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일러스트 김지우 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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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을 위한 맞춤형 사기가 도착했습니다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한 공공의 노력이 필요

‘모르는 번호는 의심하세요.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함부로 건네지 마세요.’ 길가의 현수막에서도, 뉴스 속에서도 수없이 접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피싱 범죄는 이제 익숙한 번호, 아는 사람으로 둔갑해 우리를 감쪽같이 속여온다. 피해자의 눈과 귀를 막고 의심의 싹을 사전에 차단해 그를 위한, 그의 돈을 위한 트루먼 쇼를 시작한다. 유행이 바뀌듯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는 피싱 범죄에 대해 알아보자.

피싱 범죄 황금어장이 된 대한민국
피싱(Phishing)이란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를 합성한 단어로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해 타인을 속이고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특수 사기 범죄다. 대표적으로 이용 수단에 따라 △보이스피싱(전화) △스미싱(문자 메세지) △파밍(이메일)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여러 방법을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의 ‘2020년 보이스피싱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피싱 피해 건수와 금액은 각각 2만 5859건, 2353억 원이었으며, 특히 스미싱 피해는 2019년보다 9.1% 증가해 373억 원에 달했다. 피싱은 2006년 제주도 국세청 사칭 보이스피싱을 시작으로 그 수법을 진화해가며 지속적인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김미영 팀장의 500가지 직업들
‘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대출 가능하세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피싱 유형은 2011년 김미영 팀장이 사용한 것과 같은 대출빙자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출빙자형 피싱 범죄의 피해 금액은 1566억 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67%를 차지했다. 대출을 받기 힘든 저신용자들에게 간편한 절차로 대출을 해준다고 속여 보증금, 선납이자 등을 편취 후 잠적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또한, 최근에는 저금리로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며 사기계좌로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법은 갈수록 치밀해져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전화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방법도 함께 사용된다. 이 경우 피해자가 해당 직원 근무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더라도 범죄조직에서 운영하는 번호로 연결돼 의심의 벽을 허물어버린다.

피싱은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더 치밀해진 방법으로 모든 이에게 미끼를 던진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피싱 피해도 커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피싱 피해자 중 20, 30대가 전체의 30%를 차지했으며, 2019년 대비 피해자가 감소한 다른 연령층과 달리 20대 피해자는 38.1% 증가했다. 젊은 세대의 경우 정보통신기기 사용량이 많고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다량의 정보가 노출돼있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수사관이나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기관사칭형도 피싱 범죄의 큰 비율을 차지한다. 주로 기관의 권위를 내세우며 예금의 보호나 범죄 수사를 이유로 현금 인출이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수법이다. 또한 문자,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이용해 지인을 사칭한 신종 피싱 범죄도 계속해서 발생한다.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 프로필 사진을 도용해 회피하기 힘든 긴급한 이유를 대며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녀를 사칭해 휴대폰 고장 등을 이유로 인증번호를 요구하는 수법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인증번호를 탈취한 사기범은 피해자 몰래 계좌 잔액을 인출하거나 신규계좌 및 대출을 신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금전적 피해를 발생시킨다. 

잡히지 않는 널 잡으려 애쓰다
피싱 범죄집단이 점조직으로 구성돼있다는 점은 범죄의 근본적 해결을 막는 주된 원인이다. 주로 범죄 전체를 지휘하는 총책과 그 아래서 대포통장 등을 모집하는 모집책,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는 인출책 등으로 업무가 나뉘어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형태로 운영된다. 총책과 중간의 관리자들은 해외에 본부를 두고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전화, 문자를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인출책과 같은 하위 조직원이 발각돼도 꼬리 자르듯 끊어내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검거되는 것은 단순한 업무를 분담받은 말단 조직원에 불과하며 총책과 같은 범죄조직의 핵심은 해외에 있어 국내법으로는 검거 및 피해금의 환수가 어렵다. 게다가 사설 중계기를 이용해 발신 정보를 010으로 시작하는 국내번호로 위조하고, IP를 우회하는 등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지능적으로 의심과 단속을 피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렵게 검거한 범인이 사실 아무것도 모른 채 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잦다. 조직의 본부가 해외에 있더라도 이들은 결국 대면 편취 혹은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전달받아야 하는데 검거를 피하고자 인출책과 통장을 국내에서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광고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유인해 현금을 인출, 전달하도록 한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 명의의 통장이 피싱 대포통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취업, 대출 등을 빌미로 체크카드나 통장을 받아 대포통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작은 부품이 돼 피싱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작동시킨다. 부품들조차 서로를 알지 못하기에 전체 범죄조직을 알아내 일망타진하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동선에 따라 CCTV, 블랙박스 등을 일일이 찾고 대조해보며 추적해야 하는데 수사 인력의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전화 가입자, 통장 명의자의 정보가 필수적이지만 관련 기관들에 협조 의무가 없기 때문에 영장을 발부받는 시간이 소요된다. 경찰대 행정학과 서준배 교수는 사후적인 수사에서는 인력 부족과 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다수 존재한다고 언급하며 “사기 예방 업무를 하는 부서를 신설해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면 수사 부서에 가중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구제받을 수 있을까
피싱 범죄의 피해자에게는 범인 검거보다 피해금 환수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해 금액을 돌려받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검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범죄에 사용된 계좌를 찾더라도 대부분 이미 자금이 빠져나가 해당 계좌에 잔고가 없기 때문이다. 통장 명의자나 관련 피의자의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피해 보전 방법이 마땅히 없다.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황석진 교수는 “현행 제도에서는 민사소송과 같은 피해구제 절차를 통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전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예금자보호법처럼 피싱 관련 보험제도를 활성화해 피해 금액의 일정 부분을 보장해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피해자는 금전적인 피해 이외에도 추가적인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다.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면 주변에서 피해자의 부주의함을 탓하는 경우도 있어 섣불리 알리지 못하고 2차 피해를 겪는 것이다. 서 교수는 “최근의 피싱은 대부분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지는 악성 사기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귀책이 없는 경제적 살인행위이기에 이들에게 비난을 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피싱의 신고율이 낮은 편이라며 “피해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해주고 피해 사실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낚시터 영업을 종료합니다
나날이 고도화되는 피싱 수법들은 아무리 의심의 끈을 놓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범죄임을 자각하기 어렵게 한다. 피싱 예방 교육뿐 아니라 제도적, 기술적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황 교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는 금융기관에 대해 피싱 예방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오직 은행만 포함돼 있다”며 카드사와 통신사 등 관련 기관에도 피싱 피해방지를 위한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금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 통신사 등에서 적극적으로 거래나 통화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보험이나 은행에서 사용되는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 시스템)을 피싱 방지에 특화된 방향으로 연구해 적용한다면 시스템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일 년 내내 거래가 없던 통장에 전국 각지에서 고액의 돈이 입금되는 등의 특이한 경우를 잡아내 재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조직화해 벌어지는 피싱 범죄에 관해 서 교수는 “마약, 테러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 협약이 있지만 피싱은 그렇지 않다”며 효과적인 수사를 위한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환대출=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뒤 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