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이화 (elven11@naver.com)

자과캠 만남-윤상석(생물 84) 동문

사진 서수연 기자 augenblick@
사진 서수연 기자 augenblick@

 

“매일같이 혼자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후배와 이야기 나누니 즐겁네요.” 윤상석(생물 84) 동문은 인터뷰를 하는 두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생물을 넘어 인공지능과 미래 에너지까지, 또 과학을 넘어 역사와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쓴다. 
직접 삽화나 만화를 그리기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Why?』 시리즈에서도 윤 동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작하는 삶의 단초가 된 대학시절
생물학도에서 
책 59권의 저자가 되다

 

그림과 소설을 좋아했던 평범한 학생
“학급에서 한두 명씩 볼 수 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죠.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어요.” 윤 동문은 국민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뿐 아니라 만화 그리는 것도 좋아해 학급 친구들에게 만화를 그려 나눠주기도 했다. 

“중학교 때에도 만화를 그리긴 했지만 그때를 돌이켜보면 책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용돈을 받으면 헌책방에서 책을 사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어요.” 윤 동문은 당시 학생명랑소설을 즐겨 읽었다. “학생명랑소설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머를 섞어 묘사하거나 풍자하는 소설 장르예요. 그때 유행했던 소설 장르였죠. 무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는 탐정소설과 SF소설도 자주 읽었다. “괴도루팡이나 셜록홈즈 같은 책을 펼치는 날에는 중간에 멈추지 못해 수업 시간에 몰래 읽은 적도 많았죠. SF소설을 읽으면서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란 생각으로 늘 감탄하며 읽었어요.” 
 

근원에 대한 호기심, 
그를 생물학과로 이끌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우주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태초는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호기심은 윤 동문의 고등학교 시절 동안 계속됐다. 그는 순수 과학을 연구하며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과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기술이나 공학 쪽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리나 생물 같은 순수 과학은 그 기원이 철학에 있잖아요. 그런 철학적인 것들에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윤 동문은 생물학과 전공 수업 중 가장 재밌게 들었던 수업으로 2학년 때 들었던 식물분류학 수업을 꼽았다. 식물의 종류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나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생물학에 더욱 매료됐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민들레면 민들레, 국화면 국화 이런 식으로 식물 종류가 딱딱 나뉘어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종과 종 사이에 아종이라고 해서 종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가 있어요. 민들레 아종을 예로 들면, 다양한 아종들 가운데 어디까지를 민들레로 여기고, 어디까지를 다른 종으로 여길지 분류해야 했죠. 이런 것들을 배우면서 ‘연속적인 자연현상을 인간의 편의로 구분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신기하더라고요.” 그는 식물분류학 수업을 듣고 전공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한 2학년 때는 1학년 때보다 학점이 1점 이상 상승하면서 성적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대학 생활, 창작하는 삶의 단초가 되다
윤 동문은 1학년 때를 회상하며 자신을 ‘도서관 주변 학과생’이라고 표현했다. “도서관에 책가방만 쌓아놓고서 밤늦게까지 주변에서 놀다가 다시 가방을 챙겨 집에 가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책을 아주 안 읽은 것은 아니지만요.” 이때 읽었던 오쇼 라즈니쉬의 책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던 그에게 힌트를 주었다. “인간은 창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지금은 책 제목도, 정확히 어떤 구절이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 구절을 마음속에 품고 다녔어요.” 

연극과 희곡 또한 윤 동문의 대학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가 꼽은 가장 인상 깊은 교양 수업은 ‘연극의 이해’였다. “교수님께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란 연극을 보고 감상문을 쓰라고 하셨어요. 그 과제가 계기가 돼 브레히트의 연극에 굉장히 감명받았어요.” 그는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다. 매년 가는 생물학과 채집 여행의 장기자랑에서 선보일 콩트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연극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희곡을 써 동아리 연극제에 올렸다. “연합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리면 주변에서 잘 썼다는 칭찬을 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거창하게 쓴 게 아닌데도 주변 사람들의 칭찬에 참 뿌듯했던 것 같아요.” 라즈니쉬의 책이 마음속에 남았던 것처럼 희곡을 썼던 경험도 그의 마음에 인상 깊게 남았다. 

두산동아 교양만화부에 들어가다 
어떻게 출판사에 들어가게 됐냐는 질문에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생물학과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곧바로 취직하지 않고 대학원에 가서 계속 공부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았어요.” 그는 막연하게 과학 전문 잡지의 기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윤 동문은 두산동아 출판사의 공채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만약 일반 출판사라고 했다면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산그룹 계열사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에 갔죠.” 

두산동아 출판사에 입사한 윤 동문은 교양 만화를 기획하는 팀에 편집자로 들어갔다. “두산그룹 면접에서 회장님이 제게 뭘 잘하느냐고 물어봤어요. 고민하다가 만화를 잘 그린다고 답했어요.” 교양 만화팀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지금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보면 많이 힘들어해요.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교양 만화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저희 팀에게는 회사에서 많은 여유를 줬어요.” 교양 만화팀 근무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당시에 『만화로 보는 주역』이란 책을 담당했을 때는 1년 동안 주역에 푹 빠져 지냈어요. 기획 기간도 6개월 정도로 길었죠. 지금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모든 출판사를 통틀어 그렇게 여유로운 구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두산동아로, 다시 프리랜서로
1997년에 IMF 사태가 터지며 교양 만화팀이 없어지게 되자 윤 동문은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했다. 그 당시 『환상 특급 체험』과 『만화 경제기사 따라잡기』가 나왔다. 두 책 모두 베스트셀러였다. 그렇게 4년간 프리랜서로 생활하던 중 두산동아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단행본 팀에 들어가 다시 편집자로서 근무하게 됐지만 이전에 교양 만화팀에서 누렸던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히 IMF 사태를 기점으로 출판업계가 힘들어졌어요. IMF 사태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인터넷이 생기며 위기가 더 빨라진 것 같아요. 회사 분위기 자체도 많이 바뀌었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한 사람이 맡은 분량도 많아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윤 동문이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이원복 교수와 함께한 『신의 나라 인간 나라』가 베스트셀러가 된 순간이다. 그는 편집자로 일하며 이원복 교수를 만나 많은 일을 함께하며 지금까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뿌듯함을 경험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했지만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어린이 책에 오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간 적이 있어요. 여러 번 검토했는데도 찾지 못했던 거죠. 항의 전화가 쇄도했어요.” 그는 편집자 일을 계속하며 이렇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도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원래라면 두산동아에서 단행본 사업을 철수함에 따라 학습물을 담당하는 부서로 이동해야 했지만 그는 다시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재직 시절, 틈틈이 아들 이름으로 글을 써왔어요. 덕분에 자신 있게 프리랜서로 전향할 수 있었죠. 또 출판 시장을 잘 알고 있었고,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데 도움을 줬어요.”
 

“죽기 전까지 100권을 채우고 싶어요”
윤 동문은 만화 속 글을 자주 썼다. 우리에게 친숙한 『Why?』 시리즈에서도 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린이 만화를 쓸 때는 어려운 내용을 재밌게 전달하는 데 가장 많이 신경 쓴다. 과학 원리를 어떤 그림으로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만화 속 글을 쓴다고 하면 단순히 글만 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엉뚱한 그림이 나올 수 있어요. 경제나 과학 만화는 자세한 설명이나 예시가 없으면 만화가들이 잘못된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어 그는 “만화에 글을 쓴다는 것은 콘티를 짜는 것에 가깝다”며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서 주인공의 행동이 어떤지, 표정이 어떤지까지 굉장히 자세하게 적어서 만화가에게 전달한다”고 덧붙였다. 만화 한 권의 글이 완성되는 데는 보통 2개월이 걸린다. 만화의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경우에는 6개월이 걸린다. 『만화 통세계사』 시리즈는 그가 글과 그림 모두 작업한 작품으로 시리즈를 완성하는데 2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만화 통세계사』 시리즈는 오랜 시간을 작업한 만큼 다른 작품들보다도 더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한테 영향력을 미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는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읽었든 아니든 말이죠. 그런 점에서 제 삶은 보람이 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윤 동문이 쓴 책은 59권이다. 그는 죽기 전까지 100권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처음에 프리랜서로 전환할 때는 ‘1년에 1만 부씩 팔리는 스테디셀러를 네다섯 권 정도 집필하면 그다음부터는 여유롭게 1년에 한두 편만 쓰면서도 직장인만큼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점 책이 안 팔리는 시대가 오더라고요.” 프리랜서로 전향한 초반에 그는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책을 썼지만 지금은 마음을 많이 비웠다고 한다. “어느 순간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많은 사람이 그 분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회만 되면 뭐든지 해야겠다는 생각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죽기 전까지 100권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으로 윤 동문은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출판업에 종사하길 꿈꾸는 후배들과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출판업이 많이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지식 콘텐츠를 다루는 산업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출판 환경이 변하는 만큼 편집자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변화하는 지점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돈이나 스테디셀러 혹은 베스트셀러 몇 권이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를 항상 생각하며 그 방향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