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수빈 기자 (tvsu08@skkuw.com)

잇따른 문화 침탈 논란으로 반중 감정 거세져
중국 자본, 무조건 반대할 필요는 없어

 

지난해 개봉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뮬란’은 엔딩 크레디트에 촬영에 협조해 준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고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뮬란’의 중국 개봉을 염두에 두고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인권을 탄압한 당국을 비호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에 할리우드 측은 영화 촬영을 허락한 국가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뮬란’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중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은 디즈니가 베이징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세계 문화산업계의 큰손이 된 중국의 자본은 할리우드를 넘어 한국에 유통되는 문화콘텐츠에도 유입되며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다.

차이나머니, 한류에 등장하다
중국의 거대 자본을 뜻하는 차이나머니는 중국의 성장과 함께 세계의 기술, 부동산, 운송 등 다양한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점차 넓혀 가고 있다. 중국 기업은 세계 각국의 문화 콘텐츠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자본력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017년 “할리우드는 중국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영화 산업이 중국의 투자자와 잠재적 관객에게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거대한 시장과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영향력은 한국에 유통되는 문화콘텐츠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종영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서는 극중 등장인물들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중국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 방영됐다.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같은 기업의 인스턴트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연출되며 중국 제품 간접광고가 한국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소비자를 의식하다가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작품도 있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작중에서 중국풍 의상과 소품을 사용했다가 방송의 방영 중지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대중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SBS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했다”며 방송 2회 만에 조선구마사 방영을 중단했다. 이에 대해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권상집 교수는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지 않게 중국 음식이 등장하는 등 무작정 중국 문화를 배치한 것이 문제”라며 “이는 중국 시장에 드라마를 진출시키기 위한 무리수였다”고 지적했다.

중국 제품 광고와 중국풍의 연출이 큰 논란이 된 이유로 한중 문화 갈등에 따른 국민의 반중 감정이 거론됐다.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임대근 교수는 “한국 대중은 그동안 이어져 온 한중 문화 갈등을 예의주시해 오고 있다”며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갈등이 2016년 *한한령 발동으로 다시 한번 폭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중국 제품의 간접광고가 드라마에 맥락 없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유문화인 비빔밥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시청자의 반발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권 교수 역시 “이 같은 연출은 중국의 역사 왜곡이나 문화 침탈 흐름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의 반중 감정 어디서 왔나
동북공정이란 중국이 중국 국경의 동북부인 만주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2002년부터 국가사업으로 추진한 연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국 학자는 고구려와 발해 등의 한국사를 중국의 역사라 발표하며 역사 왜곡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최근 김치와 한복 등을 중국 문화라고 소개하고 윤동주 시인을 조선족이라 주장하는 일부 중국 누리꾼에 의해 한중 문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문화 침탈의 흐름이 국내 유통되는 문화콘텐츠에서까지 나타나자 국민의 반중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 중국의 게임 개발사 페이퍼게임즈에서 작년 10월 한국에 출시했던 게임 ‘샤이닝니키’는 한복 아이템을 추가한 것에 대해 중국 이용자로부터 반발을 받으며 출시 일주일 만에 한국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샤이닝니키의 한복 아이템에 대해 중국 이용자들이 해당 의상 아이템은 한복이 아닌 중국 전통 의상 ‘한푸(漢服)’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에 페이퍼게임즈는 서비스 종료 공지문에서 “최근 전통 의상 문화에 대한 논란을 깊이 주목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의 입장은 항상 조국과 일치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라며 한복은 중국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의 글을 공유해 한국 대중의 분노를 샀다.
 

차이나머니, ‘독이 든 성배’ 될까
국내에서 유통되는 일부 문화콘텐츠가 역사 왜곡 논란을 빚어내자 차이나머니는 ‘독이 든 성배’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한 회 제작비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웃도는 상황이기에 중국의 투자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작사의 입장이다. 권 교수는 종합 콘텐츠 기업 CJ ENM 재직 당시를 회고하며 “업계 내에서 중국의 투자는 한국 대기업의 투자보다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투자 규모가 거대해 외면할 수 없는 요소였다”며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이 유혹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1.7배가 넘는 중국 IT 기업 텐센트는 국내 콘텐츠 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며 넷마블과 같은 게임사, YG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엔터 기업 등 여러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임 교수는 “중국 투자자는 문화산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만큼 이윤을 회수하고자 중국인 소비자의 성향과 자국의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중국의 투자가 콘텐츠의 방향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거대한 문화콘텐츠 시장 역시 무시하기 힘들다. 중국의 한한령으로 국내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국 시장을 겨냥한 국내 문화콘텐츠는 중국의 이념에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달 중국 중앙선전부가 발표한 ‘게임 심사 평점 세부 규칙’은 ‘중국의 우수 문화를 알린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부합한다’ 등의 내용을 새로운 *판호 기준으로 제시했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국내 게임사는 이 기준을 충족하도록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차이나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이어지면서 대중 사이에서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은 JTBC 드라마 ‘설강화’ 등의 방영 예정 드라마들을 보이콧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임 교수는 “특정한 국가의 자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자본을 현명하게 활용해 우리 문화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권 교수는 “중국 자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기타 국가의 자본으로 투자 네트워크를 한층 더 넓힐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며 제작사가 투자자의 투자 요구 조건을 세심히 따지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협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한령=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가 확정된 후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적용된 중국 내 한류 금지령.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
 

드라마 '빈센조'에서 송중기가 중국 기업의 인스턴트 비빔밥을 먹고 있다.tvN '빈센조' 8화 캡처.
드라마 '빈센조'에서 송중기가 중국 기업의 인스턴트 비빔밥을 먹고 있다.
ⓒtvN '빈센조' 8화 캡처.
'샤이닝니키'의 한복 아이템.페이퍼게임즈 '샤이닝니키' 캡처.
'샤이닝니키'의 한복 아이템.
ⓒ페이퍼게임즈 '샤이닝니키' 캡처.