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구조주의라는 철학 사조를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고 기뻤던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로 드디어 사람들에게 ‘철학을 공부할 가장 확실한 이유’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둘째로 내가 그동안 세상을 인식해온 방식이 옳았음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것의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post-)’가 붙은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구조주의가 상식이 돼 ‘권력’으로서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습관처럼 쓰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속에도 구조주의가 들어있다. 타인의 행동이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왔다고 보기보다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맥락, 즉 그가 속한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상식으로 이식받은 여러 상대주의적 태도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이제는 상식으로 우리 정신에 배어있는 여러 태도가 정말 상식이 된 지는 수십 년이 채 안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세상을 문명인과 미개인, 선과 악, 발전과 퇴보 등의 잣대로 이해하려 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유습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요컨대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게 된 데에는 모두 ‘계보’가 있다는 말이다. 단지 몇 가지 상식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과 입 밖으로 내뱉는 말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자아’나 ‘실존’에 관한 문제에서만큼은 구조주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말, 행동, 생각 중에 실재하는 영혼이나 자아에서 오롯이 비롯되는 것은 없다시피 하다. 이 글에 쓰이는 글자 하나도 필자가 사용하는 모국어(랑그), 필자가 접한 책, 평생을 걸쳐 살아온 환경이라는 매우 특수한 구조에서 유래한다. 다만 개별 인간 행동의 계보도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다. 이런 인간관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건 네 생각이다”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쓰인 저 말속에도 구조주의가 보이지 않는가?

이 글이 다짜고짜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삶의 토대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런 자기 존립에 관한 문제가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읽는 이가 철학에 좀 더 관심을 가지리라는 노림수가 이런 글을 쓴 첫째 이유다. 둘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철학을 하는 이유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물어와도, 이제 철학에 한 발을 내디뎠는지조차 불확실한 필자가 할 말이 궁하다. 다만 철학에 한 가지 탁월한 기능이 있다면, 토대를 흔들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뒤집어엎는 기능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사르트르를 무너뜨리면서 이룬 성취 덕에 지금 우리가 구조주의를 상식으로 지니고 산다. 모두가 이런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전복을 이루기는 힘들겠으나, 적어도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누구나 뒤바꿀 수 있다. 한 번 엎은 판에서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삶의 토대는 다른 어떤 학문으로 쌓은 토대보다 튼튼하다. 단지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면 된다. “왜 우리는 우측통행을 고집할까?” 같은 사소한 문제 속에도 커다란 진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부터 막막하다면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처럼 부끄러울 만큼 쉬워 보이는 제목의 입문서부터 읽어봐도 좋다.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skkuw.com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