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이화 (exhwa@skkuw.com)
사진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사진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6년 7개월만에 통과된 법안, 2023년 시행

계속되는 환자단체와 의협 간 줄다리기

 

수술실 CCTV 설치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수술실 CCTV 법안) 이 지난달 31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5년 1월 7일 최동익 의원이 처음으로 수술실 CCTV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후 6년 7개월 만이다.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13,9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인원의 약 98%가 수술실 CCTV 법안에 찬성했다. 찬성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까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병원협회 측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의료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의협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다.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감긴 환자의 눈을 대신할 수술실 CCTV

환자단체는 CCTV가 환자의 권리 보호에 일조할 것으로 본다. 수술실은 외부와 엄격히 차단돼 외부인이 수술 과정과 상황을 알기 어렵다. 환자는 마취 등으로 주변 상황을 인지하기 힘들고 수술 중 의사 표현도 제한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유령수술 등의 부정의료행위나 성범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 환자단체는 수술실 CCTV를 통해 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CCTV가 의료사고의 조직적 은폐도 예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현재로서는 병원 측에서 의료 사고 발생 시 의무 기록지를 조작하는 경우가 많아 환자나 보호자가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어렵다”며 “의료사고의 조직적 은폐를 막기 위해서도 수술실 CCTV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유령수술이나 대리수술 등 불법 의료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공감하지만 수술실 CCTV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수술실 CCTV가 최적의 수술 환경 조성을 방해해 환자 의 건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 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수술실은 수술 과정에 잠재된 다양한 위험을 대면하는 공간”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료진을 상시 감시 상태에 둬 의료진의 집중력을 저해 하고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술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라 할지라도 오해를 일으킬 만한 요소가 있을 시 진료행위가 위축될 수 있어 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분쟁의 방아쇠 vs 의료사고의 방패

CCTV로 인한 의료분쟁 증가 우려도 수술실 CCTV 법안 논의의 중심에 있다. 의협 측은 수술실 CCTV 설치가 무분별한 의료분쟁으로 이어져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변인은 “가장 가까이 수술에 참관하는 마취과 의사 역시 원활한 수술 진행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적절한 의료조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수술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CCTV 영상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가 불만이 생길 때마다 촬영 자료 열람을 요청하면 의료분쟁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빈번한 의료분쟁으로 인해 레지던트가 필수의료인 외과계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 역시 CCTV로는 의료과실을 정밀하게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안 대표는 “수술실 CCTV는 응급상황 발생 시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의무 기록지를 조작하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며 “수술실 CCTV 법안의 핵심은 무자격자 대리수술, 유령수술, 성범죄 등 비윤리적인 범죄 및 의료사고 은폐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무분별한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CCTV 촬영 영상은 의사가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녹화 영상을 확인함으로써 의사와 환자가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수술 영상이 유출된다면?

환자 개인정보 보호 문제 역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의 쟁점이다. 의협은 수술실이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가 노출되는 장소인 만큼 수술실 CCTV 영상 정보 유출은 환자에게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수술실 CCTV를 설치하면 CCTV를 관리하는 운영자·기술자·수리기사 등 해당 영상에 접근 권한이 있는 사람에 의해 영상이 유포될 우려가 있고, 해킹으로 영상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의료기관에서 아무리 철저히 보안을 점검한다고 해도 정보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환자단체 측은 지금까지 수술실 CCTV를 설치한 병원에서 수술 영상이 유출된 사례는 없었다고 반박하며, 전신 소독을 하고 중요 부위를 가린 후 녹화를 시작하는 방법처럼 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 대표는 “현재 수술실 CCTV 법안에서 환자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는 다 마련됐다”고 말했다. 수술실 CCTV 법안에 의하면 촬영 전 반드시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촬영 후 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영상이 삭제된다. 또한 촬영 영상이 환자나 의료진이 임의로 볼 수 없고 △수사 △조정 △재판 등 법률에서 정한 특별한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될 경우 엄중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통과된 CCTV 법안, 앞으로의 전망은?

21대 국회는 지난달 31일 본회의를 열어 수술실 CCTV 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법에 따르면 환자나 보호자 요청 시 수술 과정을 녹음 없이 촬영해야 하며 환자와 의료인 모두 동의하는 경우 녹음도 가능하다. △응급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는 CCTV 촬영 의무 예외 조건에 해당한다. 영상을 열람하려면 수사 또는 재판 관련 공공기관 요청이나 환자와 의료인 쌍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개정안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3년 시행된다.

2년의 유예기간 동안 구체적인 하위법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환자단체와 의협 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회의를 통과한 수술실 CCTV 법안에 대해 안 대표는 “촬영 영상의 열람이 허용되는 요건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 및 중재는 포함돼 있지만 한국 소비자원에서의 피해구제 조정 절차는 빠져있다” 며 “법안에 촬영 영상의 열람이 허용되는 요건으로 한국소비자원의 피해구제 조정 절차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촬영 의무 예외 조항의 범위가 넓어 법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을 수행하는 경우’와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예외 요건 예시에서 삭제하고, CCTV 촬영 의무 예외 조건은 보건복지부령 개정 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의협 또한 “2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개정법 내 독소 조항들의 잠재적 해악을 규명할 것” 이라 밝히면서 “개정안이 직업수행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으므로 헌법 소원 제기 등 법적 투쟁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국민병원 수술실 CCTV 촬영 장면.사진 ∣ 국민병원 최상욱 원장 제공
국민병원 수술실 CCTV 촬영 장면.사진 ∣ 국민병원 최상욱 원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