‘무관중 올림픽’의 풍경을 실감케 했다. 올림픽이 추구하는 패러다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의 공식 구호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에 ‘다 함께’를 추가하며 127년 만에 구호를 바꿨으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녀 공동 기수를 의무화했다. 도쿄 올림픽의 여성 선수 비율은 약 49%로 역대 최고 비율을 보여주며 평등이라는 가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근대 올림픽의 시작인 1896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참가하지 못했던 지난날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다. 동국대 체육교육과 김언호 교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받는 국제적 이슈나 강조되는 사회적 가치에 맞춰 올림픽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라며 “이번 변화는 성 평등, 환경 등과 같은 현시대가 강조하는 가치가 반영됐다”라고 전했다.

도쿄 패럴림픽, 마지막 성화의 불씨를 피어 올리다
올림픽으로 꽃피운 성화의 불씨는 도쿄 패럴림픽의 뜨거운 열기와 감동으로 이어졌다. 도쿄 패럴림픽은 선수들의 △근육 손상 △시각장애 △지적장애 등의 영역을 나누고 종목별로 장애 정도를 구분해 경기를 진행한다. 이는 비슷한 정도의 장애를 지닌 선수들끼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번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 86명은 태권도, 휠체어 농구 등 총 14개의 종목에 출전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을 보여줬다.

특히 보치아 대표팀은 무려 9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며 주목받았다. 보치아는 컬링과 비슷한 패럴림픽 종목으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다. 이는 각 팀의 선수가 표적구를 향해 개인 공을 던진 후 가장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해 승패를 겨룬다. 보치아 대표팀은 1988 서울 패럴림픽부터 2020 도쿄 패럴림픽까지 줄곧 1위 자리에 오르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이러한 놀라운 경기력과 경기 결과는 SNS에 빠르게 퍼지며 보치아 대표팀을 향한 대중들의 진심 어린 응원이 이어졌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올림픽과 비교했을 때 패럴림픽의 영향력이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론이 형성되는 환경이 바뀌고, 의미 있는 패럴림픽 경기와 선수들을 조명할 수 있는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이전보다 관심도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라며 “특히 각종 SNS에선 새로운 콘텐츠의 주인공이 됐다”라고 말했다.

“처음 보는 종목에 울고 웃었다”… 미처 몰랐던 종목들을 찾아서
도쿄 올림픽은 국민에게 생소했던 종목들도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근대5종 종목에선 전웅태 선수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도쿄 패럴림픽 육상 종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2인 1조로 합을 맞춰 동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패럴림픽 육상의 시각장애 경기에선 육상트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 ‘가이드 러너’와 시각장애인 선수가 끈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함께 달린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달리고자 하는 선수와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러너의 동행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새롭게 선보인 신설 종목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프리스타일 사이클 등 주로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은 종목들이 다수 채택됐다. 스케이트보드 경기를 시청한 성효진(인과계열 21) 학우는 “기존 종목보다 선수들의 연령층이 정말 낮아 보였다”라며 “길거리에서 보드를 타는 것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무선 이어폰을 꽂고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 댄스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우리 학교 스포츠과학과 장원석 교수는 “올림픽의 미래를 위해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색 종목을 채택하면서 새로운 관람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며 “전통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러한 종목들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

‘심박수부터 *증강현실까지’ IT 기술, 올림픽의 숨은 주역이 되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IT 기술이 적용된 중계 방식의 활약도 돋보였다. 무관중으로 진행된 이번 올림픽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IT 기술을 중계에 적용한 것이다. 특히 양궁에 도입된 ‘심박수 중계’는 새로운 관전 요소가 됐다. 비교적 정적인 스포츠였던 양궁 종목에서 선수들의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더욱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만들어냈다. 이 기술은 몸에 별도의 장치를 부착하지 않고 카메라로 안색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선수들의 긴장 상태를 측정해낸다. 강혜인(한문 20) 학우는 “김우진 선수가 활을 쏘기 전 80 bpm 정도의 낮은 심박수를 유지하고 있을 때 디지털시계로 측정한 내 심박수가 더 높았던 기억이 난다”라며 “심박수를 보면서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침착함에 크게 감탄했다”라고 말했다.

△골프 △수영 △요트 3가지 종목에서도 증강현실을 적용한 관전 서비스가 등장했다. 특히 수영의 경우 일부 입장이 허가된 관계자들에게 실시간 경기 정보를 표시해주는 증강현실 안경을 제공해, 눈앞에 수영 경기가 펼쳐지는 듯한 중계를 선보였다. 장 교수는 “이전에는 IT 기술이 부상 방지나 경기 분석에 주로 쓰였지만, 이제는 잠재적인 관객과 팬들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시각적 요소를 자극할 수 있는 중계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메달 못 따면 어때”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난 관전 문화
관전 문화 역시 크게 변화했다. 1등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던 과거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이 도전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경기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강하은(독문 20) 학우는 “마음 졸이며 봤던 배구 4강전이 기억에 남는다”라며 “결과에 상관없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기뻤고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선수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장 교수는 “과도한 경쟁과 현실에 지친 대중들이 올림픽 성적을 국격과 동일시하던 스포츠 국가주의에서 벗어나면서 생긴 변화다”라고 설명했다. 성적에 얽매이기보다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한 것이다. 이에 설 교수는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며 “각종 SNS에 소개되는 선수 개개인의 사연과 팀의 서사 역시 이러한 관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전했다.

근대5종 승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전웅태 선수. ⓒ근대5종연맹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근대5종 승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전웅태 선수. ⓒ근대5종연맹 공식 홈페이지 캡처
금메달을 목에 건 보치아 대표팀. ⓒ도쿄 패럴림픽 공식 홈페이지 캡처
금메달을 목에 건 보치아 대표팀. ⓒ도쿄 패럴림픽 공식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