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상당히 묵직한 주제였다. 그러나 시장판 논란으로 끝났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운운하는 현 정부를 향해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갈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는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든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건 바로 북한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슈에 대하여 반대당은 물론이고 같은 당의 동료의원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 책무라고 그를 질타했다. 그의 애매모호한 자구선택이 논란을 부채질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고 말한 것이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당장 “국민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지겠다”는 게 뭐 잘못됐냐고 반격이 들어왔다. 국민, 안전, 혹은 번영이란 단어는 애초 발표에는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애당초 발표대로 내 삶, 즉 개인의 삶 전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라고 초점을 바꾸면, 그건 명백히 전체주의적 사고의 소산이다. 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개인의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며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자연권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이 근대정신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 즉 자신의 삶과 자유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타고 태어났음은 자명한 진리라고 못 박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어기고 모든 국민 개인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은 망상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국가가 개인에 대하여 무한대의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내 삶을 당신이 멋대로 결정하겠다고? 노예와 주인의 관계이다. 그런 역사적 사례는 많고 결과는 하나같이 끔찍했다. 일례로, 1930년대 초에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지역에 37만 5000에이커의 부지를 동원하여 대량의 밀을 집단 재배하는 국영 집단농장을 만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던 이곳 농민들은 점차 손에서 일을 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해도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건 한줌의 밀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었다. 그렇게 농장은 참담한 실패를 거두었다. 그 결과 소련에서 참혹한 홀로도모르가 발생했다. ‘기아를 빙자한 대량살인’이란 뜻이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최소 1100만 명에서 많게는 2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연 때문이 아니라 명백히 계획경제의 실패로 인한 대참사였다. 이와 비슷한 이념으로 대규모 국가분배경제를 시행한 나라가 또 있다. 바로 조선왕조이다. 조선은 18세기말 전국 방방곡곡에 창고를 짓고 전국 총생산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쌀을 백성들로부터 강제 수거해서 저장했다. 극심한 가뭄이나 춘궁기에 굶어 죽는 백성이 없도록, 요즘 말로 하면,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러나 1840년대가 지나면서 환곡은 백성들에게서 고리대금을 뜯는 온상이 되었다. 그들을 갈취하고 벼슬아치의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민 개개인의 삶, 그들의 밥상과 숟가락까지도 책임지겠다고 덤빈 국가치고 제대로 된 사례는 전무하다. 양과 늑대가 함께 일하고 뱀과 어린 아기가 함께 뒹굴고 호랑이와 사자가 사이좋게 먹이를 나눠먹는 아름다운 동산이 단 한번이라도 실현된 적이 있었나? 그러나 그런 동산에 대한 환상은 인류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유토피아적인 본향처럼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아득히 먼 과거의 신화가 데칼코마니 되어 먼 미래에 새겨져 있다. 인류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인 것처럼 선동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하는 혹독한 진실이 있다. 공동체의 정치학이 그것이다. 본성이 다른 양, 늑대, 뱀, 사자와 호랑이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본성을 억누를만한 어마어마한 권력, 즉 공동체적 폭력이 작동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투쟁의 선혈을 딛고 쟁취한 사적 자유인이 바로 오늘날의 근대인이다. 근대는 이러한 공동체의 환상에서 개인이 깨어나고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여 주권의 담지자로 우뚝 서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의 공동체 기억은 사라지긴 커녕 신기루처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 그 옛날의 어머니 품 속 같은 달콤한 공동체(?)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에 몸부림치는 일단의 인간군상이 생겼다. 그들은 민주시민을 다시 국가 공동체의 안락한 품속에서 잠드는 백성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