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민정 기자 (0614smj@skkuw.com)

살아서 증명할 것이다.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554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김지은입니다의 에필로그 제목이다. 저자 김지은은 2018년 3월 5일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벌써 3년이 지난 지금 새삼 신문의 여론 면에서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다름없다. 아직 바뀌지 않은 세상에서 김지은은 여전히 증명 중이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을 밝히기 전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외면받는다. 특히 직장 내 성범죄 혹은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 사실은 피해자 자신만 참으면 다 해결될 문제로 치부된다. 피해자는 쉽게 ‘이상한 사람’, ‘과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저자 또한 안희정의 운전비서에게 당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조직에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외면이었다. 저자는 가해자가 사과했다는 이유로 다시 같이 일해야만 했다. 그 이후 당한 안희정의 성폭력을 수행비서에게 털어놓자 저자가 들은 말은 “네가 조심하라”였다. 미투가 한창일 때 저자는 가해자에게서 ‘미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입막음용 질문과 또 한 번의 성폭행을 당해야 했다.

피해 사실을 고발한 순간부터는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얼룩덜룩하게 날조된 거짓과 개인정보와 인신공격이 섞인 수많은 2차, 3차 가해가 그들을 공격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끝나지 않는 법정 공방을 계속한다. 사건을 가십으로 취급하는 언론은 조심성 없는 기사를 쏟아냈다. 저자는 책에서 말했다.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끝내 미투를 했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 결과로 이후 2년 가까이 직장도 없이 재판에만 매진하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살아남아 행동하고 있다. 책에서의 그는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일상 회복 프로젝트’의 지원서를 썼다. 그리고 그는 올해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신문사의 서면 인터뷰에 응하고, 다음달 열리는 안희정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이 자신과 연대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썼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지난 5일 가수 정준영의 불법 촬영 피해자는 2차 가해 처벌법 입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게시했다. 사건은 2016년이었지만 가해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고소를 진행했지만 불법 촬영 피해를 겪고도 오히려 무고죄로 피소 당할까 고소를 취하한 바 있다. 피해자는 유튜브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꼭 변해야 할 것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이 끝나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사건이 끝나도 이들의 증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손민정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