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끝에 걸린 단 하나의 별, 정끝별 시인
나뭇가지 끝에 걸린 단 하나의 별, 정끝별 시인
  • 박수빈 기자
  • 승인 2021.09.13 14:59
  • 호수 16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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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애너그램 이용한 ‘듣는 시’, 앞으로 듣는 문화의 중요성 커질 것으로 전망
언문일치 역사 짧아 한글과 한국 시의 가능성 이제 시작에 불과해

 

수능 국어 문학 지문을 읽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이 있는가. 힘겨운 수험 공부에 촉촉한 감성을 채워주는 따뜻한 문학 지문은 매년 소소하게 회자되곤 한다. 2020학년도 수능특강에 실렸던 정끝별 시인의 시 「저린 사랑」도 많은 수험생에게 감동을 줬다. 시를 써온 30년의 세월 동안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온 정끝별 시인을 만나 그의 삶과 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끝별’이란 이름의 의미는.
저는 4남 2녀의 막내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태어났어요. 아버지께서 6남매 중 유일하게 ‘끝별’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셨죠. 한자 이름을 달라는 호적계 직원과 며칠 간의 타협 끝에 올린 이름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위로 형제자매가 많기 때문에 이제 자식은 저로서 끝이라는 의지를 이름을 통해 드러내셨던 것 같아요.

끝별의 뜻을 생각해보면 ‘끝’도 ‘별’도 사람에 따라 다 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누군가의 끝은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또 그것이 시간적인 끝일 수도 공간적인 끝일 수도 있죠. 별도 마찬가지예요. 폭발할 때 냈던 빛이 수백억 광년을 달려와 우리 눈에 맺힌 별은 누군가에겐 밤하늘의 지도가 돼주기도 하죠. 그런 게 시일 거예요. 어릴 땐 유난히 독특했던 이름이 못마땅하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이름을 쓸 때면 혼자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주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죠. 하지만 ‘끝별이란 이름이 곧 시였구나’라는 자각을 한 뒤로, 제 이름처럼 누군가에게 닿아 특별한 의미가 되는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끝별이 순우리말이기 때문에 중국어 이름을 만들기 위해 새로 한자를 고르기도 했어요. 중국에 시집이 번역된 적이 있는데 역자가 이름을 직역해 ‘말성(末星)’이라 표기했었죠. 이는 끝별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라는 의미의 ‘표진(標辰)’이란 한자로 중국어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시인의 길을 걸어온 이유는.
고등학생 시절 국어를 제일 잘했고 자연스레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어요.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온 1983년부터였죠. 대학에서 문학회 활동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인식하게 됐어요. 스무 해 남짓 동안 알던 세상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죠. 문학의 주제는 주로 사랑, 삶, 사회, 시대, 시간 같은 것들인데, 그 한가운데에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는 그 자체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시와 제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과정도 참 좋았죠. 시를 쓰면서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됐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 이후로 시인이 되길 꿈꿨고 지금까지도 시를 쓰고 있죠.

대학 시절 시를 쓰게 했던 건 사람이었어요. 시를 처음 쓰던 당시에는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이 대학 문화의 중심이었고,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 의식의 발전을 반영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동물도 마음에 들어와요. 2년 전부터 길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동물권 또한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시는 저에게 지도였고 미래였어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죠

신촌에서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서울에 처음 이사 와 살았던 곳도 이화여대에서 멀지 않은 서대문구였어요. 학부 시절부터 현재 교직 생활까지 이화여대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에 늘 이 근처에서 살아왔죠. 거의 반세기째 이 근처에서 살고 있는 셈이에요. 곳곳에 전부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이대역에서 연대로 가는 길 사이에 있는 굴다리가 유난히 기억에 남아요. 4년 정도 매일같이 그 길을 울면서 귀가하곤 했죠.
그때의 울음은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대가였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대학 시절 내내 휴교와 휴학, 화염병, 최루탄 가스가 일상이었어요. 평범하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시대였죠. 굴다리에서 흘렸던 눈물에는 그런 시절에 너무 작고 비겁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나 회한이 담겨 있었어요. 윤동주의 「자화상」을 잘 이해하게 된 때였죠.

「절필을 선언한 시인」 제목이 「집필을 선언한 시인」으로 출간됐는데, 당시의 심정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던 때에 시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이러다가 절필하겠구나’라는 위기감이 들었고, 만약 이대로 절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에 절필을 상상하며 썼던 시가 바로 「절필을 선언한 시인」이죠. 그런데 초판 시집에 이 시의 제목이 「집필을 선언한 시인」으로 인쇄된 거예요. 출판되는 과정에서 시인부터 출판사의 편집자까지 끝없는 교열 과정을 거치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제목이 들어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그때 최승호 시인이 농담처럼 “집필을 선언한 시인은 처음이니 더 좋다”며 덕담을 건네주셨는데 그 말이 참 위로가 됐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오자가 운명 같기도 해요. 실수가 유머러스한 계시로 다가왔던 일화죠.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에서는 *애너그램을 이용한 실험 시처럼 듣는 재미가 있는 시가 많이 수록돼 있는데, ‘듣는 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20세기에는 시각적인 문화가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청각적인 문화도 많이 발전하고 있어요. ASMR이나 오디오 드라마, 오디오북,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와 같은 구비적 재현이 청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죠. 시각 매체는 표상이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청각 매체는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창의적인 과정이 동반돼요. ‘사과’를 보여줬을 땐 모두 같은 사과를 눈에 담지만, 말로 들려줬을 땐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의 사과를 떠올리기 마련이죠. 이와 더불어 시각 콘텐츠의 범람으로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점차 듣는 문화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에서 시도한 ‘듣는 시’도 그런 흐름 속에 있죠. 리듬이나 라임, 언어유희 그리고 애너그램 등을 전면에 내세운 시의 등장도 그런 변화에 포함돼요.

애너그램을 이용해 시를 짓게 된 계기는.
이전까지 써왔던 비슷한 패턴의 시에서 벗어나고자 했어요. 늘 다른 시선과 다른 태도, 다른 나를 시도하고 꿈꾸죠. 애너그램을 이용한 시 또한 그런 시도에서 출발했어요. 그러고는 얼마간 애너그램과 라임에 몰두해 있었죠. 라임을 음소 차원에서 시도한 첫 번째 결과가 바로 「춤」이라는 시예요. 숨이나 쉼, 꿈처럼 ‘ㅁ’으로 끝나는 한 글자 단어를 떠올려봤죠. 시집 제목인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도 이 시의 한 구절이에요.

알파벳 철자로 이뤄지던 애너그램을 한글의 음소 차원에도 적용해 봤는데 한글에서도 애너그램이 가능하더라고요. 한 단어가 다른 단어를 불러내는 그 우연한 조합과 결합이 재미있었어요. 마치 언어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신이 났고 습작하던 시기의 열정이 다시금 되살아난 느낌이었죠.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파란 나팔」이란 시를 쓸 때였어요. ‘나팔’을 음소 단위로 해체해서 다시 조합해봤는데 ‘파란’이란 글자가 나왔어요. 이전까지는 파란색 나팔을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새로운 인식이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왔죠.

시에서 모국어만이 갖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 형제자매 사이에서 언어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독특한 이름 덕분에 사람들이 제 이름을 발음할 때의 소리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면서 한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남도에서의 유년 시절과 언어에 대한 흥미가 자연스레 모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언어란 그 사람이 먹는 밥이나 공기, 그리고 딛고 선 땅과 같은 것이거든요. 단지 물질이 아닌 정신적 토대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죠.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근원이 바로 언어에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시인에게 언어는 호흡과도 같죠. 시를 쓰면서 한글의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한글의 가능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조선시대에는 주로 한문을 썼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를 써야 했죠. 해방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말과 글이 일치하기 시작했어요. 불과 80년도 되지 않았죠. 앞으로 한글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땐 학교에서 우리 현대시에서는 압운, 즉 라임이 형성될 가능성은 없다고 배웠어요.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랩이라는 장르가 주목받으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죠. 이제는 한글만큼 라임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언어는 없다고 생각할 정도죠. 라임의 가능성이 열린 것처럼 한글과 한국 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더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서 시의 역할은.
현대 사회에서 시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해요. 시를 잃으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죠. 모국어로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최대치와 인간 내면의 소리를 잃을 것이고, 시가 주는 선한 의지, 공감, 정화 등의 수많은 능력도 잃게 될 거예요.

시는 정치나 종교, 경제가 아니죠. 글만으로는 전쟁이나 가난을 막지도 못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하지도 못해요. 하지만 총이나 돈의 논리가 닿을 수 없는 영역에서 시는 하나의 목소리가 돼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요. 시는 배를 채워주진 못하지만 정신의 배를 채우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게 해주죠. 언어의 힘을 빌려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하고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는 거예요. 시의 그런 ‘쓸모없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동시에 시는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해요.

팬데믹으로 인해 이전과 달리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교수로서 어떤 차이를 느끼는가.
대학에서 인문학, 특히 시를 비대면으로 가르치는 일은 참 힘들다고 생각해요. 대학에서의 문학 수업은 교수와 학생 간의 쌍방향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수업 시간에 시에 대한 서로의 해석을 나누고, 공감하거나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해석의 지평을 넓혀 가요. 하나의 시에 다양한 해석을 시도해보면서 시의 여백을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온라인 수업은 그런 시의 여백을 탐구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아 아쉬울 때가 있어요.

시를 읽거나 쓰고자 하는 대학생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우선 시를 너무 높은 벽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언어가 생긴 이래로 시는 지속해왔죠. 그 힘이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시적인 것과 시의 향유 방식이 삶과 멀리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음악이나 놀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배어들었으면 하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시는 지금 시의 모습과 똑같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좋아하고 쓰고 싶은 그 시가 바로 미래의 시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썼으면 좋겠어요.

제가 대학에서 시 수업을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말은 “지금까지 입시를 위해 배운 시에 대한 지식을 버려라”예요. 시는 주입식으로 암기하거나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먼저 시 자체를 상상하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죠. 시는 주관적이고 고백적인 회상이기 때문에 시를 자기 안에 담그고 또 자기 안에서 뱉을 수 있다면 시를 제대로 감상하고 창작할 수 있을 거예요.

 

정끝별 시인.사진 ∣ 박수빈 기자
정끝별 시인.
사진 ∣ 박수빈 기자 tvsu08@
정끝별 시인의 시 「춘수」 캘리그라피.
정끝별 시인의 시 「춘수」 캘리그라피.
연구실에 전시된 정끝별 시인 팝아트.
연구실에 전시된 정끝별 시인 팝아트.
정끝별 시인의 시집 『은는이가』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정끝별 시인의 시집 『은는이가』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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